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연

정신과 약을 복용하면서 금주령이 내려졌다. 예전에 만 원에 네 개 하는 편의점 캔맥주를 거의 매일 사다 놨는데. 지금도 아직 남아있는 캔맥주가 6개 냉장고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약 먹을 때 술을 먹으면 안 된다는 건 확실하게 알고 있었는데 왜 담배에 손을 댄 걸까.


회식 때 술을 거절하던 동료들은 제가 지금 약을 먹고 있어서요 라며 미안해했다. 사실인지 알 수는 없지만. 의사의 지시, 약 봉투에 인쇄된 안내문 보단 내게 동료들의 거절 멘트가 더 와 닿았던 것이다. 난 약을 먹으니까 술을 먹으면 안 되지.


스트레스는 나날이 쌓여갔고 정신과 약으로 버티기엔 버거울 지경까지 왔다. 선생님은 내게 '오마바' 주문을 알려주셨다.

'oo님이 하고 있는 일은 오바마가 와서 해도 힘든 일이다. 내가 잘 못하는 게 아니다. 이렇게 생각하세요.'


오바마의 주문은 가끔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정말 극도의 스트레스 순간에는 오바마는커녕 오바마 할아버지도 생각나지 않았다. 지금 내가 돌겠는데 잘난 미국 대통령 이름 몇 번 되뇌어봤자 무슨 소용인가. 다시 이성을 찾고 나서야 뒤늦게 오바마를 불렀다. 며칠 뒤 나는 모니터 앞에 포스트잇으로 썼다.

' 오바마'


그리곤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포스트잇을 떼서 버렸다. 아무리 파티션이 나눠져 있지만 네 자리 내 자리 구분 없는 게 현실이다. 내가 자리를 비웠을 때 어느 순간 내 자리를 스캐닝하고 같은 물건을 산다든지, 아니면 지나가다가 슬쩍 '그건 뭐예요?'하고 물어본다든지. 그렇다면 이 질문도 받을 거였다. '오바마는 왜 써놓은 거예요?'


다른 사람이 쉽게 보지 않을 위치. 사비를 들여 산 모니터 받침대 한쪽 구석에 오바마라고 썼다. 당시엔 철두철미하다 여겼는데 지금 보니 왜 그렇게 좀스러웠는지 모르겠네.


아무튼 다시 오바마 주문을 외면서 하루하루를 버텼지만 가끔 회의감이 밀려왔다. '오바마는 잘 났고 이 상황도 오바마답게 해결해나갈 텐데 나랑은 다르지. 아마 오바마는 이 회사 자체를 선택지에 넣지 않았을 거야.' 등등 선생님이 들으셨으면 할 말이 없을 법한 생각을 했다.


술도 못 먹지 오바마도 도움이 안 되지. 결국 내게 남은 건 흡연이었다. 그동안 흡연은 안 한다(30%), 못 한다(70%) 비율로 자리 잡고 있었다. 호흡기가 많이 약하다. 게다가 충치도 잘 생기는 편이라서 흡연이 내 호흡기와 치아 건강에 악영향을 끼칠 거라는 생각에 돌아보지도 않고 있었다.


파티션과 어색하게 세워둔 가방에 의지해 자리에서 눈물을 짤 바엔 흡연이 나았다. 지난번 정신과에 갔던 것처럼 고민은 길었지만 엉덩이를 떼는 건 한 순간이다. 이번에도 편의점으로 달려가 담배를 샀다. 회사 주차장에서 세 개비를 연이어 뻐끔댔다. 기침도 몇 번했다.

'하. 맛 드럽게 없구나.'


퇴근하고 원룸 주차장에서도 두 개비를 폈다. 역시 맛이라고 할 게 없었다. 이 주 정도를 피다가 맛이라고 할 것도 없고 크게 기분전환도 되지 않아 입에 대지 않게 되었다. 게다가 한 갑에 5천 원 가량이면... 가격도 착하지 않다.


도움을 받았던 건 다음과 같다. 분노와 난감했던 그 자리에서 벗어난 것, 바람이 솔솔 불거나 비가 주룩주룩 내리던 곳에서 억지로 호흡을 한 것. 이건 꼭 담배가 아니라도 습관으로 만들면 좋을 것 같다. 하지만 일하다 정신이 팔리면 그게 가능할 리가 없다. 바다에 빠진 스스로를 건져 올릴 찌로 다들 담배를 택하는 건 아닐까.


보건복지부에선 흡연을 질병, 금연은 치료라 부르던데.

난 자진해서 질병에 걸렸다가 질병이 맞지 않아 건강을 되찾은 케이스다.

치료랄 것도 없었다. 흡연이란 질병도 선택받은 자만이 걸릴 수 있다니...


나에게 맞는 찌를 찾는 여정은 언제까지 해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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