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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린유이 Sep 05. 2020

10. 단골의 실체

     

내가 처음으로 잡은, 역대급 스케일의 할아버지 괴도에 관한 이야기다. 이 할아버지는 내가 C편의점에서 일하기 전부터 단골이었다. 할아버지는 키가 작으시고 통통한 몸에 항상 한쪽 다리를 절뚝거리셨다.


평일에는 3번 정도 오시고 주말은 이틀 내내 편의점에 온다고 들었다. 할아버지는 포근한 분위기에 인자하셨으며 항상 웃으며 인사하셨다. 주로 출근 시간대에 오시는데 다른 손님들 계산이 다 끝날 때까지 기다리시곤 했다. 매장이 한산해지면 카운터에 오셔서 날씨나 어제 있었던 일 이야기를 해주신다.


난 할아버지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항상 사가시는 자양강장제 한 병과 초코바 하나를 계산한다. 잠깐의 이야기가 끝나면 할아버지는 다리를 절뚝거리며 뒷문으로 천천히 나가신다.


단골이시고 친절한 손님이라 편의점에 오시면 나도 모르게 반가웠다. 난 할머니와 살고 있어서 어르신들이랑 이야기하는 게 어색하지 않고 편하다. 내가 어르신들에게 예의 있고 친절하게 행동하면 다른 사람도 우리 할머니한테 예의 있고 친절하게 행동할 거라는 믿음에서 더 잘해드리려고 노력했다.


어느 날 출근 시간의 일이었다. 할아버지께서는 손님들과 함께 들어오셨다. 맞이 인사를 하고 다시 바쁘게 계산했다. 장사진을 이루던 손님 줄이 없어지자 한숨을 돌렸다. 이후부턴 손님들이 한두 명씩 와서 천천히 계산했다. 계산하다가 무심코 매장 안쪽 천장에 달린 도로 반사경을 봤다. 단골 할아버지는 견과류, 김밥, 에너지바를 들고 계신 검은 비닐봉지에 넣고 계셨다.


 ‘설마. 잘못 본 거겠지.’


계산하다 곁눈질로 본 거라서 잘못 본 거라서 착각한 거라 여겼다. 다시 손님들이 몰려들었고 단골 할아버지는 항상 사가시던 자양강장제와 초코바만 계산하셨다.


오후에 출근한 점장님께 오전에 있었던 일을 말씀드리고 같이 CCTV를 확인했다. CCTV에 할아버지가 물건을 훔치는 모습이 정확히 찍혀 있었다. 난 점장님께 혼났다.


 “계산하고 있어도 훔치는 기색이 보였다면 검사했어야 했어야지.”

 “죄송합니다. 계산하다가 곁눈질로 본 거라 검사하기 모호했어요.”


솔직하게 말씀드리자 점장님께서 내 상황을 이해해주셨다. 대신 그 할아버지께서 다시 오시면 그땐 훔친 물건은 꼭 계산하라고 전달하라고 하셨다.


배신감을 느꼈다. 그동안 인자하게 웃으시며 친절하게 말을 걸어주신 게 모두 경계심을 낮추기 위한 물밑작업이었구나 싶었다.     


결정적인 사건이 CCTV를 확인한 사흘 뒤에 터졌다. 3개월에 한 번 본사 직원 다섯 명이 와서 재고조사를 하고 간 날이었다. 점장님께 들은 이야기는 가히 충격이었다. 할아버지께서 그동안 훔친 물건은 20만 원도 넘었다. 점장님이 확인할 수 있는 CCTV를 돌려본 결과 주말에도 오실 때마다 물건을 훔쳐갔다는 것이었다.      


편의점 물건을 훔친 것도 모자라, 범인은 사건 현장에 다시 돌아온다는 말처럼 매장에 출근 도장을 찍고 계셨다. 실로 할아버지는 대도다운 면모도 갖고 계셨던 거다.


점장님은 할아버지가 물건을 훔친 CCTV장면을 따로 모아둘 거라고 하셨다. 그리고 내게 당부하셨다.


 “오전에 그 할아버지 오시면 잡아두거나 훔친 물건을 꼭 계산하라고 말해야 한다.”


점장님께서 잡아두라고 하셨을 땐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했다.


며칠 뒤 어김없이 단골 아니, 대도 할아버지는 편의점에 오셨다. 할아버지의 실체를 눈치채자 다른 사람들보다 할아버지의 모습이 더 눈에 잘 들어왔다. 할아버지는 평소와 다름없이 봉지에 물건을 담고 계셨다.


그동안 앞에선 웃으면서 뒤에선 한없이 물건을 훔쳤다니. 믿기지 않았다. 화가 나야 정상이겠지만 난 점장님께 받은 미션이 먼저였다. 할아버지께 다가갔다.


 “저…. 어르신 그동안 훔쳐가신 물건 지금 계산 안 하시면 저희 점장님께서 경찰에 신고하신다고 하세요.”


할아버진 두 눈을 크게 뜨시면서 깜짝 놀라셨다.


 “뭐? 내가 물건을 훔쳤어?”

 “네. CCTV에 찍힌 거 다 봤어요. 그리고 지금도 봉지에 넣는 모습을 제가 봤고요.”

 “아…. 아가씨 미안해. 내가 치매가 있어서 물건 훔치는 것도 몰랐어….”

 “그렇게 말씀하셔도 예전부터 훔치신 걸 다 합치면 20만 원이 넘어요. 지금 계산하셔야 해요. 저희 사장님께서 계산하지 않으시면 신고하신다고 꼭 전해달라 하셨어요.”

 “아가씨, 미안해. 내가 지금 돈이 없어서….”


할아버지는 난처한 표정을 지으셨다. 돈이 없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도둑질에 걸려서 그런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러시면 핸드폰 번호라도 적어주세요.”

 “나 핸드폰 없어.”

 “그럼 집 전화번호 적어주세요.”

 “나 치매가 있어 집 번호도 까먹어서 몰라. 미안하네.”


할아버지는 들고 있는 검은 비닐봉지에서 약 봉투를 꺼내서 보여 주셨다. 어떤 약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계산이 어렵다고 하시니 점장님께 연락을 드리는 방법밖에 남지 않았다. 전화를 걸려는 그때였다.  다.


손님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손님 응대를 하면서 할아버지가 서 있던 곳을 봤다. 할아버지는 사람들이 몰려있던 뒷문으로 향하시더니 틈바구니를 비집고 쏜살같이 도망가셨다. 심지어 절뚝거리지도 않고 정말 재빠르게 사라지셨다!


 “어! 어! 잠시만요!”


당황해서 허둥지둥 카운터 밖으로 나가려고 했지만 갈 수 없었다. 한 손님이 인상 쓰며 빨리 계산해달라고 재촉하셨다. 하는 수 없이 손님들이 빠져나갈 때까지 할아버지를 쫓을 수 없었다.


내가 대도 할아버지를 붙잡았을 때 매장에는 여자 손님 두 명이 취식대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나와 할아버지의 모습을 계속 지켜보고 있었나 보다. 손님이 줄어들고 가게에 울려 퍼지는 두 사람의 목소리는 내게 큰 상처를 주었다.


 “헐. 어떻게 일하면서 훔쳐가는 것도 몰라.”

 “그러게. 저렇게 많이 훔쳐갔으면 중간에 한 번은 눈치채지 않나?”

 “저 정도로 훔치는 것도 몰랐다면 저 여자 일 제대로 못 하는 거네. 잘라야 하는 거 아냐?”


매장에 다 들릴 정도로 이야기하고 날 빤히 쳐다봤다. 난 여자들의 눈을 피하지 않고 맞받아치자 민망했는지 두 사람 다 내 눈을 피했다.     


물건을 훔치려고 친절을 가장한 건 할아버지다. 내가 C편의점에 다니기 전부터 단골이라고 했고 주말에도 올 때마다 물건을 훔치셨다면 백 퍼센트 내 잘못이라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안 그래도 결정적인 순간에 놓쳐버려 나 자신을 한심하다 책망하고 있었는데 사정도 모르는 손님들에게 힐난을 받으니 더 속상했다.     


할아버지께서는 교묘하게 행동하신 거고 손님이 많을 때 오셔서 정신없을 때 물건을 훔쳐가신 거라고 호소하고 싶었다. 이 말도 변명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오후 출근한 점장님께 오전 일을 말씀드렸다. 예상대로 점장님께 크게 혼났다.


 “어떻게든 붙잡아서 전화했어야지! 너는 왜 그것도 못 하고 보내냐! 넌 화도 안 나냐?”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당시엔 내가 잡지 못한 것만 생각나서 혼나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다시 돌이켜보면 몸이 불편한 할아버지를 붙잡고 있는 게 나중에 문제가 될 수 있을 것 같고 복잡해질 가능성도 있었다. 내가 강압적으로 밀어붙였다고 신고하시면 어떻게 되겠는가! 아니면, 정말 가게 양쪽 문을 다 걸어 잠그고 경찰이나 점장님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방법 외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데 가당키나 한 일인가.


점장님께서 할아버지를 진짜 고소하셨는지는 모른다. 결정적인 순간에 놓쳤다는 실수 때문에 이후 상황을 여쭤볼 수 없었다.


대도 할아버지 사건은 내 편의점 알바사(史) 상 최장기, 최고 금액을 차지한 절도 미제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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