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율냥 Nov 28. 2019

독립 선언

서른 살이 되던 해 여름 짐을 싸서 이사를 했다. 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리니 의지가 생겼고 이번 기회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시작은 비록 타의였지만 과정 자체는 주체적으로 이뤄졌다. 4인 가구라고 하면 으레 부모와 자녀로 구성된 가족을 생각하기 쉽다. 우리 집은 할머니, 언니와 나, 사촌 동생 이렇게 넷이서 살고 있다. 왜 이렇게 살게 되었냐고 묻는다면 햇살 가득한 기분 좋은 날 암막 커튼 친 채 불 끄고 혼자 있는 기분이 될 테니 이건 각자의 상상으로 맡기려 한다.


내 정서적인 문제로 피해 보는 가족들, 회사 거리, 20대 후반이 되어서까지 본인 방 하나 없는 사촌동생 등등 이런 복합적인 요소와 함께 서른이라는 나이가 큰 역할을 했다. 서른. 20대 때 못한 뭔가 해냈다는 수식어가 달리면 폼나지 않을까. 차도 없고 면허도 없다. 애초에 관심도 없다. 30대 초 대리 직급을 다는 주변 이들도 있는데 대리까지는 구만리. 그리고 가능성도 없다. 안 되는 선택지를 제하고 남은 건 독립. 돈은 없었지만 청년 대출 상품을 또 기막힌 타이밍에 접했다. 주머니 가벼운 뚜벅이들이 비빌 수 있는 임시 둥지 하나는 만들 수 있겠구나 싶었다.


“이번에 집 이사하기 전에 독립할게요.”

“... 그래.”


어딘가를 바라보는 듯한 표정으로 곰곰이 생각하던 할머니가 가볍게 대답했다. 나는 할머니에게 다부진, 깍쟁이, 어떻게든 아등바등해보려는 손녀딸이라는 이미지가 있다. 그래서 이번에도 별 반응 없이 수긍한 줄 알았다. 며칠 뒤 손녀딸들의 단톡 방에 메시지가 올라왔다.


[할머니가 괜찮은 집 찾았대. 독립하지 말고 같이 살 수 있는 집으로.]


일렁이는 감정. 왜 독립을 선택했는지 다시 한번 마음을 다 잡고 이야기해본다. 며칠 뒤.


[할머니 운다.]


메시지를 보자마자 콧물이 났다. 떠나는 것이 아니라는 걸 다시 한번 말해본다.

이번엔 내면에서 물음이 올라온다.


‘무슨 생각으로 일을 벌여? 빚지는 게 애들 장난인 줄 알아?’


고개를 세차게 흔들고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에 접속한다. 기분이 무거워질 때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면 한순간에 감정이 휘발된다.


마음먹은 것부터 이사까지 4개월. 자취 경력은 4개월이지만 앞으로 더 쌓일 예정임!

그때와 오늘 그리고 앞으로의 이야기이다.




작가의 이전글 책임감 두 스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