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위대한 개츠비>는 1920년대 미국 재즈 시대를 배경으로 당시 젊은이들의 아메리카 드림을 다루고 있다. 수식어가 필요 없는 김영하 작가의 번역본(문학동네)으로 읽어보았다. 무려 백 년 전에 나온 할배 소설이지만 읽는 동안 세월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여전히 돈이 최고다, 하는 세상 속에서 살고 있어서인지 개츠비의 시간이 더욱 짠하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책을 읽고 영화도 봤는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그냥 개츠비였다. 하, 그 미소란!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를 읽으면서 나는 어두운 바다를 향해 팔을 뻗는 개츠비를 보았다. 보이기는 하지만 영원히 잡을 수 없을 초록 불빛을 그는 잡으려 했다. 무기력한 농부의 아들이었던 어린 개츠비는 아버지처럼 살 것인지, 인생을 개척할 것인지 선택해야만 했다. 목표와 매력 말고는 내세울 것이 없었던 시절에 만나 사랑에 빠졌던 상류층 여성 데이지를 되찾기 위해 개츠비는 물질적 성공에 더욱 집중했다.
개츠비는 웨스트에그 저택에서 벌이는 파티에서 자신을 사연 있는 귀족이라고 소개했지만 사실 그는 밀주업자였다. 공업용 에틸알코올을 재료로 술을 만들어 암암리에 팔았던 사기꾼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약간의 신비주의에 화려함을 곁들이니 파티에서 그는 젠틀한 젊은 부자였다. 그에 대한 소문은 진위를 확인할 수 없는 가십거리로 소비되었다.
개츠비는 데이지와의 관계를 다시 시작하려고 했다. 완전히 물화되어 다른 감각은 마비된 것 같은 데이지는 가까이 있어도 손에 잡히지 않는 빛처럼 집착을 불렀다. 개츠비는 데이지를 지키고 싶었다. 그러나 데이지가 또다시 그를 떠나던 날, 총에 맞아 사망하는 것으로 개츠비의 삶은 허무하게 끝나고 만다. 척박함으로 시작했지만 흔적도 없이 무너져버린 그의 인생과 사랑을 나는 단칼에 단정 지을 수 없었다.
그가 바라본 초록 불빛은 내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유리천장과 닮아 있다. 부동산 광풍, 주식, 비트코인 등으로 표현되는 이 시대의 욕망들 속에서 여전히 살아있는 개츠비를 만난다.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계층 사다리 따위 판타지라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개츠비처럼 전부를 걸 자신은 없다. 그렇게 해야 할 필요도 느끼지 않는다. 그렇지만 계층은 있는데 사다리는 없는 닫힌 사회라면 서로에게 불행한 일 아닐까. 아래층에 사는 나만의 생각이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