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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의 축구 Jan 20. 2016

패배의 쓴맛도 잊게 만드는 화끈한 매운맛

고양, 일산 대화역 인근 맛집

"일단 집에서 가까운 팀을 찾아보고 관심을 가져보세요"

"지금 살고 있는 곳을 대표하는 축구팀일수록 좋습니다"

"접근성이 좋고 소속감을 가질 수 있는 팀일수록 충성심이 높아지기 마련이거든요"

"어렵게 생각하지 마시고 가까운 축구팀부터 애정을 쏟으며 경기장을 찾길 바랍니다"


축구를 좋아하지만 어떻게 K리그에 접근해야 할지 고민하는 분들에게, 나는 항상 같은 대답을 하곤 한다. 


당신이 섬이나 오지가 아닌 곳에 산다면 주위에 축구팀은 하나쯤 존재하고, 당신이 조금만 노력하면 현장에서 그들의 축구를 즐길 수 있다. 좁다면 좁은 우리나라지만 축구팀은 충분히 많다. 2016년 현재 세미프로라 할 수 있는 내셔널리그 10팀을 포함해 프로 구단만 세어봐도 K리그 클래식 12팀, 챌린지 11팀, WK리그 7팀 등 굉장히 많고, 각각의 팀들은 저마다 나름의 역사와 사연을 보유하고 있다. 이들이 모두 당신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해보라. 당신이 응원만 해준다면 더 열심히 뛸 수 있다고 절규와 같은 파이팅을 외치면서 말이다!



하지만 여기엔 큰 아이러니가 존재한다. 가장 가까운 '연고팀'이 자신의 취향과 맞지 않을 수 있다는 점. 나는 공격적인 축구로 골을 넣길 바라는데 집에서 가장 가까운 연고 구단이 성적을 위해 수비적인 축구를 구사하는 팀일 수도 있으며, 재정적 어려움으로 말미암아 스타가 등장하자마자 다음 이적시장에 그 선수를 이적시켜버리는 팀일 수도 있다. 


또 승리보다는 패배에 익숙한 만년 하위팀일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애써 경기장을 찾아 직관을 할수록 무언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상하게 우리 동네 팀에겐 정이 안가"라고 말하는 축구팬들이 엄연히 존재할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축구팬으로서 고양에 산다는 것


사실 나는 이런기분을 누구보다 잘 안다. 


15년 넘게 고양시에 살면서 지금은 사라진 고양국민은행부터 고양대교(현재 이천대교), 그리고 지금의 고양 Hi FC까지 시간이 날 때마다 고양종합운동장을 찾아 경기를 지켜보며 응원하지만 여전히 100%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응원하는 팀이 사라진다는 것은 매우 가슴 아픈 일이며, 기껏 새롭게 등장한 팀이 재정적 어려움과 중하위권 순위 싸움에서 방황하는 것은 곁에서 보는 것 만으로도 서글픈 일이다. 개인적으로 결혼 후 광명시로 집을 이사한 뒤에도 종종 고양종합운동장을 찾아 고양 Hi FC를 응원해왔는데, 변명일 수도 있겠으나 나 스스로 이 팀에 과거 만큼의 열정을 갖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그럼에도 고양종합운동장에서 펼쳐지는 K리그 챌린지 경기는 놓칠 수 없다. 스케줄만 허락한다면 나는 언제나 그곳에 있다. 그리고 경기가 끝난 후, 특히 예상과 다름 없이 패배를 기록한 후에는 항상 찾는 곳이 있다. 고양종합운동장에서 걸어가도 될 만한 대진고교 사거리의 '용두동할매 辛(신)쭈꾸미'가 바로 그 곳이다. 고양 Hi FC가 2013년에 창단한 후, 3시즌을 줄곧 K리그 챌린지에 머무르며 3위-8위-8위를 기록하는 동안 어느덧 단골집이 되어버린 그런 곳이다.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 강렬한 간판



철판볶음밥 = 인저리 타임


쭈꾸미와 쭈삼(쭈꾸미 삼겹살), 왕만두, 계란탕, 볶음밥만 있던 메뉴는 청소년과 여성들의 입맛까지 겨냥한 듯 어느덧 쭈닭(쭈꾸미 닭갈비)과 수제 돈까스, 치즈 볶음밥, 퐁듀까지 추가되었다. 하지만 이 집은 역시 쭈꾸미 본연의 자연스런 매운맛과 깔끔한 뒷맛이 먹는 사람들을 즐겁게 만든다. 패배의 아픔 만큼 매운맛이 강하게 혀를 자극하지만 그것은 곧 연패의 쓰림마저 날려버리게 만들고, 축구장을 함께 찾았던 지인들과의 소주 한 잔과 축구에 대한 수다는 불만과 고민을 이내 커다란 즐거움으로 바꾼다.


과장이라 느끼는가? 그렇다면 '용두동할매 신쭈꾸미'의 쭈삼을 강력 추천한다. 쭈꾸미와 삼겹살이 불판 위에서 지글지글 익는 동안 콩나물과 미역냉국, 날치알 등을 먹으면서 그날 있었던 경기에 대해 이것저것 이야기하다보면 어느새 쭈삼이 "날 먹어봐요~"라고 자신의 몸을 섹시하게 꼬고 있을 것이다. 


일견 단촐해보이는 기본상


여기서 허기진 마음에 허겁지겁 먹어선 안 된다. 축구에서 가장 중요한 '평정심' 유지가 이때도 필요하다. 자칫 급히 먹었다간 혀에서 불이 날 수 있으니 상추와 쌈무 위에 쭈꾸미와 삼겹살, 날치알 등을 차곡차곡 올린 후 되도록 맛을 음미하며 천천히 씹어 먹어야 한다. 그 후 매운 맛이 축적되면서 더 매운 맛을 만들고, 자연스럽게 경기에 대한 이야기에 더 집중하게 된다. 여기에 소주 한 잔이 곁들여진다면 그날 경기의 상황과 장면을 극대화시켜 상기하는 효과도 얻을 수 있다. 


크아아!


쭈삼을 다 먹은 후엔 절대 볶음밥을 놓쳐선 안 된다. 철판요리에서 유종의 미를 거두려면 볶음밥은 필수 코스다. 아무리 배가 부르더라도 일단 주문이 들어가면 곧 '볶음밥은 옳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될 것이다. 철판요리에서 볶음밥을 안 먹는 것은 축구에서 인저리 타임을 보지 않는 것과 같다고 말하겠다. 쭈삼 그 자체로도 만족할 수 있지만 무언가 더 일어날 수 있고, 무언가 더 기대하게 만드는 볶음밥을 놓쳤다면 쭈삼을 다 먹었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동차로 30분 내 거리의 경기장에서 내가 사는(살던) 곳을 대표하는 팀을 응원하고, 패배했을 때 마음 편히 그날의 경기를 비판하고 비난할 수 있는 곳. 고양시에선 역시 '용두동할매 신쭈꾸미' 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물론 승리했을 땐 웨스턴 돔이나 라페스타의 어느 술집에서 승리의 기쁨을 나눌 수 있다. 


하지만 패배의 아픔을 잊게 만들고 다시 희망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곳은 보통 음식점이나 술집에선 불가능하다. 그런 '분위기'라는 게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나로 하여금 패배의 아픔과 현실의 아쉬움을 잊게 만드는 곳은 쭈삼과 소주 한 잔, 그리고 친구들이 북적이던 이곳이었다. 당신이 고양 Hi FC의 팬이라면 꼭 한 번 들러보시라. 아마도 이미 알고 있을테지만.


쭈/삼/닭 조합 가능한 메뉴 구성



+ 경기장과의 거리 - 자가용: 약 5분 | 도보: 15-20분

+ 주차 - 가능 (재주껏)

+ 서비스 - 친절한 편

+ 가격 - 쭈꾸미볶음 기본 2인분 22,000원, 추가 1인분 11,000원 | 쭈꾸미와 삼겹살 / 쭈꾸미와 등갈비 中 22,000원 大 33,000원 고기추가 11,000원 | 쭈꾸미와 닭갈비 中 22,000원 고기추가 11,000원 | 퐁듀 5,000원 | 왕만두 5,000원 | 계란찜 2,000원 | 볶음밥 2,000원 | 치즈 볶음밥 3,000원 | 치즈사리 1,000원

+ 특이사항 - 영업시간(오전 10시- 오후 11시)을 꼭 확인할 것. 저녁 경기가 끝난 후 얼레벌레 지체하다간 영업이 끝난 후 도착한다.



글·사진 - 송영주 (SPOTV 축구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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