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엘 파유의 장편소설 <나의 작은 나라>ㅣ열린책들
가엘 파유의 장편소설 <나의 작은 나라>는 1990년대 초 부룬디에 사는 소년 가비의 순수한 시선을 통해, 르완다에서 시작된 민족 갈등의 그림자가 어떻게 평범한 일상을 잠식하는지를 담아낸 작품이다. 긴 세월 동안 벨기에의 식민 지배 정책으로 인해 골이 깊어진 후투족과 투치족의 갈등은 이웃 나라 부룬디까지 영향을 미쳤고, 가비의 '작은 나라'는 비극적인 역사의 한복판에 놓이게 된다.
가비는 프랑스인 아버지와 르완다 출신 투치족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일상은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이 가장 중요한 평범한 청소년의 삶이었지만, 가정 안에는 이미 깊은 균열이 존재했다. 스스로를 난민이라 말하는 어머니의 깊은 슬픔과 분노는 프랑스인으로서 최대한 분쟁에서 멀리 있고자 하는 아버지의 태도와 충돌했다. 소설은 이처럼 가장 사적인 공간인 가정과 그의 친구들을 통해, 역사적 폭력이 개인의 정서와 관계를 어떻게 무너뜨리는지를 예민하게 포착한다.
폭력의 그림자가 짙어지면서 가비가 느끼는 혼란은 단순한 공포를 넘어선 복잡한 정체성 딜레마로 발전한다. 가비는 아버지의 국적 덕분에 분쟁 밖의 존재로 성장했으며, 어머니와 친척들의 비극적인 경험은 그가 직접 겪은 정체성이 아니었다. 이 괴리감은 자신의 현실로 당면한 끔찍한 폭력으로부터 도망가고 싶게 만들었다. 그러나 동시에 가비는 어머니와 친구들을 깊이 사랑하며 그들에게 연대감을 느낀다.
소설은 가비의 주변적인 시점을 통해 폭력의 불온함을 드러낸다. 작가는 폭력의 잔혹함을 무분별하게 묘사하는 대신, 폭력이 친밀한 관계를 파괴하며 야기하는 심리적 파장을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내전이 격화되자 결국 아버지는 가비와 동생을 프랑스로 피신시킨다. 소설은 그 후 성인이 된 가비의 모습을 그린다. 가비는 마치 뿌리 없는 나무처럼 공허하게 살아가며, 자신이 '도망쳤다'는 죄책감과 함께 고향 부룬디를 잊지 못한다. 그는 떠나올 때 이웃집 아주머니가 찢어준 책의 한 페이지에 적힌 자크 루맹의 시를 떠올린다.
<우리가 어떤 나라 사람이라면, 우리가 거기서 났다면, 이를테면 거기서 태어난 그곳 태생이라면, 그렇다면 우리 눈 속에, 피부에, 손에 그 나라가 있네, 그 나무들의 머리칼이, 그 땅의 살이, 그 바위들의 뼈가, 그 강들의 피가, 그 하늘, 그 향취, 그곳 사람들이…….>
이 시는 가비가 끊임없이 부룬디와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려왔음을 짐작하게 한다. 그는 부룬디를 떠났으나 한 번도 그곳을 떠난 적이 없었을지 모른다. 시는 정체성이 국적이나 민족에 갇혀있는 것이 아닌 개인의 경험과 기억에 새겨진 흔적임을 암시한다. 결국 가비는 부룬디의 ‘막다른 골목’으로 되돌아간다. 이 장소들은 국가 폭력의 트라우마가 응축된 곳이자, 그의 어머니가 머물렀던 상처의 중심이었다. 가비는 이곳에서 옛 친구를 다시 만나며 영원히 치유되지 않을 상처 그 자체를 직면한다.
가엘 파유의 『나의 작은 나라』는 가비의 개인적 상처를 통해 우리 모두의 윤리적 책임을 묻는다. 타인의 고통을 외면한 채 살아가는 오늘의 우리 역시, 가비처럼 ‘도망친 자들’일지 모른다. 가비의 ‘작은 나라’는 혐오를 조직화하여 관계를 무참히 단절시키는 행위인 제노사이드와 같은 반인륜적 폭력 앞에 선 인간의 가장 본질적인 윤리적 자세를 고민하게 만든다. 그러나 작가 한강이 말했듯 과거는 우리를 돕는다. 가비가 과거의 장소로 귀환했듯 우리 역시 끊임없이 과거의 기록을 마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