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에서 암환자로 손녀딸에서 보호자로

모든 것은 담담하게 이뤄졌다


"폐에 물주머니가 있대서, 세브란스에 입원했어."




우리 집 종특이다.

큰일이 터지면 혼자 끌어안는 것.

어중간한 일은 했던 이야기를 또 하고 또 하고

지치지 않는 스트리밍.


늦은 밤, 집 근처 초등학교 앞을 지날 때였다.

코로나 검사 후 입원을 했다는 할머니의 목소리는

경동시장으로 장 보러 간다와 별반 다른 억양이었다.


병원에서 건강 검진을 하다 폐에 뭔가가 발견되어

정밀 검사를 위해 대학병원에 왔고 입원을 했단다.

그리고 며칠 뒤 할머니는 입원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소리 소문 없이 퇴원했다.



한낮의 매미가 오토바이 소리에 지지 않으려고
우렁차게 울던 여름의 어느 날이었다.

반려 고양이 사진이 프린팅 된 넉넉한 반팔티에

허벅지를 반 이상 드러내는 짧은 반바지를 입고

나는 할머니와 신촌 세브란스로 가는 택시를 탔다.


병원은 현대 의학의 정수를 드러내고 싶어 안달 난 것처럼 보였다.

최신식이라는 단어로 다 담아낼 수 없을 정도였다.

모든 것은 효율성이라는 이름하에 층마다 원무과가 있고

그 원무과가 미어 터질 정도로 많은 환자와 보호자가 있었다.

말없이 대기하고 또 대기했다.


들어오세요.

내 원룸보다 작은 진찰실로 불려 들어갔다.

의자가 하나밖에 없어서 할머니는 앉고

나는 교무실에 불려 간 학생처럼 섰다.

할머니는 그제야 자신의 병이 와닿았나 보다.

"여기 앉으니까 긴장되네."

어색한 웃음.


의사는 할머니의 말에 일절 반응도 하지 않았다.

자신 앞에 있던 모니터를 바라보다 무뚝뚝하게 나에게 말했다.

"다른 보호자는 안 왔어요?"

"네."

"소세포 폐암이고, 이 정도면 3기네요.

오늘부터 바로 항암 시작해야 합니다.

자세한 건 나가면 알려줄 거예요."


감사합니다.

의료 서비스를 제공받은 데 대한 감사의 인사였지만

말하고도 어처구니가 없었다.

암 진단을 내려줘서 고맙다는 건가, 지금 내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온 걸까.

그저 난 내 복장이 원망스러웠다.

내 똑단발도, 얼굴을 반 이상 차지하는 동그란 안경도 다 미웠다.

그녀의 딸이 아닌 손녀딸이라는 애매한 위치가 비참했다.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말이 없었다.

대기하면 안내해주겠다는,

앵무새 간호사(할머니가 목소리가 예쁘대서 나중에 붙인 별명)의

지시대로 우리는 또다시 대기했다.


뒷간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다르다고 했던가.

진찰실 문을 들어갈 때와 나올 때 우리는 달라졌다.

할머니는 암 환자가,

나는 그녀의 보호자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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