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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냥 Dec 02. 2019

유무에 관하여

최근 들어 마음이 더 복잡해졌다. 그동안 받은 스트레스가 몸으로 올라왔다. 염증이 생겨서 약을 먹고 있는데 식후에 바로 먹지 않으면 속이 메슥거릴 수 있다 했다. 금주는 필수. 몸이 너무 안 좋아서 자연스레 약에 의존하게 되는데 약을 먹으려니 밥을 먹어야 하고 먹기 싫은 밥을 억지로 챙겨 먹으려니 발악을 하는 기분이다.


사흘 뒤 병원 가능 길. 크레인이 쓰러져서 인도가 통제되었다. 통제하는 경찰에게 저쪽에 병원이 있어야 가야 해요. 말을 하니 보내줘서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다른 종류의 염증이 발견되어서 약을 사흘 더 먹자고 했다. 의사 선생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고개를 숙이는데 마음도 떨어지는 기분이다.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나.'

'이렇게까지 그 회사를 다녀야 하나.'


불금 사람이 바글바글한 홍대 거리를 뚫고 자취방으로 향한다. 미래 걱정은 하고 싶지 않지만, 집에 둔 고구마에서 순이 나듯 자연스럽게 피어오른다. 감정이 덮치기 전에 객관화시키려고 노력해 본다.


과거라는 변하지 않는 사실은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지만 몸이 아프다는 예외적인 요소에 멘붕이 왔다. 암전이 된 방에 12시에 누워도 새벽 3시까지 잠이 오지 않았다. 가슴이 벌렁거리다가 머리가 아프다가 화가 났다가를 반복했다. 며칠을 반복하니 입안이 다 터지고 잇몸은 부어올랐다. 통제할 수 없는 과거까지 원망스러워질라치면 객관화시켜야 한다. 그래야 덜 서럽다.


집 근처엔 고가 아파트가 하나 있다. 그 앞을 지나면서 생각했다.

'부모의 유무의 1/2의 확률에서 나는 없다에 속한 것뿐이야.'


아파트 앞 횡단보도에서 대학생으로 보이는 남자가 웰시코기 한 마리를 산책시키려는 듯 서있다. 강아지를 보며 한 번 더 생각해본다.


'돈이 있다 없다의 1/2의 확률에서 난 없다에 속한 것뿐이야.'

'가족과 재력의 유무를 각각 50점으로 배분해서 100점 만점이면 난 0점에서부터 시작하네.'

'음... 그렇군.'


명제가 참임이 증명되니 차가운 사실이 가슴에 또르르 걸린 기분이 든다. 서글퍼지진 않는다. 사실이니까. 그냥 이런 현실을 잊을만하면 주지 시켜야 발을 땅에 단단히 동여맬 수 있다.


글을 너무 쓰고 싶었는데 몸과 마음에 여유가 없다 보니 마음만 가득했다. 그래도 지금 다시 힘이

나서, 더 힘을 내보려고 글을 쓸 수 있어 다행이다.빨리, 다시, 원래대로, 건강해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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