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적인 놈
현대 사회에서 ‘우울증’은
거의 ‘스트레스’와 동급이 아닐까?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고 누구나 겪는 것처럼
살면서 누구나 우울증 또는 우울감을 겪는다.
이 세상에 갑자기 내리는 소낙비를
한 번도 안 맞아 본 사람은 없듯이
감정이란 그렇게 불현듯
나를 찾아왔다가 가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우울증에 대한
책도 많고 이야기도 많다.
조금만 검색하면 약 정보도 공유할 수 있다.
조금만 더 열심히 검색하면,
내가 그날 일일 방문자 1을 기록하는
아주 인기 없는 블로그에서 우울증에 대한
비관적인 글도 볼 수 있다.
정신과 의사들도 열심히 책을 내고 있고 그들의 책은 에세이 또는 심리 분야에서
베스트셀러 자리를 차지하고 내어주고 한다.
아무튼 우울증은 접하기 쉬운 병이고 소재가 되었다.
그러나 많던 우울증 환자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싶을 정도로
내 주변엔 우울증을 겪는 사람이 없다.
너도?
그러다가 지난 여름,
강의를 통해 알게 된 분과 또 다른 분.
셋이서 카페에서 대화를 하던 날이었다.
그분은 자신 이야기를 하는 걸 무척 좋아했고
이윽고 우울증이 감기 같은 거라는 말을 하셨다.
속으로 공감을 하던 중에 병원 예약으로
자리를 먼저 떠야 하는 날이었다.
어디 아프냐, 무슨 병원에 가냐는
사려 깊은 질문이 날아왔다.
아쉽게도 준비된 말이 없던
나는 거짓말을 하지 못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눈동자만
갈피를 못 잡은 채 좌우로 왕복 운동하기에 바빴고
입은 바싹 말라붙어 말이 나올 수 없었다.
그때 그분이
"너도 우울증이야? 괜찮아. 어서 가."라고 하셨다.
부정하지 못한 채 자리를 떴고
둘이 남아서 나에 관해 무슨 이야기를 했을지,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추측은 무성해졌다.
등에 식은땀이 났고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렇게 그날의 만남은
우울증이 감기와 같은 병이며,
그분과 마찬가지로 나도
마음의 감기에 걸려
병원을 가는 사람으로 끝맺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게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는
부정적인 상황을 타개하려는
구름판 같은 말인데
때로는 그 반대 역할도 하는 것 같다.
세상이 아무리 관대해졌다고 해도,
상업적인 소재로 널리 쓰인다고 해도,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한다고 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우울증을 앓고 있는 걸 밝히고 싶지 않다.
물론 가뭄에 콩 나듯 만난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은
모두 자기 이야기하길 선호하는 편이었다.
그럴 때마다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이었고,
때로는 저 말에 힘입어
나도 슬쩍 숟가락을 얹어서 말을 해볼까 싶었지만
실제로 실행해 본 적은 없다.
내가 우울증으로 약을 먹고 있는 건
우리 가족과 내가 다니는 병원의 의료진과
국민건강보험공단 정도면 충분하고
심리 상담 때 상담사 분만 인지하고 있으면
그걸로 족하다.
관심은 잠시 꺼두셔도 좋습니다
그러니 우울해 보이는 사람을 보거나
누군가 우울증 영상을 보고 있거나,
우울증에 관한 책을 읽고 있더라도
우울증이냐고 묻는 배려심은
무음으로 바꿔도 괜찮다.
그것이 만약 단순한 호기심에 의해서라면
전원을 꺼두는 것도 한 방법이다.
누군가의 인생이란 무비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