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마산 초등학교 버스 정류장
저녁 7시 40분. 벽초지 수목원 근처 도마산 초등학교 버스 정류장. 지나다니는 사람도 없고, 가로등은 드문드문 켜져있는 아주 조용한 곳에 우리 둘만 서 있었다. 반대편 정류장의 버스는 그간 몇 대가 지나갔다. 버스 도착정보를 알려주는 기계의 빨간 버튼을 눌러보았다. 기적처럼, 1대의 버스가 20번째 전 정거장에서 출발했다는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7시간 전, 우리는 인천에서 버스를 타고 출발했다. 소셜커머스에서 저렴하게 파는 불빛축제 티켓의 유효기간은 2월 29일이었다. 미루고 미루다 겨우 날짜에 맞춰 갈 수 있게 되었다. 4년 만에 한 번 오는 덤으로 생긴 날에 버스여행을 하게 될 줄 상상도 못했다.
가는 길에도 버스를 갈아타고, 또 타고, 수도 없이 많은 도로를 달려왔다. 사람도 별로 없는 데다가 전날 내린 눈이 하얗게 새어있었다. 얼마만에 밟는 눈이야, 하면서 이리저리 발자국을 새기고 신이 나 사진을 찍었다. 해가 지고 여기저기 켜지는 전구에 아이들마냥 좋아하며 뛰어다녔다. 그러다 문득, 시계를 봤다. 늦어도 8시 전에는 버스를 타야만 한다. 67번 버스는 1시간에 1대만 다니는 버스. 그리고 그 버스를 타야 금촌역에 한 번에 빠져나갈 수 있었다. 우리는 서둘러 수목원에서 나섰고, 도마산 초등학교 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
혹시나 운행이 종료된 건 아닌가, 지도를 찾아보다 버스회사에 전화하기에 이르렀다. 사투리를 쓰시는 아저씨는 7시 45분에 버스가 지나갈 거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에 마음이 놓여 간이 의자에 엉덩이를 붙였다. 그러나 우리는 계속 빨간버튼을 눌렀고 7시 30분쯤 '도착예정인 버스 정보가 없습니다'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부랴부랴 난리가 난 사람처럼 듣고 있던 노래도 끄고, 지도를 다시 뒤져봐도 운행 중인 버스가 없다는 말만 둥둥 떠다녔다. 다시 운행회사에 전화하니 아저씨는 곧 갈 거란 말씀을 하셨다. 하지만 버스는 보이지 않았고 집엔 어떻게 가야하나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했다.
그때 반대편에서 61번 버스가 서더니 기사님께서 왜 거기 서있느냐고 물어오셨다. 어차피 버스는 돌아가는 거라며 얼른 타라고 하셨다. 우리는 영문도 모른 채 일단 버스에 올랐다. 버스에는 우리 둘뿐이었고, 기사님은 이제 그쪽으로는 버스가 다니지 않을 거라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탄 버스는 길을 돌아 역 방향으로 가는 노선이었다. 8시가 안 된 시각이라 버스가 끊겼을 거란 생각은 하질 않았는데. 시간에 상관없이 깜깜한 밤 낯선 거리에서 집으로 돌아갈 방법을 잃으니 속수무책으로 두려워졌다. 정거장을 하나씩 거칠 때마다 사람들이 올라타고 불빛이 눈앞에 보일 때쯤에야 안심할 수 있었다. 익숙한 곳으로 돌아갈 수 있구나, 집으로 갈 수 있구나.
매일매일 어떤 버스가 올지 모르고 살아간다. 예상치 못한 순간에 버스가 없습니다, 라는 안내방송을 듣게 될 수도 있다. 누구도 안심할 수가 없다. 우리가 타고 다니는 이 버스가 갑자기 사라질 수도 있고, 우리를 태우지 않고 가버릴지도 모른다. 그런 순간에도 희망은 있다. 길 건너편으로 돌아가는 버스가 올 수도 있고 다른 목적지까지 우리를 태워다줄 새로운 버스를 발견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