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자리에서 만족하기 보단
발전을 도모하기
끝없이 자기 계발을 하기
어제보다 나은 사람이 되기
내가 가지고 있던,
내가 되기 바라는 나의 이미지가 있었다.
불우한 환경에서도
나는 나의 길을 걸었노라.
그래서 성공했고 행복했노라.
남들이 말하는 기준이 아니라
나의 기준에서 만족하고 가치 있는
삶을 보내고 있다 등등
이런 것도 내면의 에너지와 동기부여가
있을 때나 가능하단 걸 최근들어 깨달았다.
모닥불이 탈 수 있던 것도
누군가 장작을 꾸준히 넣어줬기 때문이 아닐까.
나는 스스로 열심히 장작을 넣었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난 작은 양초였는지 모른다.
내 심지는 다 타서 지금은 어떠한
노력, 발전, 진보의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그렇게 열심히 살던 분이
한줌의 재가 되었는데
그렇게 허망하게 가셨는데
가치고 의미고 나발이고
내가 추구하던 것들은
모두 허울 좋은 구실로 전락했다.
그러다보니 타협에 대한 생각이 꿈틀거렸다.
있는 자리에서 꾸준하게,
시간이 흘러가는대로 일상을 채우자.
첫 번째로 적용하려던 건
주3일 일하던 카페였다.
주3일 최저임금을 받으면서 일하는데
사실 씀씀이가 커진 상태에선 적금은 커녕
매달 마이너스를 면치 못했다.
그래도 주3일, 카페는 할만하단 생각이 들었다.
“이 카페에선 최대한 오래 일 해야지.”
생각이 들기가 무섭게
사장님이 나를 따로 부르셨다.
코로나로 가게가 안 좋아졌고
더 정확히는 사장님의 가정의 문제로
가게를 내놓을 생각이라고 하셨다.
그러니 다른 곳을 알아보라고...
눈을 질끈 감고, 40시간 일할 수 있는
직원을 알아봤다.
모 대학교의 계약직 자리 면접을 봤고
나는 해당 분야는 떨어졌지만
다른 분야 제안을 받았다.
2년 계약직으로 일하고
학교라는 분위기라면 내가 버틸 수 있을 것 같아서
한 달 뒤로 임용 일자를 잡았다.
그런 사이 사장님은 가정의 문제가
원만하게 해결되어서 가게를 내놓지 않게 되었다.
아르바이트생 중에는 발 빠르게 움직인
나홀로 떠나게 되었다.
모 대학교에 가서 첫날, 인수인계를 받는데
점심을 같이 먹는 계약직 선생님들이
나보고 도망가라는 신호를 엄청나게 많이 줬다.
첫 직장도 아니라서,
그들의 말에 흔들리진 않았지만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내가 어울릴 사람들이 이런 사람들,
처음 온 사람이 쉽게 적응하게 돕기보단
헐뜯는 이들.
정작 자신들은 떠나지 않으면서 종용하는 이들.
점심시간 내내 내가 얼마나 안 좋은 자리에
들어오게 되었는지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었다.
당시에는 방학이라서
기존 선생님들은 2시에 퇴근했다.
5시까지 있어야 하는 나는
조금 불편한 마음을 안고 내 자리에서
컴퓨터를 했다.
아무리 뭐라고 해도 2년은 버티자는 마음이 컸다.
이것도 안주에 가까운 신호였다.
집에서 가깝고 유명 사립대니까
2년 뒤엔 다른 학교 계약직으로 가는 것도
어느정도 가능하지 않을까?
심드렁하게 컴퓨터를 하던 중
파일하나를 발견했다.
부서 내 성비위 사건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왜 팀장 자리가 공석이었는지 알게 되는 순간,
피해자와 가해자가 누군지 특정되는 순간,
피해자와 가해자가 즉시 분리되지 않고
사건의 소문이 돌고 있다는 호소문을 보는 순간,
오갔던 탄원서, 반성문 내용을 확인하는 순간
그 자리에 있고 싶지 않았다.
대학원 교정을 오가며
학생들에게 좋은 기운을 받고
책을 읽고 워라밸을 꿈꾸던 나의 작은 안일함이
또다시 파편처럼 부서졌다.
나는 다음 날 출근하지 않고
담당자에게 다른 회사가 되었다는
거짓말을 앞세워 퇴사 통보를 했다.
인수인계를 해줬던 선생님한테는
조언을 받아들였다고 둘러댔다.
학교가 주는 상징성과 이미지에
도취된 기억이 많았기에,
그 대학교에 가지고 있던 나름의 선망도
안정적인 직장(2년이지만?)과
이후의 직장인 삶 등
물에 젖은 종이처럼 외면하려고 해도
눈길이 가는 모양새가 되어버렸다.
한 3일을 땅굴을 파고나서야
왜 나는 안주하려고 할 때마다
거스를 수 없는 어떤 것에 의해 흔들렸다.
정답을 알지 못한 채
오답 처리만 받는 기분,
또 다시 실패했다는 낙인과
죄책감, 창피함을 무릅썼다.
그러던 중 집 근처 1분 거리
편의점 아르바이트 모집 공고를 봤고 지원했다.
조끼를 입고 바코드를 찍는,
피곤에 쩐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편의점은 안주할래야 할 수가 없다.
아르바이트 신분에다가
9000원도 채 되지 않는 시급.
안일한 마음을 가진 건
요근래가 처음인데 말이다.
항상 의욕적으로 내가 있는 곳보다
높은 곳을 바라보면서 살아왔다가
내 발끝만 좀 보겠다는데
운명이란 놈은 뭐가 그리 아니꼬운 걸까.
진폭이 큰 파도가 나를 덮쳤다.
고통이 크고 물에 젖은 모습은
볼썽사납고 꼴불견이란
생각에 창피하기 그지없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물살에 밀리고 밀리다보면
햇빛에 바짝 말라 있는 모래사장까지
도달하겠지, 하는 마음으로
운명이 허락하는 그 무언가에 다다를 때까지.
삼촌이 시켜서, 언니가 결제하고 포기한
공인중개사 책을 어거지로 펼치고
미승인 받은 파일을 다시 한 번 수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