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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의 축구 Nov 16. 2015

우리 곁에 가까운 챔피언스리그

일본 오사카, 만박 기념 경기장

챔피언스리그는 특별하다. 최고의 클럽에 속한 최고의 선수들이 펼치는 별들의 무대, 경쟁을 이겨내고 정점에 자리한 챔피언들의 리그라는 거대한 이름은 그 자체로 보는 이의 가슴에 불을 당기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우리가 챔스에 열광하는 것이 단지 이 때문만은 아니다. 챔피언스리그엔 스토리가 있다. 선수 개개인의 스토리, 클럽간의 스토리뿐 아니라, 넓게는 국가 간의 스토리도 챔피언스리그에 반영될 수 있다. 마치 '축구 종합 선물 세트'랄까…


보통 챔피언스리그라고 하면 UCL(유럽 챔피언스리그)를 떠올리지만, 나는 조금 더 우리 곁에 가까운 챔피언스리그를 직접 지켜 본 경험을 전해보려 한다. 바로 ACL(아시아 챔피언스리그)이다. 그 중에서도 더 뜨겁고, 치열할 수밖에 없는 K리그 클럽과 J리그 클럽의 일전이다!


경기에 앞서 몸을 푸는 선수들



ACL 2015 조별리그 - 감바 오사카 vs 성남


때는 2015년 5월 4일. ACL 조별 라운드 감바 오사카-성남 FC전을 취재하기 위해 일본 오사카를 찾았다. 2014시즌 FA컵 우승을 차지해 시민구단 최초로 ACL 무대를 밟은 성남은 조별 라운드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16강 진출을 눈앞에 둔 상태였다.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놀라운 성과였다. 그런데 성남 선수들의 눈빛은 흐트러짐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더 날카로웠다. 왜? 


일본이잖아요. 이겨야죠.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하지만 감바 오사카의 저항도 만만찮을 것으로 예상됐다. 감바 오사카는 같은 시각 열리는 광저우 부리람 유나이티드-광저우 푸리전 결과에 따라 순위가 결정되는 상황이었다. 2014년 J리그 4관왕 감바 오사카답지 않은 성적이었다. 아, 콧대 높았던 감바 오사카를 궁지로 몰아넣는 데는 성남도 한몫했다. 탄천에서 만난 첫 경기에서 황의조가 박살을 내놨더랬다. 어쨌든 각자 이겨야할 이유가 분명히 있는 경기였던 셈이다.


ACL 2015 조별리그 - 성남 vs 감바 오사카 1차전


2차전 하루 전 열린 사전 기자회견.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이거 부정이야!"


분위기는 경기 전부터 심상치 않았다. 경기를 하루 앞두고 열린 사전 기자회견 때 일어난 일이다. 이날 기자회견이 열린 만박 기념 경기장(엑스포 '70 스타디움) 기자회견장 뒤편에는 문서 하나가 붙어 있었다. 거기에는 성남 선수 명단 18인이 체크돼 있었다. 


이를 본 성남 관계자가 불같이 화를 냈다. 아시아축구연맹 규정 상 경기 전 18인 명단 공개는 킥오프 90분 전 매치 코디네이터의 사인을 받은 후 이뤄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명단이 하루 앞서 일본 측 미디어에 공개됐으니, 항의가 당연하다. "명단을 왜 공개해? 이거 부정이야!" 성남 관계자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말이 잘 안 통하니 설전은 계속 길어지기만 했다. 


해프닝의 이유는 30분 만에 드러났다. 감바 오사카가 성남의 일본 입국자 명단을 공개한 것이다. 원정팀의 체류 비용을 감당하는 감바 오사카는 항공사를 통해 성남의 입국자 명단을 알 수 있었다. 원정팀이 보통 18명 이상의 선수단을 데리고 원정을 떠나오는데, 성남이 정확히 18명을 데리고 왔기 때문에 본의 아니게 경기 출전 18인 명단이 모두 공개된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감바의 잘못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다른 팀도 성남처럼 18명만 데리고 온다면 명단이 모두 공개되는 셈이다. 분명 규정 위반이다. 상황이 모두 파악된 후, 일본 측에서는 사과의 뜻을 전했다. 일촉즉발이었던 실랑이는 그렇게 마무리됐다. 경기는 아직 하루 남았는데, 공기는 벌써 따가웠다.


경기장 주변은 경기 전에 이미 바글바글



만박 기념 경기장 (엑스포 '70 스타디움)


경기 당일, 분위기는 한층 더 달아올랐다. 경기장 앞은 이미 세 시간 전부터 인산인해였다. 감바 오사카의 파란 레플리카를 입은 팬들이 쉴 새 없이 몰려들었다. 직접 본 일본 축구의 열기는 생각보다 훨씬 더 뜨거웠다. 경기장 앞에는 먹거리 장터가 열려서 마치 지역 축제 같은 광경이었다. 여담인데, 사실 조금 부럽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ACL도 이런 분위기면 좋을텐데…


킥오프가 임박해 경기장에 들어서니 가슴이 뜨거워졌다. 감바 오사카 팬들은 일찌감치 응원을 시작했다. 언뜻 봐도 2만명은 돼 보였다. 콜 리더 한 명의 외침에 따라 모두가 응원 구호를 외치는데, 온몸의 잔털이 곤두서는 느낌이었다. 성남의 원정 응원단 규모는 작았다. 수백 명? 그래도 간간이 그들의 응원 소리가 들린다. 밀리지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진다. 


감바-성남, 경기 전 직접 찍은 응원 영상. 상대지만 인정!


성남은 대단히 잘 싸웠다. 아니, 오히려 수만 관중의 응원을 등에 업은 감바 오사카를 압도했다. 


전반 15분, 성남의 선제골이 터졌다. 또 황의조였다. 기가 막힌 터닝 중거리 슈팅으로 감바 오사카 골망을 갈랐다. 소란스럽던 파란 물결이 잦아들었다. 어깨가 으쓱해진다. 기자석에 앉아 있었지만, 나는 성남 응원단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후 경기는 생각대로 풀리지 않았다. 선제골을 터뜨린 황의조가 근육 부상으로 전반 막판 교체돼 나오고 후반에는 수비수 김태윤까지 쓰러졌다. 가뜩이나 얕은 스쿼드로 일본 원정을 떠나온 성남은 흔들리기 시작했고, 이내 실점했다. 


"아…" 탄식이 절로 새나온다. 감바 오사카는 기세등등해졌고, 결국 성남은 후반 막판 역전골을 허용했다. 1-2. 성남의 패배였다. 이날 경기로 성남은 조 2위로 떨어졌고, 16강전서 아시아의 '맨시티' 광저우 에버그란데와 만나게 됐다. 만일 조 1위였으면, FC 서울과 만났을 것이다. K리그 팀들끼리 싸우는 상황. 팀킬(!)은 피했지만, 대신 가장 부담스러운 상대와 마주치게 된 셈이다. 


ACL 2015 조별리그 - 감바 오사카 vs 성남 2차전



가까운 챔피언스리그


비록 경기는 졌을지언정, 성남의 기개는 꺾이지 않았다. 시민구단 최초 ACL 16강 진출. 이것만으로도 이미 성남은 새 역사를 썼다. 고개를 숙일 필요가 없었다.


경기 후 다소 침울해 있던 나를 깨운 것은 김학범 감독님이었다. 경기 후 기자회견에 나선 김 감독님은 전혀 기죽은 모습이 아니었다. 

감바는 좋은 팀이었지만,
우리의 악재가 없었다면 득점하지 못했을 것이다.


속으로 '당연하지'를 외쳤다. "광저우를 봉쇄할 움직임에 대해 지금부터 연구할 것이다. 충분히 도전해보고 넘어볼 산이라고 생각한다. 정상궤도로 상황이 흘러가면 승산이 있다". 이 대목에서 나는 속으로 '믿습니다!'를 외쳤다.


챔피언스리그는 특별하다. 그러나 보통 떠올리는 챔피언스리그는 우리와 다소 멀다. 가까운 챔피언스리그를 지켜보자. 가까우면, 더 특별해진다.



글·사진 - 김정희 (前 베스트일레븐 기자)

커버 - Waka77 /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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