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저녁에 본가에서 자취방으로 돌아온 후 오늘까지 집 밖을 나간 기억이 거의 없다. 사람은 햇빛을 봐야 한다고들 하는데 아직까진 별 무리 없이 살고 있는 거 보면 신기하고 이 정도로 내가 외부 생활을 싫어한다는 걸 새삼 알게 되었다.
일어나면 냉동 볶음밥을 데워 명탐정 코난을 보면서 끼니를 해결한다. 한 편당 20분 정도(오프닝, 엔딩 안 봄)기 때문에 밥 먹고 한 5분 지나면 한 회가 끝난다. 설거지를 하고, 엑셀로 만든 30분 단위로 쪼개 놓은 스케줄러에 하루 일과를 기입하고 그때부턴 노트북 앞을 떠나지 않는다. 물론 정보의 바다를 헤엄치며 딴짓도 많이 한다. 활동량이 없기 때문에 저녁은 간단히 먹는다. 밤이 깊으면 스트레칭 겸 스쿼트랑 플랭크 조금. 제자리 뛰기도 한다. 반지하라 층간소음 걱정이 없어 내 맘대로 이리저리 땀을 빼고 샤워한다. 다시 노트북 앞에 새벽까지 달리다가 넉다운이 되어 잠든다.
그래도 몇 번 밖에 나간 적은 있다. 택배 박스랑 생수병 버리러. 마음 같아선 며칠까지 버티나 한 번 시도해보고 싶지만 매주 금요일은 본가에 가는 날이라서 햇빛을 가득 쬘 예정이다. 난 내가 해바라기인 줄 알고 살았는데 지금 보니 난 햇빛이 별로 필요치 않은 음지 식물이 아닐까 싶다. 다육이 같은.
아침형 인간이 되고 싶어서 별짓을 다했다. 아침마다 미션을 해야 알람이 꺼지는 어플을 쓴 적도 있다. 대소문자와 특수문자가 섞인 코드 10개를 따라 입력해야 한다. 아니면 산수 10문제를 풀어야 알람이 꺼진다. 처음 며칠은 애먹으며 미션을 수행하고 잠들었다. 나중엔 후다닥 하고 잤다. 사칙연산이 마구잡이로 섞여 있었는데 그 당시엔 정말 빨리 풀었다.
알람을 20개 가까이 설정해놓은 적도 있는데 온 집안 식구를 깨웠지만 정작 난 일어나지 못했고 볼륨을 최대로 해놨지만 내 잠귀는 어두웠다. 할머니는 동네 사람들 다 깨울 작정이냐고 했다.
언니에게 깨워달라고 부탁한 적도 있다. 하도 일어나지 않자 화가 난 언니가 엉덩이를 걷어찼다. 난 언니에게 성질을 부리고 다시 잤다. 일어나선 언니에게 사죄를 하고 애걸복걸했다. 제발 내일은 안 그럴 테니까 깨워달라고. 하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보다 못한 할머니가 그런 부탁은 하지도 말라고 하셨다.
야행성 인간이라서 그런가 보다. 고요한 밤에 머리가 더 잘 돌아간다. 아직도 선택할 수 있다면 아침형 인간이 되고 싶다. 새벽의 밀도 높은 공기를 코로 가득 빨아들이고 싶고 떠오르는 해를 보면서(반지하라 햇빛도 안 들어오는데?) 하루를 일찍 시작하고 싶다. 모닝커피와 아침에 대한 강렬한 환상이 있다. 하지만 난 올빼미. 아침 6시, 7시는 내가 밤을 새우지 않는 이상 눈을 뜨고 맞이할 수 없는 시간인 것이다. 회사를 다닐 때도 항상 7시 30분을 지나 겨우 일어났다.
아침에 못 일어난 나의 역사들 : https://brunch.co.kr/@today24/21
며칠 전 언니의 지인을 통해 사주를 봤는데 사주로는 작가보단 직장을 다니는 게 좋다고 들었다. 물론 나가지 않고 톡으로 내용을 전달받았다. 난 작가가 되고 싶은데 직장이라니. 직장을 다녀야 할 팔자고 작가로는 돈을 벌기 어려울 거라는 어두운 전망을 내놓았다. 예전에도 사주를 볼 때면 난 관운이 좋아 공직 생활을 하면 좋을 거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공공기관 때려치우고 나온 사람이 전데요).
메시지를 전달해준 언니는 나를 위로해주며 사주에 연연하지 말라며 다독여줬다. 난 언니에게 알겠다고 해놓고 인기 작가들 사주를 구글링 하면서 한 번 더 좌절했다. 이 사람들은 결과로 사주를 끼워 맞춘 거라며 정신 승리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겨우 정신이 되돌아온 건, 다음 달 살 기계식 키보드 타건 영상을 몇 개 봤을 때였다. 그래도 난 타이핑하리.
아침형 인간이 되는 건 현재로선 몸부림을 쳐도 안 된다. 이건 체념하고 받아들여야 될 것 같다. 일찍 자도 오전 11시, 늦게 자도 오전 11시면 죄의식이 덜 드는, 늦게 자고 오전 11시를 택하겠다. 안 되는 거에 기를 쓰고 아등바등 매달려봤자 나만 힘들다. 그리고 무엇보다 일찍 일어나려고 주변에 민폐를 끼치면서까지 노력했지만 허사였다. 이건 안 되는 걸로 끝내자.
하지만 왠지 사주는 무시해도 될 것 같다. 사주는 나보고 직장을 다니라고 하지만 난 작가로 성공할 거다. 지금은 내가 열심히 하면 사주 같은 거야 뒤바꿀 수 있을 것 같은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다. 정 안되면 연말에 알바나 업무 강도가 낮은(함께 급여도 낮을) 직장을 찾겠지만 지금은 내 뜻대로 할 거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오늘(7월 23일) 래퍼 딘딘의 오디션 이야기 영상을 보게 되었다.
캐나다에 있던 딘딘은 힙합 하나에 꽂혀 부모님 몰래 편도행 티켓을 끊어 입국한다. 오디션도 없는 날 다짜고짜 소속사에 찾아가 눈에 처음 보인 사람 앞에서 랩을 했다는 패기 있는 내용이었다. 오디션과 관계 없는 경리 직원에게 랩을 했다는 점에선 폭소를 터뜨렸지만 그만큼 눈이 돌아가서 아무것도 안 보일 정도로 꽂혔다는 그의 열정에 감명을 받았다. 딘딘이 지금 래퍼로서 자리를 잡고 예능에서 두각을 보이는 것도 과거 그의 노력과 열정이 빛을 발한 거란 생각이 들었다.
'저 사람은 저 열정이면 다른 일을 했어도 성공했겠다.'
원본 영상 링크 : https://youtu.be/ubr6AqEu_E4
아직은 안 된다고 스스로 인정할 만큼 노력하지 않았다. 아무리 사주가 좋아도 의지가 없으면 안 되는 거다. 게다가 난 내 선택과 현재를 지지해주는 언니도 있다. 글 쓰는 걸 보고 타박하는 가족도 있다는데 나는 날 믿어주는 언니가 있으니까, 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고 치열하게 써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