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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의 축구 Jan 10. 2016

프라하가 식상해? 그럼 플젠으로!

체코, 플젠 지역 맛집/양조장/레스토랑

체코를 대표하는 도시는 단연 프라하다. 


한국을 이야기할 때 서울을 빼놓을 수 없는 것처럼 프라하는 체코에서 가장 유명한 도시다. 그만큼 관광객도 많다. 랜드마크인 카를교와 프라하성 주변에는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다. 


지난 8월 말, 프라하에서 동유럽 여행 11번째 날을 보냈다. 휴가철이라 사람이 진짜 많았다. 분주한 도시를 보니 상대적으로 관광객이 적었던 헝가리 부다페스트, 체코체스키 등이 다시 떠올랐다. 나는 원래 사람 많은 걸 싫어하는 편이라, 그래서 급 한적한 플젠으로 떠나기로 결심했다. 오전 기차를 타고 플젠에 도착해 저녁에 돌아오는 일정을 계획했다.


여유로왔던 플젠의 어느 광장



필스너 우르켈의 고향


플젠은 그리 유명한 도시가 아니다. 관광지로 적합한 곳도 아니다. 명소가 있는 것도 아니고, 자연 환경이 아름답지도 않다. 대신, 플젠은 '필스너 우르켈(Pilsner Urquell)'이라는 세계 최고의 맥주(주관적이지만)를 품은 도시다.


플젠에는 체코를 대표하는 맥주 브랜드, 필스너 양조장(Brewery)이 있다. 양조장의 이름은 플젠스키 프라즈드로(Plzensky Prazdroj). 유구한 역사를 지닌 곳이다. 1842년부터 여기에서 맥주가 생산됐다. 한국, 정확하게 말하면 조선시대 헌종이 나라를 통치하던 시기에 플젠에서는 세계 최고의 맥주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술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필스너의 맛이 특별하다는 것 쯤은 알고 있었다. 맥주 마니아들 사이에서도 최고의 맥주로 꼽히는 오리지널 필스너를 눈앞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플젠행 기차표를 구매할 이유는 충분했다.


플젠스키 프라즈드로 양조장

 

프라하에서 기차를 타고 약 1시간 30분을 달리면 플젠에 도착한다. 역에서 10분 정도 걸어가면 양조장이 나온다. 설레는 마음을 안고 문을 통과했다. 오후 2시 45분에 시작하는 양조장 투어에 참가하기 위해 199코루나(약 9,398원)를 지불했다. 체코어와 독일어, 영어 등 다양한 언어로 설명하는데, 나는 영어를 선택했다. 


이 공장에서만 19년을 일했다는 중년의 여성이 투어 담당자였다. 양조장 곳곳을 돌아다니며 필스너의 역사와 맥주가 만들어지는 과정 등을 친절하게 설명했다. 나를 포함해 약 20명의 이방인들이 필스너 로고가 새겨진 버스에 올랐다. 


양조장 투어 버스



두근두근 양조장 투어


투어는 한 시간 정도 진행된다. 빈병을 세척하는 시설을 시작으로 맥아와 홉을 끓이고, 숙성시키는 과정을 모두 볼 수 있다. 필스너 맥주의 역사와 지금까지 이 양조장을 이끌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도 들었다. 


투어의 하이라이트는 맥주가 보관되어 있는 지하실로 내려가 직접 필스너를 맛보는 것이다. 사실 앞의 프로그램들은 조금 지루하다. 투어에 참가한 사람들 모두 오직 한 가지만 생각하는 눈치였다. 바로 시음. 미국에서 왔다는 한 남자는 "이거 마시려고 왔는데 투어가 너무 길다"는 농담을 했다. 굳이 말을 섞진 않았지만, 내 생각도 다르지 않았다. 


기대를 안고 시음 장소로 향했다. 맥주가 저장되어 있는 지하의 온도는 5~7도 사이다. 8월 말이라 지상은 더웠지만, 지하는 입구부터 서늘했다. 입김이 나올 정도였다. 추워도 괜찮았다. '생(生)' 필스너를 마실 수 있으니까!


5분정도 걸었을까, 아주 큰 나무통들이 보였다. 족히 3미터는 돼 보이는 큰 통들이 복도 양 쪽에 줄서 있었다. 속으로 신이 났다. 큰 컵과 작은 컵 중 하나를 고르란다. 당연히 큰 컵. 줄을 서서 직원이 직접 컵에 담아주는 '생맥'을 손에 들었다. 설렌다. 정말 예쁜 여자와 소개팅 하는 기분이었다. 진짜다. 두근두근.


시음 시음 시음 ...


컵에 맥주가 담겼다. 아직 맛을 본 건 아니었지만, 향이 느껴졌다. 그리고 급하게 컵을 입으로 가져갔다. 진부한표현이지만 '신세계'였다. 플젠 본토 공장에서 마셨다는 생각 때문일까? 태어나서 마셔본 맥주 중 단연코 가장 맛있었다. 향은 풍부했고, 목으로 넘어가는 청량감은 태어나서 처음 느껴본 것이었다. 맥주인지 음료수인지 구분 못 할 정도로 '후루룩' 넘어갔다. 마실수록 맥주가 줄어드는 게 아쉬울 정도였다. 


시음을 끝으로 체험이 종료됐다. 뭔가 아쉽다. 한 잔 더 하러 공장 내에 있는 '나 스필체(Na Spilce)'라는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스테이크와 파스타를 시켰고, 어김없이 필스너 한 잔을 들이켰다. 이번에도 감탄. 이 양조장에서 생산하는 또 다른 맥주, 코젤도 주문했다. 평소 흑맥주를 좋아하는 편이라 선택했는데, 맛은 역시 좋았다. 양조장에서 마시는 맥주라 그런가. 취한 건 아닌데.


코젤 + 필스너 조합 (꿀꺽)



신흥 강호 빅토리아 플젠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마쳤음에도 아직 낮이라 도시를 돌아볼 겸 양조장을 빠져나왔다. 행선지는 빅토리아 플젠의 홈경기장. 체코 최고의 축구 클럽은 스파르타 프라하다. 체코 프로축구리그에서만 무려 33번 우승을 차지한 팀이다. 플젠은 신흥강호다. 최근 5년 사이 3번이나 리그 정상에 올랐다. 최근 성적만 보면 플젠도 명함을 내밀만하다. 


플젠의 홈 경기장 이름은 '두산 아레나'다. 맞다. 우리가 아는 그 두산이다. 체코에 있는 두산스코다파워는 2005년부터 플젠을 후원하고 있다. 두산은 플젠이 리그의 강자로 군림하는데다 UEFA 챔피언스리그, 유로파리그 등 유럽대항전에 출전하는 것을 높게 평가했다. 유럽 전역에 기업을 홍보할 기회로 여겼고, 플젠을 마케팅의 창으로 선택했다. 기왕 플젠의 메인 스폰서가 된 두산은 경기장 이름까지 차지했다.


빅토리아 플젠의 홈구장 '두산 아레나'


경기가 없는 날이라 주변이 조용했지만, 그래도 가는 길은 그 자체로 특별했다. 플젠을 상징하는 빨간색과 파란색이 거리 곳곳을 장식했다. 벤치, 벽, 도로에는 플젠을 응원하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경기장 문틈으로 푸른 잔디가 보였다. 만 석이 조금 넘는 아담한 관중석도 눈에 들어왔다. 경기가 없는 게 아쉬울 뿐이었다.


아쉬움 가득한 시선으로 한 장


시내로 향했다. 일요일이라 조용할 줄 알았는데, 마침 축제 기간이라 사람들이 거리를 가득 메웠다.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들고 벤치에 앉아 사람들을 구경했다.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직관' 글에도 언급했듯 내 취미 중 하나가 사람 구경이다. 아이들 손을 잡고 나온 부모들이 눈에 띄었다. 손을 잡고 마실 나온 노부부도 많았다. 


평화로웠다. 낯선 동양인을 보는 시선이 살짝 느껴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마음이 편안했다. 시끌벅적한 프라하에서는 느낄 수 없는 감정이었다. 오히려 프라하보다 좋았다. 유럽 최고의 맥주를 맛봤고, 한적한 동네 주민 '코스프레'를 하니 더할 나위가 없었다. 오래 머물지 못하고 프라하로 돌아오는 길이 못내 아쉬울 뿐이었다. 



+ 경기장과의 거리 - 도보로 5-10분

+ 서비스 - 친절한 가이드의 설명

+ 가격 - 투어 199코루나 (약 9,500원. 맥주 한 잔 포함) 

+ 특이사항 - 양조장 내에 레스토장, 기념품샵 있음 (캔, 병맥 구입 가능)




글·사진 - 정다워 (포포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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