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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냥 Nov 22. 2019

책임감 두 스푼

처음엔 감정 해방용으로 시작했던 것 같다. 버리려고 현관 앞에 둔 택배 박스를 다시 방 안으로 들여서 아무에게도 쉽게 보여주지 못한 감정을 와르르 쏟아낸다. 그리고 박스 윗부분을 격자 모양처럼 겹쳐서 열리지 않게 해 본다. 일단 감정을 쏟아냈기 때문에 작은 해방감이 들었고 조악하지만 한 편의 글을 썼다는 것에 보람을 느낀 것 같다. 기록하는 것에 항상 모종의 두려움이 있었기에 (과거 다이어리 사건...) 나도 모르게 해 버리는 자기 검열이 괴로웠지만 그래도 조금씩 걸음마를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어젯밤 조금 다른 생각이 들었다. 브런치 통계를 보는데 내 브런치 북에 실린 한 편의 글을 완독한 사람이 한 명 있다는 수치였다. 운 좋게 얻어걸린 검색어가 아니라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해준... 익명의 누군가가 이 세상 어디엔가 존재한다는 뜻으로 다가왔다. 누군가에겐 별 볼 일 없는 숫자일지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내 글을 봐준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신기하고 감동이기도 하고 또 어떤 의미로는 무겁게 다가왔다. 0에서 1 그 차이만큼이나.


할 일도 많고 재미있는 것도 많은데 그중에서 글을 택하고 글쓰기의 날고기는 이들이 많고 많은 이 브런치에서 무명의 작가 지망생이 쓴 글을 완독 해주었다. 아 이게 장난이 아니구나 싶었다. 그 사람이 내 글에 할애해준 귀한 시간이 헛되지 않게 하고 싶었다. 더 꾸준히 쓰고 제대로 쓰고,  그리하여 책임감 두 스푼. 한 번은 정 없다는 말을 빌려서 한 스푼은 너무 약하다. 그렇다고 세 스푼을 넣기엔 공수표를 날리게 될 것 같아 조심스럽다. 딱 두 스푼. 책임감 두 스푼을 넣어 맛깔나는 글을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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