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를 도피하는 글쓰기 4
"넌 참 인내심이 없어. 좀 진득하게 참아봐! 무슨 일 있으면 벌벌 떨고 말이야."
감정과 고통은 상대적인 거지만 난 습관적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내 상황에 처한다면 다른 사람도 이렇게 힘들어할까?"
"내가 지금 느끼는 감정은 객관적으로 타당한 걸까?"
"다른 사람이라면 넘어가는 일을 나는 괜히 예민하게 붙들고 있는 거 아닐까"
마음이 아파서 약을 먹고 나서야 내가 느끼는 괴로움을 조금 인정할 수 있었다. 나는 약을 먹을 정도로 괴로웠구나. 내가 엄살떤 게 아니라서 다행이다.
조손 가정에서 살고 있는 난 가부장적인(본인들은 모름) 할아버지와 할머니 밑에서 자랐다. 두 분은 살아오신 시대는 비슷하신데 성향은 정반대다. 책임감, 가족에 대한 사랑, 미래 계획 등. 최근엔 여기에 한 가지 더 추가됐는데 아플 때의 대처하는 방식이다.
할아버지는 엄살이 굉장히 심하고 할머니는 고통을 이 악물고 참는 스타일이다. 이게 참 아이러니하다. 할아버지는 세상 물정을 모르고 마음 가는 대로 살아서 고통과 어려움에 취약한데 비해 할머니는 세상 풍파를 정면에서 맞닥뜨리느라 고통과 역경을 감내했고 그만큼 익숙해진 거다.
나는 학창 시절에 할아버지한테 맞은 적이 몇 번 있는데 정말 힘이 세셨고 한 대만 맞아도 진짜 나가떨어졌다. 많이 아팠다. 할아버진 제대로 된 일을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원하는 건 항상 편하게 얻으셨기 때문에 몸과 마음이 건강하신 거다. 무슨 일만 있으면 병원에 가시고 온 식구들에게 전화를 해서 본인 아픈 걸 어필한다.
반면 할머니는 낮엔 아파트 청소부, 저녁엔 멸치 장사를 하면서 남편과 손녀딸 셋을 건사했다. 할아버지의 일방적인, 이유 없는 폭력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나도 전해 들은 이야기지만(집에 없었다),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밀쳐서 머리가 냉장고에 부딪힐 뻔했고 폭력 영화에서 나올 법하게 머리채를 잡고 명치를 주먹으로 퍽퍽 친 적도 있다고 했다. 지금 생각하면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인기척, 구둣발 소리에도 벌벌 떨지 않았을까. 한밤중에 문 열고 때리는 걸 상상해도 이상하지 않았을 테니까. 할아버지의 폭력은 최근 할머니의 별거 선언으로 물리적으로 공간을 분리하고 나서야 막이 내렸다(별거했지만 도보로 10분 거리고 할머니는 종종 할아버지에게 찬거리를 챙겨준다).
이런 연유로 할머니의 몸은 성한 곳이 없다. 관절은 닳고 닳아 견디다 못해 인공관절 수술을 받고 척추협착증으로 고생하신다. 또 내가 어렸을 땐 뇌경색으로 쓰러지셨다. 자잘한 흔적도 많다. 오른쪽 두 번째 발가락을 보면 마디가 기형적으로 툭 불거져 나왔다. 왜 그러냐 물어보니 청소 일하다가 쇳덩어리가 떨어져서 그런 거란다.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깜찍하게 아파서 눈물이 다 나올 정도였다니까."
성격이 모난 난, 할머니 깜찍이 아니라 끔찍이야라며 아는 체하고 싶지만 입을 꾹 다문다.
이런 이야기를 웃으면서 하려면 어느 정도의 경험치가 쌓여야 하는 걸까.
몇 년 전, 센서등 고장 난 반지하에 살 적 할머니가 계단을 헛디뎌 넘어졌다. 거동을 전혀 하지 못하게 된 할머닌 언니와 JY를 불러 이불로 본인을 옮기게 해 주방 겸 거실에 눕히게 했다. 제일 늦게 집에 간 나는 할머니가 더위에 지친 사람마냥 누워있던 게 아직도 생생하다. 목소리엔 힘이 하나도 없었다. 그날은 금요일 밤 아니면 토요일로 기억하는데 월요일에 직접 병원에 간다고 했다가 결국 심야시간에 119를 불렀다. 결과는 고관절이 똑하고 부러진(엑스레이를 직접 봤다) 거다. 입원하고 삼촌들에게 전화하지 말라는 걸 언니가 알려 병문안을 왔다. 뼈가 부러졌는데도 버티려고 했던 거다.
뇌경색이나 인공관절 등 할머니가 병원 신세를 지고 나면 할아버지는 바로 해당 부위를 검사받으신다. 미리미리 대비를 하시는데 병원에서는 문제가 없다고 한다.
할머니는 의지로 모든 것을 이겨낸 사람이다. 그래서 본인이 이 악물고 견디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경향이 짙다. 뼈가 부러졌을 때 지병으로 먹고 있는 약 때문에 고관절 수술을 바로 할 수 없어서 부러진 상태로 일주일을 누워 계셨다. 부위가 부위고 골절된 상태로 일주일간 누워계신 탓인지 입원 후 할머니는 몸이 반쪽이 됐다. 몸은 예전 같지 않을 텐데 아직도 마음은 항상 달리기 출발선 앞에 선 사람 같다. 그래서 짠하다.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말처럼 괜히 겁먹을 필요는 없지만 고통과 어려움에 무감해지고 싶진 않다. 두 분의 중간에서 내가 견딜만한 정도, 보통, 딱 평균치가 되고 싶다. 아직도 난 내가 느끼는 감정이 정당한지, 보편적인 건지 잘 모른다. 그러니까 고통과 어려움에 대처하는 자세만큼이라도 표준편차가 작은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다가 또 생각한다. 글을 써서 밥 벌어먹고 싶으면서 평균적인 인간이 되고 싶어 하다니 너도 참 모순적이구나. 그럼 다시 내게 말한다. 남들과 다른 생각을 가지면서도 평균적인 인간을 될 수 있다고. 또 꼭 남들과 다른 생각을 가져야 하는 건 아니잖아. 꼬리의 꼬리를 물기 시작하면 밤잠을 못 이룬다.
오늘 목표에서 6페이지가 남았다.
도피성 글에 익숙해지는 건 좀 기분이 묘하다.
매일 목표치의 글을 쓰는 건 어렵다.
여기엔 좀 무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