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6시, 평소와 다름 없이 눈이 뜨인다. 취침약을 조절하기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2층 벙커 침대 사다리를 익숙하게 내려온다. 종이봉투를 뒤적거려 비닐봉투하나를 집어 뜯는다. 초록색 세 알, 흰색 두 알, 하늘색 보라색은 한 알씩. 아침약을 먹고, 두 번 먹지 않기 위해 메모지에 “오늘 약 먹음” 이라고 적어 놓는다.
익숙한 공간에서 하루를 시작하는 게 생경하다. 지난 주가 너무 쏜살 같이 흘러갔다. 낯선 공간이 익숙해지고 익숙한 공간이 낯설게 바뀌는, 달갑지 않은 경험은 전화 한 통으로 시작되었다.
“은율아, 나 못 견디겠다.”
단 한 마디면 충분했다. 그동안 쌓인 데이터가 한 곳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할아버지의 힘에 부친 목소리에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킨다. 잠바를 입고 현관을 나서며 고민했다.
‘위치 추적을 하니까 119신고는 할아버지 집에 도착해서 해야겠다.’
걸어서 5분거리, 할아버지는 우리 집 근처에서 혼자 살고 있다. 할아버지의 전화는 요 며칠간 내과에 가고 수액을 맞고, 119의 긴급 출동을 요청했던 일화를 스쳐지나게 만든다.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무람없이 현관과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할아버지는 침대에 늘어져서 힘이 없다고 머리가 아프고 가슴이 아프다고 한다. 구급차를 부르려는 손짓을 다급하게 사양하고 빨리 택시를 부르라고 손짓을 한다.
세브란스병원 응급실을 도착지로 설정하고 택시를 불렀다. 할아버지는 평소에도 볼일을 본 후 손을 씻지 않아, 내가 손을 잡기 싫어하곤 하는데 지금만큼은 예외다. 후들거리는 손을 붙잡는다. 내복바람에 잠바하나 걸친 노인의 행색은 고목처럼 보인다.
뇌경색 2번, 간경화, 고혈압, 안과 질환.
나는 무신경하게 생각했다. 이번엔 무슨 질환이려나. 얼마나 입원하려나. 응급실 환자를 대처하는 심드렁한 의료진처럼 나도 할아버지를 휠체어에 앉히며 생각한다.
“수용 여부가 결정되면 알려드릴게요.”
이 한 마디에 머리가 튀었다. 할머니는 4년전 폐암으로 돌아가셨다. 소위 말하는 응급실 뺑뺑이를 돌았고 항암을 했던 세브란스 병원에서 받아주지 않아 다니지도 않던 강북삼성병원에서 마지막을 맞이하셨다.
응급실의 거절은 곧 사망으로 연결된다는 트라우마가, 평온했던 마음에 파동을 일으킨다. 나가라는 손짓에 일단 나왔는데 미처 말하지 못한 것들, 증상 질환들이 마음에 하나둘씩 걸리기 시작했다.
‘우리 진짜 긴급인데. 엄살아닌데.’
야속함과 다급함이 나를 재촉한다. 할아버지는 구급실에 들어갈 수 있을까? 구급실의 문턱을 넘을 수 있을까?
애꿎은 원무과에 가서 호소를 하자 의료진에게 말하라고 한다. 문을 열자 입을 열기도 전에 나가라는 손짓을 하며 짜증을 내는 의사. 문득 눈길이 안내판에 닿는다.
‘의료진에게 폭력과 폭언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폭력까진 아니더라도 폭언은 할 수 있을 것 같은 용기가 샘솟는다. 아. 소리지르고 싶다. 다 뒤엎고싶다. 너도 이 공간에서 벗어나면 아무것도 아닌 존재이면서 어떻게 그런 태도를 취할 수 있는 거냐며, 소리지르는 나를 상상한다.
30분의 대기 후 우리는 B구역 2번 자리에 배정을 받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지난번 급성 뇌경색으로 입원했을 때랑 같은 자리다.
할아버지는 계속 복통을 호소하고, 나는 아무것도 못하고 대기만 한다. 왔다갔다 하는 분주한 의료진과 아픈 사람들의 천국.
그래, 응급실 한동안 안왔지. 내 현실을 잊으려고 할 때마다 운명이 알려주는 것 같다. 네 자리는 거기가 아니라 여기란다. 네 자리는 그렇게 웃으면서 떠들 수 있는 자리가 아니야, 왜 자꾸 잊으려고 해.
사흘 전까지 나는 주술회전 피규어 재입고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게 이렇게 사치처럼 느껴질 줄은 몰랐다. 내일이 재입고일이라서 홍대 메가하우스로 오픈런을 갈까 했던 것도 다 소용없는 일이 되었다. 일상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응급실 바로 옆은 장례식장. 할머니 장례식이 치렀던 곳. 1층에는 스타벅스, 지하1층에는 편의점이 있다.
검색할 필요도 없이 카드를 챙겨서 커피를 주문했다. 카페인은 최소한으로 먹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오늘은 밤이 길거니까, 아니 어쩌면 밤이 없을지도 모르니까 샷도 추가했다.
왔다갔다 오고가는 사람들의 질문에 아는 만큼 답변을 했다. 보호자 의자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동안 할아버지는 엑스레이도 찍고 씨티도 찍었다.
“심장 혈관 세 개 중 가장 중요한 혈관이 막혀 있고.또 다른 혈관 하나도 거의 막혔어요.”
관상동맥조영술, 지금은 익숙한 그 단어지만 그때는 처음 들은 그것을 해야 한단다. 그러면서 할아버지의 나이가 90세인 것, 기저질환이 있는 것을 고려하면 보호자와 본인의 동의가 필요할 것 같다고 첨언한다.
“관계가 어떻게 되세요?”
왜 자녀가 아니고 손녀가 왔냐는 섬세한 배려에 말문이 턱 막힌다. 그동안 내가 겪은 대학병원 의사들은 항상 권위적이었는데, 방금 전에도 응급실 수용 여부로 의료진의 딱딱함을 속으로 욕했는데 이 사람은 또 뭐지 싶다. 유구한 역사를 가진 불행서사를 꺼내고 싶지 않아서 얼버무리자 본인동의를 가장 최우선으로 삼고 고민의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내 손가락은 스마트폰 위를 바쁘게 움직이며 언니와 지영이에게 상황을 알린다. 마치 손가락이 빨리 움직이면 불안을 가시게 해주기라도 하는 듯이.
“안 해! 죽는다는데 안 해!”
의사가 사라지자 할아버지의 걸걸한 목소리가 귓전을 때린다. 안하면 그냥 퇴원. 이미 먹고 있는 약이 있기 때문에 따로 처방할 것도 없다. 이대로 집에 가면 안될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가도 되는걸까? 조영술과 막혀있는 혈관. 고령으로 인한 합병증과 시술 자체의 위험성. 저울을 잴 수 없다. 내 저울은 고장나 버려서 판단을 멈추고 이쪽 저쪽 말을 전하며 뻐꾸기 시계처럼 울기에만 바빴다.
낯선 환경, 낯선 사람들 속에서 숨이 막혀 오고 울적해지려고 한다. 목을 조이는 감각이 살아나려고 한다. 비상용으로 가지고 다니는 주황색 안정제를 한 알 커피에 먹고 이를 꽉 물었다. 대학병원 의사는 권위적이고 대화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강박관념을 안고 있는데, 그걸 이겨내야 한다.
“정말 죄송한데요. 많이 위험한가요?”
의사를 찾아가서 물어보자 멀리 있던 간호사가 뛰어와서 제지하려고 했다. 이내 내용을 듣고 물러났다. 그 친절한 의사도 고민에 빠진 얼굴이었다. 80대만 되었어도 고민없이 권유했을 텐데 나이와 기저질환을 고려했을 때 과연 도움이 되는가란 의문이 끊이지 않는다고 했다.
이내 막힌 목구멍을 뚫고 입이 제멋대로 움직인다. 이런 질문이 내 입에서 나올 줄은 몰랐다.
“할아버지한텐 말 안 할게요. 선생님 가족이시면 어떻게 하시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