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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의 축구 Jan 08. 2016

연변에서 밥은 먹고 다녔냐고?

중국, 연변 먹거리/맛집

밥은 먹고 다녀요?


지난 10월, 중국 연변에서 연변FC를 이끌던 박태하 감독에게 불쑥 전화를 걸어 이렇게 물었다. 박 감독은 웃으며 "여기가 더 맛있다"라고 했다. 


어른에게 무슨 말 버릇이냐고? 수화기로 욕이 날아오진 않았냐고? 사실 "식사는 잘 하고 계세요?"라고 공손히 물었다. 비꼰 게 아니다. 걱정됐다. 외국에 가면 고생 아닌가. 중국 생활은 끼니 걱정이 반이라는 이들도 많다. 


궁금했다. "연변이 더 맛있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9월 말, 박 감독이 잠시 귀국했을 때 포항에서 만나기로 약속한 뒤 궁금증은 더 커졌다. 포항의 한 커피숍에서 박 감독의 얼굴을 봤는데 거짓말 조금 더 보태서 광채가 났다. 코치생활을 오래하다 전권을 잡고 감독을 해서 얼굴이 편해진 게 아니었다. 뭔가 좋은 것을 먹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연변FC 박태하 감독



"연변이 화제랍니다"


기회가 왔다. 연변이 중국 프로축구 2부 갑급리그(甲级联赛)에서 계속 승리를 거두면서 승격 가능성이 90%를 넘겼다. 대표와 동료기자들이 모두 크고 작은 관심을 갖게 됐다. 지난 시즌 강등 당하고도 다른 팀들의 징계로 간신히 살아 남은 팀이 승격을 앞두고 있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출장 승인이 났다. 다른 기자들도 "취재해볼 만한 아이템"이라고 동의했다. 기분 좋게 기적의 현장(혹은 좋은 밥)으로 떠날 수 있었다.


10월 말, 연변은 추웠다. 한국보다 정확히 섭씨 10도 정도 기온이 낮았다. 추위와 낯선 풍경에 떨던 나를 길림신문 김룡 선배가 따뜻하게 대해줬다. "류청 기자, 여기 어이 왔습니까? 저녁 약속 없으면 내랑 팬들이랑 양꼬치나…" 김 선배 입에서 '먹겠냐'는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가시죠"라고 답했다. 사실 늦은 시간에 박 감독과 저녁 약속이 있었지만, 나는 솔직한 배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연변의 골키퍼이자 최고참인 윤광의 어머니가 하는 집이었다. 상호는 '강심장'이었다. 꼬치를 기다리며 맥주를 시켰다. 양꼬치엔 칭다오가 아니다. 우리 연변에서는 '빙천맥주(氷川麥酒)'를 마신다. 확실히 맛있다. 김정은 국방위원장도 고개를 가로 저었다는 한국 맥주와는 급이 달랐다. 부드러우면서도 풍부한 맛이었다.


연변 강심장의 양꼬치


사실 조금 걱정이 됐다. 나는 생긴 것과 다르게 비위가 그닥 좋은 편이 아니다. 잡내를 제대로 제거하지 않은 양고기를 먹으며 고생한 적도 있다. 양꼬치는 화로 위에서 돌돌 돌아갔고, 내 머리 속도 빙빙 돌았다. 초대 받아서 간 자리에서는 잘 먹는 게 예의다. 김 선배가 먼저 꼬치를 들어 먹기 시작했고, 앞에 앉은 박미화 씨도 젓가락을 들었다. 내 차례가 왔다. 용감하게 꼬치를 빼 먹었다.


'나는 아무런 생각이 없다. 왜냐하면 맛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내가 먹었던 건 양이 아니었단 말인가. 그때와는 다른 고기였다. 불맛이 많이 나는 소고기를 먹는 기분이었다. 계속 먹으며 방정 맞게 "선배 정말 맛있네요. 한국에서 먹었던 거랑은 달라요"라고 고백해버렸다. 김 선배가 웃었다. "한국에서는 양은 안 키우잖습니까. 그러니 안 좋은 고기를 먹는 거 아닙네까"


우리 어릴 때는 돈 없으면 축구를 할 수가 없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한국에서 막노동을 20년 가까이 하셨다.
아버지께서는 2012년에 귀국해서 2014년 돌아가셨다.
그래도 내가 출세해서 기뻐하셨다.
가게도 그 돈으로 차린 것이다.

며칠 후 윤광을 인터뷰하다 들은 말이다. 가슴 한쪽이 조금 아팠다.


맛이 없을 수 없는 양꼬치였던 거다.



랭면과 닭곰 그리고 개구리


출장 3일째, 경기를 보러 가기 전에 연변 냉면을 먹으러 나섰다. 연변 냉면은 흔히 한국에서 먹는 냉면이나 북한의 평양 냉면과는 다르다. 면도 전분 함량이 매우 높다는 설명을 듣고 '순이 랭면'으로 향하고자 택시에 올랐다. 그런데 조선족이 아닌 한족 택시기사를 만났다. 결국 연변 구단 관계자에게 전화를 해서 설명을 부탁해야 했다. 


직접 본 연변 냉면은 크기부터 압도적이었다. 엄청나게 큰 화채그릇에 갈색면이 가득 담겨 있었다. 소고기, 돼지고기 수육과 닭고기 완자가 고명으로 나왔고, 각종 채소도 듬뿍 들어가 있었다. 맛은 자극적이었다. 면의 탄력은 엄청났다. 물어도 잘 끊어지지 않을 정도로 탱탱했다. 육수는 자극적이었다. 시고, 달고, 시원하고. 다 먹지는 못했다. 


연변 냉면의 비주얼


연변 냉면은 호불호가 갈리는 맛이다. 공항에 내리자마자 냉면집으로 직행하는 이들도 있고, 냉면을 먹는다면 연변 냉면이 아니라 북한 식당에서 하는 평양 냉면을 택하는 이들도 있다. 연변에서 한 시즌을 뛴 하태균은 후자였다. 하태균은 "다른 음식들은 정말 맛있는데, 냉면은 나하고 좀 안 맞는 것 같다"라고 했다. 나도 하태균에 한 표!


어쨌든 연변 냉면을 먹고 경기장으로 갔다. 본부석 맞은편에 앉은 팬들은 "연변 인민의 영웅 박태하"라고 쓴 커다란 플래카드를 들어올렸다. 하태균이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우승을 자축했고, 처음으로 맛본 우승에 연변 사람들은 환호했다. 나이가 지긋하신 어르신들도 어린애처럼 좋아했다. 박 감독의 잔류 선언에 눈물을 훔치는 기자도 있었다.

 

박태하 감독에게 감사를 보내는 연변 서포터


우승 이후에는 대접 그리고 또 대접이었다. 만찬장에서 하태균이 극찬한 음식을 만났다. 바로 '닭곰'이다. 이름도 생소한 닭곰은 이렇게 만든다. 닭을 푹 삶는다. 흐물흐물하게 삶는 게 아니라 살이 탄력 있게 삶아서 손으로 먹기 좋게 찢는다. 이후에 그릇에 남아서 낸다. 닭을 삶은 육수는 따로 낸다. 살은 양념장에 찍어 먹는다. 연변에서 닭곰을 두 번 먹었는데, 먹을 때는 이름을 몰랐다. 


닭곰을 먹으면 대접 받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치킨의 기름진 비릿함도 아니고, 삼계탕의 야들야들함도 아니다. 박 감독 표현을 빌리면 "먹으면 건강해지는 느낌"이다. 서두르지도 않고, 무심하게 기다리지도 않은 요리라는 생각이다. 닭곰을 먹으면서 옆에 있던 김정남PD에게 이렇게 말했다. 


"정남아. 같은 한식인데 한국에서는 왜 이런 맛을 내지 못할까?"


아마 음식을 대접한 이들의 정성도 한몫 했을 것이다. 한족과 한국인들에게 모두 설움 받던 조선족들은 박 감독에 열광했다. 길림신문 김 선배는 "박 감독은 우리가 싫어하는 한국사람의 특징을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했다. 박 감독은 겸손한 자세로 조선족의 자존심을 세웠다. 가는 곳 마다 박 감독을 대접하려는 이들이 가득했다.


자연산 송이를 비롯한 진수성찬, 아니 마음


용정체육학교 교장선생님의 초대를 받았을 때(여기서 닭곰을 먹었다)다. 교장선생님은 "박 감독님과 제가 갑장(동갑)"이라며 호호 웃었다. 대화 도중에 개구리를 삶아먹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교장 선생님이 갑자기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10분 후에 살아 있는 개구리가 도착했다. 나는 개구리 다리도 먹지 않는 사람인데, 그날 삶은 개구리 몸통을 먹어야 했다.


박 감독은 맛있게 먹었다. '이 양반 개구리 좀 먹어봤네'라고 생각했다. 박 감독은 삶은 개구리를 먹고 당황하는 내게 한국에서는 보기 어려운 껍질이 하얀 삶은 달걀을 건넸다. "한국에서 먹던 거랑은 다른 거"라며 손을 내밀었다. 삶은 달걀을 먹으며 그 말을 수긍했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박 감독도 삶은 개구리는 처음이었다고 했다. "대접한 분의 마음이 다칠까 최대한 자연스럽게 먹었다"는 말과 함께.


윤동주 시비(詩碑)



연변, 우리 음식


우리는 연변을 잘 모른다. 우리에게 연변은 영화 <황해>의 무시무시함과 개그콘서트 <황해>의 우스움 그 사이에 있다. 실제 연변은 우리의 생각과는 아예 다르다. 연변은 별다른 볼거리가 없어도 여름이면 관광객들로 북적거린다. 연변이 중국 내에서 식품 안전도가 가장 높기 때문이다. 공기도 좋다. 먹고 쉬기 위해 연변을 찾는다. 


한국 역사의 질곡 한 구석에 연변과 조선족이 있다. 이들을 어떻게 생각하든 자유다. 다만 궁금하다면 연변 닭곰을 드셔보시길. '아 이건 우리 음식이구나' 말이 필요 없는 동질감을 느낄 수 있을 거다. 식사를 여유롭게 마친 뒤에는 가곡 '선구자'에 나오는 일송정에 가서 가깝고도 먼 땅을 내려다 보시길. 그리고 축구장에서 박태하를 만나시라.


너무 걱정 마시라. 연변에 가면 밥은 잘 먹고 다닐 수 있으니.


일송정

양꼬치

+ 경기장과의 거리 - 강심장(경기장에서 차로 15분 거리), 이외에도 가게 다수

+ 서비스 - 매우 친절(강심장에서는 선수들의 사진과 사인도 볼 수 있다)

+ 가격 - 만원이면 배부르다

+ 특이사항 - 빙천맥주와 함께 먹으면 환상. 칭다오 찾지 말자 


순이냉면

+ 경기장과의 거리 - 경기장에서 차로 10분

+ 서비스 - 호방하다

+ 가격 - 3,000~5,000원

+ 특이사항 - 최홍만이 아니라면 '대자'는 금물


닭곰

+ 경기장과의 거리 - 연변 도처에서 판매

+ 서비스 - 가게에 따라 다르다

+ 가격 - 5,000~6,000원

+ 특이사항 - 양념장과의 조합이 환상적이다 



글·사진 - 류청 (풋볼리스트 취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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