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울월드컵경기장 (또는 수원, 수원월드컵경기장)
빨강-파랑은 검정-흰색 만큼이나 눈에 잘 띄는 대조색이다. 워낙 색 차이가 명확하고, 멀리서도 쉽게 구분할 수 있다.
그래선지 축구에서는 빨강 또는 파랑을 팀 컬러로 사용하는 팀이 많다. 또 그들이 서로 라이벌 관계인 경우가 더러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대표적으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아스날과 첼시의 '런던 더비', 이탈리아 세리에A의 AC밀란과 인터밀란이 맞붙는 '밀라노 더비' 등이 그런 경우다.
가까이는 우리나라 K리그에서도 이런 관계를 찾아볼 수 있다. 바로 '슈퍼매치'를 치러오고 있는 서울과 수원, 수원과 서울이다.
슈퍼매치의 역사를 간략히 살펴보면, FC서울의 전신인 안양 LG 치타스가 2004년 서울로 연고지를 복귀 이전했다. 그러면서 '지지대 고개'를 두고 지근 거리에서 라이벌전을 치러온 수원과의 관계를 계속 이어갔고, 현재 K리그와 아시아를 대표하는 더비 매치로 자리를 잡았다.
'슈퍼매치'라는 이름은 수원 홍보팀 직원이 2008년 홈경기를 앞두고 두 팀의 경기를 대표할 수 있는 수식어를 생각하다 지어낸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후 프로축구연맹을 비롯 서울과 수원 양 구단 모두 홍보에 슈퍼매치라는 이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하면서 축구팬 사이에 널리 정착됐다.
한편 일부 언론과 팬들이 슈퍼매치를 'FIFA가 선정한 세계 7대 더비'라고 이야기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와전된 내용이다. 당시 FIFA 홈페이지의 세계 축구 더비를 소개하는 섹션에는 전세계 수십개의 라이벌 매치가 차례로 소개되던 중이었고, 그 중 슈퍼매치는 7번째로 소개된 것 뿐이지 엄밀히 말해 '세계 7대 더비'로 선정된 것은 아니다. (심지어 엘 클라시코가 슈퍼매치보다도 한참 뒤에 소개됐다)
다만 이런 이슈도 크게 회자될 만큼 한국의 축구팬들과 언론, 연맹 모두 슈퍼매치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은 게 사실이다.
슈퍼매치는 언제나 경기 전부터 긴장감 가득하다. 일찌감치 골대 뒤 응원석은 저마다 빨간색과 파란색 유니폼을 입은 서포터들로 채워지면서 경기장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양 팀의 선수들이 워밍업을 위해 입장하면 서포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데, 서로를 도발하는 현수막이 등장하기도 하고 특유의 응원가를 부르기도 한다.
킥오프 휘슬이 울리면 서포팅은 더욱 적극적으로 진행되며 경기의 흐름에 따라 희비가 엇갈린다. 자기팀 선수들을 향한 격려와 응원은 더욱 커지고 동시에 상대팀 선수에 대한 야유도 더 강렬해진다. 그만큼 슈퍼매치에는 양 팀 선수단은 물론, 팬들의 자존심까지 걸려있는 셈이다.
나는 정말 큰 일이 생기지 않는 한, 매시즌 슈퍼매치 만큼은 꼭 직관해왔다. K리그가 스플릿 시스템을 도입함에 따라 슈퍼매치 경기수도 늘어났고 덕분에 이 치열한 경기를 볼 수 있는 기회도 전보다 많아졌다.
그동안 명승부를 낳은 슈퍼매치가 여러번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소개하고 싶은 경기는 이번 2015 시즌에 열린 18라운드 경기다. 거듭 말하지만, 이 경기보다 더 재미있고 박진감 넘치는 슈퍼매치는 많았다. 그런데도 결과적으로 밋밋한 0-0 무승부를 기록한 이 경기를 소개하려는 이유는 흥미로운 스토리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 이야기는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서울은 새롭게 터키 출신의 귀네슈 감독을 선임하며 변화를 선택했다. 그리고 그 해 수원과의 첫 경기에서 박주영의 해트트릭과 정조국의 골을 더해 4대 1 승리를 거뒀다. 그때 수원을 상대로 골을 넣은 박주영과 정조국이 이번 시즌 18라운드에서 투톱으로 출전을 했다. 서울도 박주영과 정조국의 투톱을 홍보에 적극적으로 이용했고, 그때를 기억한 팬들의 관심도 집중됐다.
두 번째는 이번 시즌 열린 서울과 수원의 7라운드 경기 때문이다. 올 시즌 첫 슈퍼매치는 아무도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낳았다. 수원이 서울에게 5-1 완승을 거둔 것이다. 수원이 안양을 상대로 거둔 최다 골차 승리를 서울로부터도 똑같이 거두며 그날의 역사를 재현했다. 서울은 18라운드에서 그날의 복수를 준비했고, 이로 인해 경기 전부터 더욱 많은 관심이 쏠리며 경기를 기대하게끔 만들었다.
나 또한 이러한 스토리를 품고 상암에서 경기가 시작 되길 기다리고 있었다.
서울은 예정대로 박주영과 정조국을 앞세워 복수를 노렸고, 수원도 5-1 승리에 좋은 활약을 보인 정대세와 염기훈을 중심으로 연승을 노렸다. 전반전은 서울이 경기를 주도했으나 득점으로 연결시키지 못했고, 후반전에는 수원이 주도했으나 마찬가지로 골을 성공시키지 못하며 두 팀 모두 아쉬운 0-0 무승부를 기록했다.
경기가 끝난 뒤 슈퍼매치가 지루했다는 평가가 이곳저곳에서 터져 나왔다. 이전의 치열했던 경기들과 비교해 보면 이날은 박진감이 다소 떨어진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경기 전후로 슈퍼매치만의 또 다른 스토리를 제공했고, 특히 9월 19일 서울이 3-0 대승을 거두며 복수에 성공한 세 번째 슈퍼매치로 이어지는 의미있는 과정이었다.
이렇듯 현재 진행 중인 역사와 흥미로운 스토리가 있는 슈퍼매치의 최근 분위기는 그닥 좋지 않다. 두 팀 모두 주축 선수들의 부상을 비롯한 여러 요인으로 예전 만큼의 강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라이벌 매치의 흥미가 떨어졌고, 울산-포항의 '동해안 더비', 전북-전남의 '호남 더비', 포항-전남의 '제철가 더비', 전북-울산의 '현대가 더비' 등 새롭게 K리그 대표 더비의 자리를 노리는 라이벌 매치들이 관심을 받고 있다.
하지만 슈퍼매치는 분명 이름 이상의 가치가 있다. 슈퍼매치의 평균 관중은 23,202명이고 역대 K리그 한 경기 최다 관중 기록에서도 양 팀 간의 경기가 최다 관중 기록 TOP 10 중 5개나 차지했다. 그만큼 K리그에 끼치는 영향력이 크다는 얘기다. 박빙의 한 골 차 승부가 아닌, 올 시즌 5 대 1, 3 대 0 골잔치가 나왔다는 점도 앞으로의 슈퍼매치를 더욱 기대하게 만드는 긍정적인 요소다.
초록색 피치 위, 빨간색과 파란색 유니폼의 대조, 그리고 그들의 뒤를 지키는 서포터들의 지지. '빨파 전쟁'은 빨간 불처럼 뜨겁기도 하고, 파란 물처럼 차갑기도 하다.
글·사진 - 최병진 (축구전문 블로그 최병진의 풋볼라이프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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