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베를린 등 현지 맛집/길거리/경기장 먹거리
독일 축구 경기장에 가면 대다수의 사람들이 한 손엔 독일식 핫도그를, 다른 한 손엔 맥주를 들고 경기를 관전한다. 독일식 핫도그는 '독일식 딱딱한 빵(Brötchen)' 안에 '구운 소시지(Bratwurst)'를 넣고 머스터드를 뿌리는 간단한 음식이다. 무려 1313년에 뉘른베르크에서 처음 등장한 유서 깊은 음식이라고 한다. 이름도 심플하다. 'Bratwurst mit Brötchen'. 직역하면 '빵과 함께 구운 소시지'가 된다.
이렇듯 간단한 음식이지만 뜨거운 태양 아래서 땀을 뻘뻘 흘리며 먹는 독일식 핫도그는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음식으로 변모한다. 자글자글 구워진 기름진 소시지에 딱딱하지만 쫄깃한 빵이 식감을 더해주고, 자극적인 머스터드가 입안에 뒤섞여 풍미를 더한다. 여기에 차가운 맥주를 더해주면 지상 낙원이 따로 없다. 이것이 바로 축구 경기장에서 독일식 핫도그가 그 어떤 음식보다도 사랑받는 이유다. 오직 경기장에서만 맛볼 수 있는 맛. 다른 장소에선 그저 싸구려 길거리 음식에 불과할 뿐, 절대 이 맛을 연출할 수 없다.
하지만 내가 소개하고 싶은 독일 축구장 먹거리는 독일식 핫도그가 아니다. 전통적인 핫도그와는 또 다른 매력을 가진 신흥 강자 '카레소시지(Currywurst)'다. 그 이유는 바로 한국인들이 좋아할 맛이기 때문이다.
이 음식 역시 간단하다. 구운 소시지를 한 입에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접시 위에 놓고, 그 위에 케첩을 끼얹는다. 그리고 카레 가루를 뿌리면 끝이다. 카레 가루의 매운 맛과 케첩의 달달한 맛이 어우러지면서 한국인의 입맛을 사로잡는다. 가게에 따라 매운맛의 강도도 조절할 수 있다. 역시 한국인은 매운 음식을 먹어줘야 기운이 난다.
비단 한국인만이 아니다. 카레를 전 세계적으로 유행시킨 일본인들도 카레소시지를 사랑한다. 일본 대표팀 오른쪽 측면 수비수로 샬케에서 뛰고 있는 우치다 야츠토 역시 대표적인 카레소시지 예찬론자다. 우치다는 독일 축구 전문잡지 '11 Fruende'와의 인터뷰에서 "카레소시지를 처음 봤을 때 문화적인 충격을 받았다. 도핑 테스트를 받고 대기실로 오면 언제나 맥주와 프렌치프라이, 그리고 카레소시지가 놓여있었다. 일본 음식과 비교했을 때 살이 찔 수밖에 없는 조합이다. 일본은 다이어트를 중시 여기기에 축구팀에서 이런 음식을 보기 어렵다"라고 설명하면서도 "웃기게 들리겠지만 난 매일같이 카레소시지를 먹는다"라고 밝혔다. 심지어 우치다는 일본 방송에서도 카레소시지를 홍보할 정도다.
독일에선 카레소시지의 기원에 대해 많은 갑론을박이 이뤄지고 있다. 통상적으로 카레소시지는 1949년 9월 4일, 베를린의 유명 음식연구가 헤르타 호이버가 만든 음식으로 알려져 있지만 함부르크와 보훔 지역에서도 자신들이 카레소시지 원조라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함부르크 출신 유명 소설가 우베 팀이 '카레소시지의 발명(Die Entdeckung der Currywurst)'이라는 소설을 통해 함부르크 기원설을 강하게 주장하고 나섰다.
그러나 매년 9월 4일, 베를린 시는 '카레소시지 날(Tag der Currywurst)'을 기념하고 있고 심지어 2009년 9월 4일, 카레소시지 60주년을 맞이해 독일 카레소시지 박물관까지 건립하는 등 카레소시지 원조로서의 정통성 유지를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세계적인 인터넷 검색엔진 서비스인 '구글' 역시 지난 2013년 6월 30일 호이버 탄생 100주년을 맞이해 구글 로고를 카레소시지 모양으로 디자인해 눈길을 끌었다. 즉 논란의 소지는 있지만 베를린이 카레소시지의 원산지라고 봐도 무방하다.
독일 前 수상 게르하르트 슈뢰더가 카레소시지 광팬으로 유명했고, 독일의 유명 락가수 헤어베르트 그뢰네마이어는 '카레소시지'라는 제목의 노래도 만들었다. 카레소시지 박물관의 조사 자료에 따르면 매년 독일에서 무려 8억 접시의 카레소시지가 소비되고 있고, 이 중 베를린에서만 7천만 접시의 카레소시지가 판매되고 있다고 한다.
카레소시지는 아직 독일 경기장 전역에서 널리 즐길 수 있는 음식은 아니다. 내가 독일에 살았던 2005년까지만 하더라도 카레소시지를 파는 구장을 볼 수 없었다.
그 무렵 나는 독일인 친구에게 "왜 축구장에선 카레소시지를 잘 팔지 않고 독일식 핫도그만 고집하는 걸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친구는 "아무래도 카레소시지는 두 손이 필요하고, 독일식 핫도그는 한 손으로도 먹을 수 있으니까 맥주와 함께 먹기 편한 음식이어서 그런 게 아닐까?"라고 그럴 듯한 답을 내놓았다. 실제 카레소시지는 한 손에 접시, 다른 한 손에 찍어먹을 포크를 들고 먹어야 하니 아무래도 편의성이라는 측면에서 독일식 핫도그에 비해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본고장인 베를린의 올림피아슈타디온과 최경록 선수의 현 소속팀 상 파울리 홈구장 밀렌토어, 샬케 홈구장 펠틴스 아레나, 볼프스부르크 홈구장 폭스바겐 아레나 등에서 카레소시지를 판매해오고 있고, 지난해 2월 바이에른 뮌헨 홈구장 알리안츠 아레나 앞에 카레소시지 가게가 새로 오픈하는 등 축구장에서도 서서히 카레소시지가 인기 먹거리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심지어 독일을 넘어 스위스 명문 바젤 홈구장 세인트 제이콥-파크에서도 카레소시지를 접할 수 있다.
지난 9월 4일, 카레소시지 날을 기념해 샬케 구단에선 우치다가 '카레소시지 홍보대사'로 나섰다. 마지막으로 카레소시지에 대한 우치다의 말을 남긴다.
카레소시지의 발명은 천재적이다
+ 경기장과의 거리 - 독일 주요 경기장 내부 또는 인근 가게에서 판매
+ 서비스 - 판매 가게에 따라 다름
+ 가격 - 2~5유로. 단품 적정가는 2~3 유로. 감자튀김 또는 빵과 세트 구성시 4~5유로
+ 특이사항 - 매운맛 조절 가능. 한 손으로 먹기 어려움
글 - 김현민 (골닷컴 기자)
커버 - Rainer Zenz (CC BY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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