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조(2)
길에서 두 사람이 껴안고 키스하면 으레 연인이겠구나 생각이 드는 것처럼, 바람 솔솔 부는 저녁, 산책로를 아장아장 걷는 강아지의 목줄을 잡고 있는 사람이 주인이겠구나 싶은 것처럼, 정신의학과 진료실에 홀로 들어가는 내가 환자인 처럼. 눈치 없는 사람도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이상한 증상이 2019년부터 하나둘 나타났다.
두근거림이 심하고 두통이 끊이지 않았다. 커피를 많이 먹는 편이고 두통은 항상 달고 살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참고 커피를 모두 끊었고 두통약도 먹는 걸 두 배로 늘렸지만 효과가 없었다. 너무 힘들 땐 디카페인을 먹었는데 디카페인에도 가슴은 두방망이질 쳤다. 또 하나. 감정 조절이 힘들었다. 사무실에서 악쓰거나 동료에게 화를 낼 것만 같았다. 머릿속에서 사무실은 이미 난장판이 되었고 동료들은 내 말빨에 모두 백기를 들며 사과했다.
'누구 하나 걸리기만 해 봐.'
'이러다가 정말 사고 치겠다. 어떡하지.'
이유 없는 분노가 솟구쳤다가 가라앉기를 반복했다. 여기서 끝이라면 둔감한 나는 스트레스와 피로 누적이라고 생각하며 이 시기가 지나가길 바랐을 거다. 연휴에 쉬면 나아지겠지. 빨리 와라. 손꼽으면서.
여태까지 한 번도 겪지 않았던 일이 터졌다. 잠을 잘 수 없었다. 보통 새벽 한 시에 자는데 세 시에 벌떡 일어났다. 누군가 어깨를 톡톡 두들기는 것처럼 눈이 와짝 떠진다. 가쁜 숨을 내쉬며 호흡을 고르는데 나도 모르게 갑자기 눈물이 난다. 손바닥으로 얼굴에 묻은 물을 닦아내고 다시 잠들려고 누우면 감정이 복받친다. 관자놀이를 타고 귀 안까지 물이 들어가고 코는 꽉 막힌다. 그렇게 겨우 잠들고 일어나 출근하면 다시 반복이다. 가슴은 두근거리고 머리는 아프고 얼굴은 푸석푸석하고.
10시에 잠들어도 소용없었다. 새벽 두 시에 나도 모르게 일어나고 심장이 터질 것처럼 벌렁거렸다. 다시 눈물이 난다. 며칠 지나선 아예 두루마리를 옆에 두고 소리 나도록 엉엉 울었다. 몸이 지치면 다시 베개에 머리를 뉘었다. 두 달 가까이 이런 패턴이 반복되었다. 작은 조명을 켜 두고 자도 소용없었고 안대를 해봐도 나아지지 않았다. ASMR 동영상, 백색소음 동영상을 틀고 자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도중에 이상한 꿈도 꿨다. 화장실 창문에 밧줄을 연결해서 방으로 끌고 왔다. 구체적이었다.
흐느끼거나 소리를 내거나 눈물보다 콧물이 많이 나오거나.
우는 방법은 그날 상황에 따라 달랐지만 우는 내내 같은 생각을 했다.
'넌 여기 있다. 넌 없어지지 않아. 괜찮아. oo야. 왜 그래. 진짜.'
우는 아기를 달래다 지쳐서 같이 우는 엄마처럼 나를 달래다 그냥 포기하고 꺼이꺼이 울어버린 날도 많았다. 왜 이렇게 마음이 엉망이 된 걸까 싶었다. 그 당시에 난 한 가지 위기감이 있었다. 다른 사람 챙겨주다 나라는 사람이 지워지는 것 기분이었다. 나라는 존재가 다른 사람을 위한 디딤돌이 되는 것 같았고 내 존재의 증명과 가치가 타인을 통해서 증명되는 것 같았다. 아무리 노력해도 난 진창에 빠져서 허우적거렸다. 도와달라고 소리쳐도 그 업무는 원래 그런 거니 네가 참아야 한다는 말밖에 돌아오지 않았다. 이렇게 노력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의지의 문제를 넘었다. 능력 밖의 상황이었다.
더는 못 버텨.
안 되겠다.
전조와 괴로움은 길었지만 의자에서 엉덩이를 뗀 건 한순간이었다. 오전에 일하다가 상사에게 병원에 잠깐 다녀오겠다고 하고 근처 정신의학과에 갔다. 그렇게 처음으로 플루옥세틴을 처방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