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주 적금 만기를 기다리며

글쓰기를 도피하는 글쓰기 6

1~2년 단위의 단기 적금은 만기를 곧장 잊어버린다. 문자가 오면 벌써 만기가 되었구나 싶다. 인터넷 뱅킹으로 개설한 적금의 만기 문자도 은행 담당자 이름과 연락처가 같이 온다. 이 분은 내가 인터넷 뱅킹으로 예금을 만들면 도움이 되는 건가.


카카오 뱅크는 할머니 팔순 잔치 모임 통장 때문에 개설하게 되었는데 쏠쏠하게 이용하고 있다. 초단기 적금을 들었는데 이번 주 금요일이 만기다. 천 원을 시작으로 한 주가 지날 때마다 천 원이 추가되는 방식이다. 첫 주엔 천 원, 다음 주엔 이천 원, 그다음 주엔 삼천 원. 시작 금액은 본인이 설정할 수 있는데 난 지갑이 가벼우니까 천 원으로 시작해봤다. 26주간 꼬박 부은 결과 35만 원을 모았다. 큰 금액은 아니지만 소소하게 모으는 재미가 있달까. 티끌 모아 티끌이긴 하지만. 한 주 납입할 때마다 카카오톡 콘 이미지가 늘어난다. 주거래 통장이 아니라서 돈이 없을 때도 있어서 납입에 실패한 적도 있는데 나중에 돈을 넣어 자리를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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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도전 성공! / 실패해서 자리 비운 사진! / 이 이미지가 매거진 메인에 뜨는 건 싫은데 >


어렸을 때 우리 할머닌 나한테 10원 무서운 걸 모른다고 하신 적이 있다. 놀이터 그네 밑을 파서 500원을 주운 적이 있던 난, 할머니 말에 "정 돈이 없으면 놀이터 그네 밑으로 달려갈 거야."라며 가볍게 넘긴 적이 몇 번 있다.


이후 100원의 무서움과 10원의 무서움을 배우게 되었다. 고등학생 때 교보문고에 문제집을 사러 갔을 때였다. 광화문까지 간 것도 내겐 큰 나들이었다. 시간을 들여온 만큼 어떻게든 기념품을 마련하고 싶었다. 지금도 기억난다. 신사고 비문학 문제집이 너무 사고 싶었다. 쌓여있는 문제집을 들춰 책등과 책배가 깨끗한 걸 찾았다. 품에 안고 카운터로 가는 길에 손에 쥐고 있던 돈을 세봤다. 정말 딱 100원이 부족했다. 100원이 부족했을 때 주변에 놀이터는 없었다. 누구 하나 붙잡고 100원만 달라고 하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광화문 교보문고는 백화점 1층 명품 매장 같았다. 문제집을 원래 있던 자리에 놓았다.

'가장 위에 있는 게 가장 깨끗한 문제집이니 이걸 가져간 사람은 운이 좋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다. 성인이 되고 100원의 무서움은 깡그리 잊어버렸다. 10원의 무서움을 알게 된 건 작년이었다. 전세자금대출을 받고 나서였다. 그전까지 통신비가 며칠 연체되긴 했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다. 21일에 통신비가 나가는데 월급은 25일이라서 항상 쪼들렸다. 통신회사는 알아서 자기들의 돈을 빼갔으니 며칠 밀린 걸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대출 이자는 통신비보다 이틀 앞선 매달 19일에 빠져나간다. 통신비보단 소액인데 왠지 무섭다. 통신비가 구몬 선생님(구몬 선생님들 죄송)이라면 대출 이자는 학생부장 선생님 느낌이랄까. 포스가 다르다. 10원이 부족해도 난 연체자가 되는 거라는 게 여실히 느껴졌다. 연체가 겁나 동생에게 5만 원을 빌려 이자를 먼저 해결한 적도 있다.


내가 돈을 어디서 쓰는지 궁금했다. 난 명품도 안 사고 2~3년에 한 번 전자기기 하나 사면 크게 돈 쓰는 건데 왜 이렇게 돈이 줄줄 샐까. 거식증 수준으로 밥을 못 먹은 적이 있어서 억지로 먹으려고 냉동식품을 한 달치 사고 나서 알았다. 그동안 편의점에서 깨작깨작 쓴 돈이 엄청났던 거다. 대량으로 음식을 사고 나면 굳이 편의점에 주전부리를 사러 갈 이유가 없었다. 충격이었다. 도대체 얼마를 썼던 거야.


35만 원으로 뭐 할진 아직 딱히 계획이 없다.


돈은 티끌 모아 티끌이지만

쓸 땐 티끌들이 모여 태산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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