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관계가 어떻게 되세요?

수학은 못해도 애매한 건 정말 싫다. 어렸을 때부터 수학은 젬병이었다. 구구단 8단은 나에게 늘 허들이었고 장벽이었다. 6학년이 되어서야 겨우 암기에 성공한, 9단보다 어려운 8단. 그래도 등호는 좋았다. 답을 찾는 방정식도 재미있었다. 뷰파인더의 초점이 명확해지는 그런 지점. 정답이 딱 떨어지는 것, 또렷한 선, 똑 부러지는 것은 사람을 기분 좋게 한다.


병원을 다니는 일은 몸의 문제에 대한 답을 찾는 일이다. 정답을 찾기 위한 풀이 과정이 중요한 것처럼 치료의 과정도 중요하다. 그중 가장 사소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 그렇기에 가장 많이 듣는 말이다.


“환자분 성함이랑 등록번호요.”


그리고 그 질문은 바로 나에게 이어진다.


“같이 오신 분 관계는요?”


으레 물어보는 질문인데도 괜스레 위축된다. 목 늘어난 티에 츄리닝 바지, 부스스한 단발머리에 안경을 쓴 화장기 없는 맨얼굴. 피곤에 찌든 내 모습을 알고 있기에 한 번 더 움츠러든다.




“손녀예요.”


부모도 자녀도 아닌 한 다리 건넌 관계. 애매한 관계다. 때로 수완 좋아 보이는 간호사는 이렇게 묻기도 한다.


“따님이신가요?”


그동안 병원에 다닐 때 보호자의 역할은 크게 두 가지였다. 동의한다고 서명하고 수납하는 것. 고민의 여지가 없었고 결정은 단순했다. 일단 치료가 긴급했고 무조건 수술을, 치료를 해야 했으니까.


그런데 가장 최근에 간 응급실에서는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 우리에게 선택권이 있었고 무엇을 결정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졌다.


수술이 아니라 시술이었다.

하지만 90대의 나이와 기저질환이

시술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위험성도 있었다.


대리인, 보호자의 동의가 중요해진 순간은 소매가 어중간하게 짧거나 바지 길이가 끌리는 것처럼 애매했다. 할아버지는 시술을 이해하지 못했고, 당장 의사가 말하는 위험성에만 꽂혀 안 한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가늠해야 하는 상황. 본인의 의사가 중요하지만 지금처럼 환자 본인이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땐 보호자의 입지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다.


엄밀히 따지면 나에게 결정권은 없다. 의사도 자녀를 먼저 찾았고, 이내 나와 할아버지의 관계를 듣고 할아버지의 의사를 1순위로 삼겠다고 말한 뒤 자리를 떴다.


할아버지가 옳은 결정을 하게 하려면,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하려면 먼저 내가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이해하기 위해서 나는 끊임없이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허수아비처럼 곁에 서 있다가 수납만 하고, 보호라는 명목 아래 동행만 하던 가짜 보호자인 내가 이제 진짜 환자의 보호자 역할을 도맡아야 했다.


“수술 아니고 시술이고 전신마취 아니고 정신이 깨어 있는 상태에서 한대. 마취 안 한다고! 정신 차린 채로 한대!”


귀동냥으로 겨우 들은 정보를 할아버지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귀가 좋지 않은 할아버지는 얼굴을 한껏 찡그린다. 덩달아 나도 얼굴을 찌푸린 채 큰 소리를 낸다.


요즘은 그래도 옛날보다 인식이 넓어졌고 우리도 나이가 있어서 덜하지만, 20대 때는 나만 튀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조약돌 사이에 끼어 있는 자갈. 궁금한 듯한 주변의 시선. 조금 더 오지랖이 넓은 사람들은 말을 걸기도 한다.


“할머니랑 온 거야? 착하네.”


뭐가 착하다는 건지 알 수 없지만 어색하게 웃으며 대기하는 순간은 내게 수치스러웠다. 그나마 할머니는 양육자라는 인식이 있어서 심리적인 거리가 가까웠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어렸을 때부터 먼 관계였고, 할머니를 때리는 무서운 사람이라는 인식이 컸다. 심리적으로도 법적으로도 거리가 먼 사람인데 애틋한 가족 프레임을 입는 것도 위선이다. 검색할 수 있고 정보가 충만한 내가, 알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쉽게 풀어 전달하는 것뿐이다.


그런데 이 감각, 낯설지 않다.


‘나는 성격이 급해서 말을 길게 하거나 구구절절 설명하는 게 너무 싫은데. 이런 성미를 고치라는 의도일까.’


그날, 할아버지를 중환자실에 입원시키고 집으로 돌아와 두 살 차이 나는 동생에게 나는 이렇게 설명한다.


“하수구 있지? 하수구? 그런 거 막힌 것처럼 할아버지 혈관이 막혔대. 근데 너무 낡아서 뚫다가 터질 수도 있는 그런 거야.”


새벽까지 자지 않고 나를 기다린 동생은 이제야 상황 파악이 되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남의 혈관을 하수구에 비유해서 좀 미안하다는 감정이 들긴 하지만, 빨리 설명하고 자고 싶은 마음이 우선이다.


“세 자매인 거예요?”


가족관계를 물어보는 질문에 언니 하나 동생 하나 있다고 하면 되돌아오는 질문이다. 관심은 귀찮은 부연설명을 낳는다.


“아, 사실 사촌인데요. 어렸을 때부터 같이 살아서 거의 자매나 마찬가지예요.”


부모도 자식도 아닌 동생. 그것도 또 한 다리 건너는 사촌 동생. 어린 시절부터 같은 이혼가정 자녀이자 조손가정의 처지로 같이 산 동지.


친동생이라는 감각은 충만한데 사회는 우리를 그렇게 가깝게 취급하지 않는다. 지영에게는 심리적으로 먼 아빠가 법적으로 가깝고, 물리적으로 심리적으로 가까운 나는 법적으로 훨씬 멀다.


지영이의 지능이 표준편차의 범위 안에 있었다면 우리 관계는 그다지 특이해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지영이의 지능은 보통을 조금 밑돈다. 경계선 지능인으로 라벨링되는 내 동생.


나는 동생과 같이 살면서 어려운 말을 쉽게 설명해주고, 이해되지 않는 것들을 풀어주고 또 해결해주는 역할을 해왔다.


관심을 꺼달라고 하고 싶지만 도움을 받으려면, 안전하려면 사람들의 시선과 사회의 관심이 필요하다. 나이가 많은 노인에게도, 경계선 지능인인 지영에게도 모든 것이 부담스럽다. 과하다. 세상은 너무 빠르다. 그리고 너무 명확한 것을 요구한다.


명확한 걸 좋아하는 내게 보호자라는 단어처럼 명확하면서도 애매한 단어는 또 없다. 법적으로는 가족이 있고 서류에는 관계가 적혀 있다. 하지만 막상 누가 설명을 듣고, 누가 질문을 하고, 누가 결정을 함께 고민하는지는 종종 전혀 다른 사람이다.


장소가 바뀌고 사람이 바뀌면 또다시 익숙하면서도 낯선 그 문장이 들려온다.


“관계가 어떻게 되세요?”


숨을 한 번 고르고 대답한다.

“손녀예요.”


그리고 속으로 덧붙인다.

지영의 보호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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