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을 처방받고 나서 처음으로

궁금증

병원으로 달려가 일주일치 약을 처방받았다. 정신과는 병원에서 약을 처방해준다. 주변 약국을 찾아도 되지 않아 편하다. 털레털레 약봉지를 들고 오면 한동안 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알약을 꺼내고 유심히 보다가 포털에 접속한다. 검색어를 입력한다.

'약 검색'

약 모양으로 성분을 검색할 수 있다. 지금은 몸에 맞는 약을 찾아서 별도로 검색하진 않는데 초반엔 약을 좀 많이 바꿔서 매번 병원을 다녀오면 약 검색을 하기 바빴다. 처방 내역서를 달라고 한 적도 있는데 결국엔 약 검색으로 들어가서 어떤 약인지 찾아야 해서 모양으로 찾는 게 편하다.


성분이나 부작용을 보면서 어렴풋이 내 병명을 진단해본다. 카페나 블로그에 비슷한 처방을 받은 사람들을 찾아보기도 한다.

'아, 나도 그거 처방받았는데.'

'내가 저 사람보다 함유량이 높네. 내가 더 심한 건가?'

약에 대한 정보를 찾고 나누는 걸 보면 자신이 어떤 상황에서 어떤 약을 먹는지 궁금한 사람들이 많은가 보다 싶었다. 다른 사람들이 먹는 약을 통해 내가 전체에서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 가늠했다. 하도 검색을 해서 약 이름이 외워졌다.


초반에 처방받았던 약의 효능에 '정신분열증'이나 '간질'이란 단어가 있기도 했다. 뭐야. 나 그 정도까진 아닌데. 지금 먹고 있는 우울증약은 금연약으로도 처방하고 식욕억제제로도 쓴다고 하니까. 진통제 하나가 두통, 근육통, 생리통 같은 각종 통증에 효과를 발하는 것처럼 정신과 계열의 약도 한 끗 차이인가 싶다.


처음엔 회사 근처로 다니다가 중간에 다른 곳으로 병원을 옮겼는데 공통점이 몇 개 있었다. 처음 가면 심리테스트 같은 설문지를 작성하고 초진 시에는 상당히 시간을 할애해서 내 이야기를 들어주신다. 또 하나는 병명을 환자에게 딱 정확하게 이야기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내과나 이비인후과를 가면 의사 선생님은 어디가 아픈지 말해준다.

'임파선이 좀 부었네요.'

'목감기네요. 따듯한 물 많이 마셔요.'

하지만 내가 간 병원에서는 선생님은 사람 좋은 미소로 고개를 끄덕이며 내 말을 들어주셨다.


한 번은 너무 궁금한 나머지 선생님께 직접 여쭤봤다.

"선생님. 저는 무슨 병에 걸린 거예요?"

선생님은 나에게 가만히 물어보셨다.

"음. 그게 왜 궁금해요?"

라벨링을 하는 것을 우려하셨던 것일까. 하지만 난 병원을 찾아갔을 땐 이미 내 한계에 도달했을 시점이었다. 매주 찾아갈 때마다 울면서 이야기했을 정도로. 8시간 내내 나 같은 환자만 만났을 걸 생각하면 선생님께 많이 죄송하다. 이미 끝에 서 있는데 뭐가 무서우랴 차라리 어떤 병인지 제대로나 알고 싶었다.

"생리통으로 아프면 자연스럽게 진통제를 먹잖아요. 아. 내가 지금 생리 때문에 아픈 거니까 바로 약을 먹자. 아무 생각 없이요. 저는 지금 상황도 똑같이 생각해요. 제가 마음이나 머리가 아픈 걸로 먹는 거니까 어디가 왜 아픈진 알고 싶어요."

내 말을 들은 선생님은 조심스럽게 운을 떼셨지만 최대한 두루뭉술하게 말씀하셨다. 적응 장애, 우울 장애 같은 단어만 파편처럼 기억에 남아 있다.


선생님의 반응을 되새김질하면서 난 내가 또다시 나를 규정하기 시작한다는 걸 느꼈다.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고.'

그냥 가만히 내버려둘 수는 없는 걸까 싶다가 내가 이 모양으로 생긴 건데 어쩌라고 싶었다. 만약 지금 마인드로 병원에 간다면 굳이 병명을 물어보진 않을 것 같기도 하다. 중요한 건 낫는 거니까.


정신과를 가기 전엔 미로를 헤매는 느낌이라면 약을 처방받고 나선 내가 어디가 아픈지 맞추는 퀴즈를 푸는 기분이다. 지금은 맞는 약을 찾아서 더는 검색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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