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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하는 자에게 날개는 없다

박지리 장편소설ㅣ3차 면접에서 돌발 행동을 보인 MAN에 관하여

by 오늘

‘추락’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신화부터 현대 작품까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서사적 모티프다. 최근 한국 사회의 계층 문제를 다룬 작품들 중에서 세 작품이 떠올랐는데 봉준호의 영화 <기생충>, 이번 달 주제 책인 박지리 작가의 <3차 면접에서 돌발 행동을 보인 MAN에 관하여>, 그리고 최근 화제작인 넷플릭스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가 그것이다.


이중 가장 툭 튀는 작품은 영화 <기생충>이라 할 수 있다. 영화 속 인물들은 하층민이며 이들에게는 처음부터 상승하고자 하는 욕망도, 기회도 없었다. 사실 그들은 사기꾼에 가까운 전략을 썼는데 그래봐야 상류층 가정의 사용인으로 고용주에게 생활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을 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추락한다. 비가 자비없이 퍼붓던 밤, 기택(송강호)의 가족이 도망치며 끝없이 계단을 내려가고 또 내려가던 장면은 영화의 명장면으로 꼽힌다. 상승의 욕구가 없었는데도 그들은 추락하는 것이다. 왜일까?


계단 장면이 있기 전 그들은 동익(이선균)의 가족이 캠핑을 떠나 집을 비우자 마치 자신들이 그 집의 주인인양 욕조 목욕을 하고, 통창으로 정원을 감상하며, 술을 마신다. 일종의 상류층 흉내를 낸 것인데, 그로 인해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 추락처럼 느껴지도록 연출한 것이다. 단 한 번의 상류층 흉내는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위치를 확인하게 했다. 영리한 감독은 그들의 집을 물바다로 만들어 영상에 참혹함을 더한다. 이후 그들이 느끼는 모멸감은 사무친 것이었으며 영화는 파국으로 끝난다.


이야기 속에서 그려지는 하층민의 이미지와 그곳으로의 추락은 이토록 참혹한 것이다. 상류층이 되기는 어렵지만 노력만 하면 중산층 정도로는 살 수 있을 것 같다. 아니, 최소한 중산층 근처라도 가야 하층민으로 떨어지지 않을 수 있다! 이러한 절박함은 과열된 교육열과 입시 경쟁, 이후 취업 전쟁으로 이어진다. 취업 전쟁의 압박감과 기이함은 박지리 작가의 <3차 면접에서 돌발 행동을 보인 MAN에 관하여>에서 제대로 그리고 있다.


소설 속에서 특정 인물에게 조명이 비춰지면 그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계층 사회에서라면 누구에게 조명을 비추어도 비슷한 이야기가 진행될 것이다. 그래서 그는 흐릿하게 이름이 숨겨진 채, M으로 등장한다. M은 확신에 가득했던 최초의 면접에서 탈락하면서 실패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 그럼에도 M는 입사 시험에 수차례 도전하고, 연이어 낙방을 이어간다. M의 이야기는 대기업으로 짐작되는 한 회사의 3차 면접에서 본격적으로 이어진다. 사실 이것은 면접이 아니라 신입사원 연수였는데, 그는 그것을 면접으로 이해한 것이다. M의 이해는 단순한 오해였을까?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신입사원 연수는 말 그대로 연수일 뿐 추가 탈락이 없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회사 생활의 모든 과업은 사실상 수치화 되어 평가되며 언젠가는 있을 승진 심사나 연봉 협상 등에 영향을 미친다. 또한 회사는 위기에 처했을 때 가장 먼저 인건비를 줄이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므로 뜻하지 않은 퇴직은 언제라도 닥칠 수 있는 것이다. M은 또다시 탈락하지 않기 위해 그야말로 영혼까지 갈아 넣는 생활을 한다. 최선을 다할수록 스스로 더 압박감을 느끼면서 M은 점차 외면과 내면이 완벽하게 분열한다. 환상 속에서 새를 죽이고 퇴사한 M은 자판기 관리자로 일하며 오히려 평온한 일상을 살아간다. 그의 평온은 역설적으로 추락 이후에야 가능했던 것이다.


입사 시험에 매진했던 M과 한국에 사는 평범한 사람들의 욕망을 짧게 압축해보자면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정도가 아닐까 한다. 평범한 사람들에게 이 정도가 성공의 기준이 아닐까? 마침 넷플릭스에서 서비스하고 있는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를 보기 시작했는데, M이 무사히 대기업에 안착했다면 딱 저런 삶을 살고 있겠구나 싶은 장면이 많았다.


이름도 김낙수인 김부장은 (이름이 이미 그의 운명을 암시하는 듯했다!) 6년차 영업부 부장으로 임원으로 승진하지 못하면 회사를 나가야 할 위기에 처해있다. 그는 특정 대학교를 나온 성골 라인이며, 한때는 영업맨으로 이름을 날리기도 했지만 지금은 시대착오적인 꼰대에 불과하다. 그의 자부심은 이제 덫이 되어 달라진 시대의 흐름을 전혀 읽지 못하고, 그렇지 않아도 위태로운 자리에서 스스로 위기를 키운다. (지금 3부를 보고 있어서 극의 초반 이야기까지 밖에는 모르지만. 아마 김부장은 희망퇴직 하게 되는 것 같다. 그 후 낮은 자리에서 다 내려놓고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는 모습으로 시청자들에게 감동을 주지 않을까 상상해보는데...)


M과 김부장은 비슷한 욕망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살아온 인물임에는 분명하다. 그들에게 공감하며 짠함을 느끼는 이유는, 그들이 낯선 인물이 아니라 우리에게도 같은 욕망이 있어서일 것이다. 특히 중산층에 진입할 여지가 있거나 이미 중산층인 이들에게도 탈락 혹은 추락이 공포를 자아내는 상황으로 그려지는 점이 흥미롭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팍팍함이 오히려 그들의 삶을 통해 핍진하게 드러난다고 해야 할까.


추락은 인생을 파멸로 이끄는 불온한 힘이기도 하지만 오히려 해방감을 안겨주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추락이 달갑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공포로 다가오는 것은 이 사회에 대한 신뢰에 이유가 있다. 추락은 끝이 아니라 다른 삶의 시작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해방이 되려면 사회가 개인을 지탱할 최소한의 신뢰를 제공해야 한다. 추락이 파멸이 아니라 새로운 비행이 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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