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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 Feb 08. 2022

몇 번이나 헤어져봤어요?

버스로 30분 거리에 우체국이 두 개나 있다. 어디로 갈까 항상 망설였는데 얼마 전에 작은 우편취급국이 집 근처에 생겼다. 일하시는 분은 세 분, 접수창구는 두 칸뿐이다. 월요일에 가면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꽉 들어찬다. 그리고 어제는 우체국 앞에 다섯 명 정도가 서 있었는데 처음엔 일행인줄 알았는데 모두 우편 접수를 기다리는 사람들이었다. 캐리어를 끌고 온 아주머니, 백팩을 멘 대학생, 박스를 손에 든 아저씨가 차례로 줄을 서 있었다. 바로 앞에 서 계신 분은 '신선식품'이란 스티커가 붙은 박스를 소중하게 안고 계셨다. 식품은 상하기 쉽다. 기온, 압력에 민감해서 택배로 물건을 배달할 때면 더욱 신경이 쓰인다. 몇 번이나 테이프를 돌려 포장하고, 새는 데는 없는지 꼼꼼하게 살펴본다. 정성이 배로 들어간다. 앞에 서 계신 아주머니도 소중한 사람에게 설 선물을 보내시는 것 같았다. 하지만 품에 꼭 안고 있던 상자는 순식간에 다른 박스 사이에 올려졌다. 


그리고 순식간에 이별이란 단어를 떠올렸다. 마음을 준 사람이나 사물을 떠나보내는 일, 겪고 나면 마음이 황량해지는 사막의 모래 같은 그런 일. 그리고 곧 내가 앞둔 헤어짐이 생각났다. 사실 이별에 그리 익숙하지 않다. 최초의 안녕은 함께 살고 계시던 외할머니가 삼촌 집으로 가셨던 일이다. 초등학교 저학년 꼬마는 할머니를 다시 볼 수 없다는 건 안중에도 없이 친구들과 산에 올라갔다. 해가 지고 나서야 할머니가 가신 게 실감나서 할머니 베개를 끌어안고 울었다. 아주 어렸을 때 일이지만 선명하게 기억이 나는 건 이별 경험이 적어서일지도 모르겠다. 초등학교 친구가 병으로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실감나질 않았다. 나중에 방 정리를 하다가 스무살이 되면 63빌딩에서 만나자고 약속했던 편지를 보고 또 펑펑 울었다.


그 뒤로는 제법 평온하게 살았다. 큰 싸움없이 밀림도 밀려남도 없이 그렇게 지냈다. 다른 사람들의 파란만장한 연애사에 비하면 연애 역시 너무 평범하고 고루했다. 가장 최근에 헤어진 친구와는 세 달 남짓 만나고 헤어졌다. 하지만 후폭풍은 오래 갔다. 생각해보면 마음을 다해 좋아했다거나 추억이 많은 사이도 아니었다. 그저 '이별'이라는 게 버거워서 그랬던 것 같다. 그때 처음 알았다. 내가 헤어지는 일에 익숙하지 않다는 걸. 그래서 더 겁을 먹게 됐는지도 모른다. 앞으론 더욱 많은 안녕이 기다리고 있을텐데 여전히 누군가의 마지막 인사는 무섭기만 하다. 


내일 모레 이사를 간다. 30년 이상 산 우리 집에서 다른 집으로 간다. 우리와 같이 집도 나이를 먹었다. 물만 틀면 바닥이 깨질 듯이 울려서 공사를 한 적도 있다. 오래된 냉장고는 열고 닫으면 웅웅 노래를 부르고 현관색도 바랬다. 그래서 집을 옮기고 오래된 물건들도 다 새로 사기로 했다. 나의 모든 추억이 깃든 이 곳에 이제 영영 돌아오지 못한다. 치매로 오래 고생하신 할머니가 계시던 작은 방엔 항상 머리기름 냄새가 났다. 그땐 그게 몸서리칠만큼 싫었는데 가끔 익숙한 향기가 나면 울컥한다. 내가 초등학생, 언니가 중학생일 시절엔 공부 열심히하라고 엄마, 아빠가 안방을 내주기도 하셨다. 통나무로 된 기다란 책상을 방 한쪽에 밀어넣었는데, 책상 위엔 교과서보단 우리가 더 많이 올라갔다. 거기 올라가서 앉아있는 게 그땐 왜 그렇게 재밌었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한번은 생일파티라는 명목으로 반 친구들 대부분을 집에 데려온 적이 있다. 엄마가 손수 만들어주신 햄버거와 케익을 나눠먹으면서 몇 명은 책상 위에 올라앉기도 했다. 


애틋해진 눈으로 돌아본 집 구석구석엔 오래된 흔적이 많다. 장농 안엔 색연필로 낙서해둔 게 지워지지 않고 그대로다. 주방 작은 창엔 아직도 오후 1시만 되면 밝은 햇살이 쏟아져 농협 달력 귀퉁이에 그림자를 만든다. 화장실 창문엔 가끔 샤워기로 물을 뿌리면 별처럼 반짝인다. 그게 보기 좋아서 하염없이 앉아있다가 화장실이 급했던 언니가 뛰어들어오기도 했다. 낡고 오래됐지만 이 집은 그대로 있었으면 했다. 다른 집에 이사 가도 내가 돈을 많이 벌어서 이 집을 사는 꿈을 꾸곤 했는데. 여전히 내 손엔 집을 살만큼의 돈은 없고, 내일 모레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는 곳이 된다. 


오랜만에 겪는 커다란 이별이다. 오래 알고 지낸 사람을 하나 두고 가는 심정이라 이번 이별의 후폭풍이 언제까지 갈지는 알 수가 없다. 갈색 벽돌로 지어진 작고 사랑스러운 우리 집을 여전히 많이 좋아하고 벌써부터 그리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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