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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냥 Oct 21. 2019

회사 이야기

임원과 사원 : 중간관리직이 없는 이유

9시까지 출근해야 하는데 요즘 들어 8시 59분에 착석한다. 하고 싶은 일이라면 30분 전에 도착해서 준비하던 내가 이 정도로 시간 개념이 없어질 정도가 되었다. 중고등, 개근상 없는 대학교에서도 지각과 결석 없이 학교를 다녔지만, 회사 생활을 시작하고 나서는 점차 아슬아슬한 출근이 반복되고 있다. 최근엔 택시를 타고 출근했으니 말 다했다.


원인은 간단하다.  일이 하기 싫어서.

프로 이직러 & 프로 봇짐러를 자청하는 나는 입사와 퇴사를 간헐적인 주기로 반복했으며 이로 인해 면접에서도 어느 정도 도가 텄다. 이때는 면접을 잘 본다는 말이 아니라, 대강 느낌이 온다. 나를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그리고 당락 여부까지. 또한 업종 변경을 자주 해보면서 업무로는 결코 자아실현은 할 수 없지만 무언가 얻어 갈 수 있다는 느낌을 주는 것은 무척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여기서 말하는 것은 실제적인 여부와 상관없이 ‘얻어가는 느낌’을 말한다). 회사가 거지 같지만 본받고 싶은 사람이 있는 것, 물어볼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것. 회사가 정말 거지 같지만 연봉이 높은 것, 분위기가 좋은 것 등등 하나의 요소만 잘 채워지만 어떻게든 다니게 된다. 하지만 지금 회사는 이 모든 것이 채워지지 않아서 관두고 싶은데 나이를 필두로 한요인으로 인해 관두지 못하고 상황을 관망하고 있다.


오래된 기업일수록 보수적이고 변화에 둔감하지만 지금 다니는 직장은 이제 궤도권에 오르는 직장인데도 너무나 보수적이다. 콘텐츠를 다루는 치고 너무나 절차와 형식을 중요시하는데 알맹이가 없다. 이런 곳의 특징은 중간 관리직이 없다는 것인데 경력이 어느 정도 찬 사람들은 이곳이 얼마나 불합리한 곳인지 알기에 알아서 짐을 싸서 나가는 것이다. 또한 업계에서 소문이 좋지 않아서 경력직이 오질 않으며, 연봉 또한 낮아서 경력이 있는 이들은 이 회사 자체를 입사 선택지에 넣지 않는다. 그리하여 이러한 곳은 사회 초년생의 비중이 높다. 겉으로는 우리는 인재 양성을 선호한다, 젊은 기업이라는 그럴싸한 포장을 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애들 갖고 열정 페이 그 이상의 업무를 넘기며 애들이 갈려나간다.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들, 정말 슬프게도 졸업하자마자 회사에 들어온 쌩 신입들은 일을 배우기에 바빠서 또는 모든 것이 생경해서 특유의 그 초롱초롱한 눈빛을 내뿜는다.


그리하여 이런 조직은 사원과 임원이 한 팀에 배치되어 있다는 아이러니 속에 있으며 선임이라 부르기 민망한 선임 사원과 신입 사원 둘로 나뉘게 된다. 임원은 자기에게 배치된 방구석에 처박혀 있으며 사원끼리의 텃세와 알력을 모른다. 선임이라 부르기 민망한 선임 사원(나는 이를 선임이라 인정하지 않지만 여기서는 선임이라 칭하고자 한다)은 신입 사원들에게 젊은 꼰대짓을 하면서 정확하지 않은 정보를 그럴싸하게 포장해서 알려준다. 그러면 신입 사원은 알려준 대로 해서 사고를 치고 임원에게 대판 깨진다. 이럴 때 선임 사원이 본인의 실수를 인정하고 잘못 알려준 것에 대한 매를 맞아야 하지만 아쉽게도 사원들은 맷집이 약하다. 선임은 신입이 깨진 모습을 보면서 위로를 하고 자신의 마루타로 삼은 것에 대한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지만 절대로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으며 사과하지 않는다. 신입은 회사의 거지 같은 구조를 모르기 때문에 남 탓을 하기보단 자책을 하며 눈물을 글썽인다.


내가 만난 선임은 알랑방귀의 귀재여서 임원의 눈과 귀를 막아 놓았다. 비선 실세인 선임은 임원에게 거짓된 정보를 줬고 방구석에 처박힌 임원은 제대로 된 실상을 파악할 생각도 하지 않고 선임이 주는 정보 자체를 무한 신뢰하는 무능력한 사람 그 자체였다. 이 둘의 특징은 자신들이 무척 유능하고 일을 잘한다고 생각하며 부서를 먹여 살린다고 착각하는 점이었다. 나에게도 종종 너는 하는 일이 뭐냐, 내가 해준 거 뒤처리만 하는 것 아니냐, 네 일은 내가 다 떠먹여 준다는 식의 나의 업무 영역을 비하하고 질타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그리고 선임 사원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여실히 드러내며 선임이 얼마나 일을 많이 하는지 알긴 하냐고 따지고 든다. 그럴 때 나는 속으로 선임이 얼마나 사고를 많은 사고를 치는지는 알고 있다고 대답한다.


나는 순하다고 평가받는 외모와 달리 나름의 주관과 기준이 있으며 특히 부당하다고 생각되는 임계점을 넘으면 거침없이 말한다. 업종이 다른 직종에서 다년간의 작은 경험이 있는 중고 신입으로 내가 스쳐지나 온 회사들은 부당한 점은 있었지만 내 개인을 궁지로 몰아세우거나 인격적인 말살을 시도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물론 그런 사건이 있었어도 어느 정도 잊힌 과거가 된 수준이었을지도). 초반부 몇 개월은 묵언 수행이라도 하는 듯이 업무를 쳐냈고 같잖은 조언과 관심에도 어느 정도 선을 두고 대응했다.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났을 무렵 선임 사원의 실수로 인해 내가 욕받이가 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근원지는 알 수 없었지만 피가 거꾸로 솟는다는 말을 체감했다. 이윽고 임원은 나를 자기 방으로 불러서 따지고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항상 멘트는 이렇게 시작했다.


 “이건 ## 잘못이야.”

그동안 몇 번은 참고 넘어갔지만 이 건에 있어서는 한계 범위를 넘어선 감정적인 발언과 과도한 선임 감싸기에 분노가 치밀었다. 애초에 실수는 선임이 했는데 왜 내가 방에 불려 들어갔을까 하는 마음이 들기 시작하여 한 마디씩 뭐가 잘못되었는지 알려주기 시작했다. 그러자 임원은 태도 지적으로 총구의 방향을 바꿨다. 나이와 직급이라는 한국사회에서는 거의 절대적인 기준이라 불리는 것에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리하여 결과적으로는 그 부분에 있어서만 사과 표시를 했다.


이후 상기된 얼굴로 방을 나온 나는 선임의 자리로 가서 ‘너 때문에 내가 욕을 먹고 왔다’라는 팩트를 제대로 꽂아주고 왔다. 그동안 쌩 신입들처럼 뒤에서 혼자 훌쩍일 줄 알았던 모양인지 나를 쳐다보기는 하나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이후 선임으로부터 사과의 메시지를 따로 받았고 그녀는 나와 단둘이 있는 상황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였다.


사건이 어느 정도 정리되었을 때 임원에게 “다른 회사 같았으면 그런 대화를 할 바에 그냥 짐 싸들고 나갔어요.”라는 나의 솔직한 심정을 밝혔다. 이 말을 하고 나는 이것이 그녀에게 어느 정도 경고, 의사표현이 된 줄 알았다. 하지만 몇 주 뒤 비슷한 일이 또 터졌다. 선임은 이 회사에 다년간 다닌 만큼 임원의 눈과 귀를 가리는 데는 성공했지만 업무 능력을 키우는 데는 실패했다(이는 팩트이다). 같은 실수를 반복해서 터트렸다.


수습하기에 진력이 난 나는 마지막 사건을 끝으로 퇴사 의사를 밝혔다. 1년은 다니길 희망했고 그랬기 때문에 버티려고 노력했지만 안될 것 같다고. 선임에 대한 임원의 객관적인 판단은 차치하더라도 수습으로 인해 매주 자정이 넘는 시간 퇴근했으며 이를 방구석에 처박힌 임원은 알지 못하는 것. 그럼에도 모든 잘못은 내 책임이 되는 것. 1년도 안된 사원에게 너무나 많은 짐을 돌리면서 압박도 함께 주는 것과 인격 모욕적인 행위에 참을 수 없다는 것을 밝혔다. 다른 회사였으면 짐 쌌다는 말이 웃으면서 그냥 한 것이 아니라는 속마음도 다 꺼냈다.


나이도 많고 애매한 경력만 가득한 나는 어떻게든 이 회사에 뿌리를 내릴 생각이었다. 아니 적어도 2년은 다니고 이직하자는 목표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올 불이익을 초과한 불합리에 꽥 소리를 지를 수밖에 없었다.

“배수의 진을 치고 말하는 겁니다.”


이 정도 대화가 오갔을 때 짐작이 되는 부분이 있으리라. 맞다. 나는 1년도 되지 않았지만, 이 회사에는 쓸모없는 경력이지만, 중고 신입이라는 명목으로 삼 개월이 지난 시점부터 수많은 일이 넘어왔고 일부 실수 많은 선임이 처리하지 못하는 일도 맡게 되었다. 초롱초롱, 말똥말똥한 눈으로 쳐다보는 쌩 신입(정말 많이 들어오고 정말 많이 나갔다)들 밖에는 일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그동안 웃으면서 얘기하던 내가 별안간 펑하고 터트리자 임원은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느꼈는지 존대를 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배는 출항했고 막차 버스는 떠났다. 내 눈치를 살살 보기 시작했고 나의 짧은 경력으로 어쭙잖은 조언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우스운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여기서는 나가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평생을 산 사람은 고칠 수 없다는 것이다.


깔끔하게 정리하고 회사를 나오면서 다시는 이런 회사에 발을 들이지 말자는 생각이 들었다. 중간 관리직이 뿌리내릴 수 없는 회사, 사원을 일에 갈아 넣는 회사는 오래가지 못한다. 임원과 사원 두 가지 직급이 기형적으로 얽혀 있는 조직은 그럴 수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을 것이다. 애매한 경력과 차곡차곡 쌓인 나이가 가끔은 불안하지만 이것들도 나를 형성하는 일부이다.


3월, 공채시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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