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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의 <신곡>이 재미있는 이유!

단테 알레기리에 [신곡, 열린책들]

by 오늘

<신곡>을 읽을 결심을 하게 된 것은 어쩌면 단순한 지적 허영심 때문일지 모른다. 그러나 책의 전부를 이해하지 못했음에도 (10% 정도 이해한 듯) ‘단테의 신곡은 재미있었다’는 결론을 얻었다. 신곡이 왜 재미있게 느껴졌는지 탐구해보고자 한다.


단테의 《신곡》에서 작가가 그리고 있는 것은 단순한 ‘지옥 구경’이나 ‘천국 구경’만은 아니다. 주인공 ‘단테’의 지옥 → 연옥 → 천국으로 이어지는 여정은 단순한 사후세계 모험을 넘어선다. 이는 자신의 과거 실수와 나약함을 끊임없이 직면하고 성찰하며 영적, 도덕적 성장을 이루어가는 과정을 상징한다. 특히 지옥과 연옥에서 단테가 공포와 연민 사이에서 수없이 갈등하고 주저하는 모습은 자기 삶의 방향을 확신하지 못하고 흔들리는 현대인의 삐걱대는 모습과 닮아있어서 독자들에게 일종의 해방감을 안겨주기도 한다.


각 여행지에서 작가 단테는 시각적으로 매우 강렬한 묘사를 사용한다. 갖가지 지옥의 괴물들과 고통받는 영혼들. 그리고 연옥의 정화와 함께 시작되어 천국으로까지 이어지는 무한한 빛의 이미지. 이 모든 장면이 매우 구체적이고 상상력을 자극한다. 이런 생생한 묘사 덕분에 독자가 여행자가 된 것처럼 ‘이런 세계가 있다면’ 하고 상상하게 만드는데, 정말로 단테가 이 작품을 발표했을 당시에는 사람들이 그를 ‘지옥에 다녀온 자’라면서 수군댔다고도 한다.


작가 단테는 당시의 현실 정치인, 권력자, 철학자, 시인 등 다양한 인물을 지옥·연옥·천국에 등장시켜 비판하거나 평가한다. 이때 등장인물들은 모두 실명으로 거론되어 있어서 출간 당시의 뜨거웠을 분위기를 짐작하게 한다. 지금이야 고전 중의 고전으로 쉽게 도전하기 힘든 책으로 여겨지고 있지만, 그 당시에는 어쩌면 가십처럼 소비되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도 해보게 된다. 현대의 독자들에게도 부패, 권력 남용, 도덕성 문제 등은 여전히 뜨거운 주제니까, 단테의 풍자를 보면서 ‘예나 지금이나, 끌끌’하는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다만 조금 꼼꼼히 읽다 보면 작가의 일관성이 살짝 부족하기도 한데, 이 또한 작가의 인간적인 매력, 혹은 살짝 웃긴 포인트로도 다가와 흥미로운 지점이 아닐 수 없다.


그 많은 인물들 중 작가 단테에게, 그리고 극 중 단테에게도 가장 중요한 인물은 단연 베아트리체라고 할 수 있겠다. 베아트리체는 작가가 실제로 사랑했던 여성으로, 극 중 한심하게 살아가는 단테의 모습을 보고 베르길리우스 스승님을 그에게 보내는 역할을 한다. 단테에게 베아트리체는 단순한 연인이 아니라 단테를 천국으로 인도하면서 영적 구원의 가이드 같은 존재로 등장한다. 세속적인 현실 사랑으로 출발하여 고결한 이상적 사랑으로 마무리되는 형태라 깊고 다층적인 감정을 전달해 준다. 베아트리체도 단테를 자주 혼내기는 하지만 그건 살짝 흐린 눈으로 지우고 조금 더 낭만적인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인간적 사랑과 신성한 사랑을 연결시키는 방식을 통해 ‘사랑이 영혼을 구원한다’는 메시지를 드라마틱하게 보여 준다고 읽을 수 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꽂혔었던, 단테와 베르길리우스 스승님의 관계성도 흥미롭다. 베르길리우스는 로마의 시인으로 세례 받지 못해 지옥의 림보에 머무는 인물이다. 집은 지옥이지만 내면의 덕이 있어서 지옥과 연옥까지 여정을 함께하며 단테를 혼내기도, 달래기도 하면서 그의 멘토가 되어준다. 단테는 지옥과 연옥에서 공포와 혼돈을 마주했을 때 흔들리는 그의 두려움을 진정시켜 주는 지적인 버팀목으로 스승님을 의지하며 여정을 이어갈 수 있었다.

단테와 베르길리우스는 단순한 멘토-제자 관계가 아니라 지성을 넘어 감정적인 유대까지 맺는 깊은 우정을 보여준다. 그들은 서로 다르지만 마치 하나의 인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단테는 감성적이고 두려움 많지만 강한 호기심을 가진 어리숙한 여행자이고, 베르길리우스는 이성적이고 지식이 풍부한 안내자이지만 영적으로 완벽하지 않다. ‘스승과 제자’, ‘길잡이와 방황하는 영혼’이라는 관계의 심리적 깊이는 현대적 듀오, 예컨대 ‘셜록 홈스와 왓슨’처럼 서로 보완하고 맞물려 가는 조합의 관계성을 보여준다.


현대의 추리소설인 <셜록 홈스>와 같은 작품도 덕후가 많지만, <신곡>의 세계관은 덕후라면 환장할 수밖에 없는 떡밥의 천국이라 할 수 있다. 책 안에 온갖 수수께끼가 듬뿍 담겨 있어 최소 5년 정도는 다른 생각 안 하고 덕질을 할 수 있을 듯하다. <신곡>은 심오하면서도 여러 겹의 의미를 가진 이야기이지만, 무엇보다 작가 단테의 4차원적 상상력이 빛을 발하며 추리소설 뺨치는 구조적 완결성에 집착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신곡>은 우주의 지도, 도덕적 지도 그리고 영혼의 지도 같은 역할을 한다. 지옥과 연옥, 천국의 구조와 위치가 매우 구체적으로 제시되어 있으며, 그래서인지 당대 사람들로 하여금 연옥이 있음 직한 장소에 찾아가 보게 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숫자를 통한 상징 등 복잡한 설계가 되어 있기도 해서 읽을 때마다 매번 새로운 의미를 발견할 수 있으며, 덕후라면 이걸 ‘읽는 놀이’처럼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정확하게 측정해보지 않았지만 대충 어림짐작하여 작품의 10% 정도만 이해한 나조차도 <신곡>의 재미를 이렇게 많이 찾았는데 한 발만 더 들이면 1~2년은 그냥 날아간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아, 마지막으로 시어의 아름다움을 말하고 마무리해야겠다. 신곡은 서사시이며 매우 아름다운 언어로 그려져 있다. 작가가 언어적 구조까지 집착한 까닭으로 원어로 낭독한 것을 들으면 노래처럼도 들린다. 원어를 이해하고자 한다면 지금으로서는 다시 태어나야 하지만 한국어 번역으로 읽어도 충분히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게다가 작품의 분위기를 완벽에 가깝게 재현한 구스타프 도레의 삽화와 함께라면 당신도 곧장 <신곡>의 세계에 빠질 것이다!


우리 인생길의 한중간에서

나는 어두운 숲 속에 있었으니

올바른 길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


나를 거쳐 고통의 도시로 들어가고

나를 거쳐 영원한 고통으로 들어가고

나를 거쳐 길 잃은 무리 속에 들어가노라

(...)


내 앞에 창조된 것은 영원한 것들 뿐

나는 영원히 지속되니

여기 들어오는 너희들은 모든 희망을 버릴지어다.

<신곡: 지옥편, 열린책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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