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쾰른-레버쿠젠 인근 맛집
기자도 사람이다. 기자석에 갇혀 노트북과 경기장만 번갈아 쳐다보다 귀가하는 일상은 지루하기 짝이 없다. 매점에 가서 오징어도 뜯고 싶고, 사람들과 어울려 맥주도 홀짝이고 싶을 때가 있다.
지난 4월 4일, 독일 레버쿠젠의 홈구장 '바이 아레나(Bay Arena)'를 찾았을 때 나는 기자증을 벗어 던진 그저 한 명의 관중이었다. 함부르크와의 경기 시작 시간이 임박했지만, 초반 5~10분 놓치는 게 뭐 대수랴 싶어 얼른 매점으로 달려갔다. 키가 한 두 뼘 더 큰 독일 아저씨들 뒤에 줄을 섰다. 두근두근 드디어 필자 차례.
"맥주 두 잔 하고, 음... 저 소시지 주세요"
"카드 주셔야죠"
"카드요? 현금으로 계산할 건데요"
"저기 뒤에 가서 안내원한테 문의하세요. 카드가 있어야 해요"
10분을 기다렸건만, 이게 웬 날벼락. 안내원에게 바로 달려가 문의했다. 충전식 카드를 만들어야 매점을 이용할 수 있다고 한다. 한 방 먹었다. 노릇노릇한 소시지 냄새가 코를 찌르고 맥주 한 모금이 간절한데, 카드 만들기도 귀찮고 언제 또 이 경기장에 올지 몰라 그냥 'GG'를 쳤다. 물이나 마셔야지.
경기는 흥미진진했다. 강등권이었던 함부르크는 레버쿠젠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4-0 대승. 손흥민은 한국에서 국가대표 경기를 치른 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몸만 풀었다.
얼큰하게 취한 독일 아저씨들 틈을 요리조리 피해가며 레버쿠젠 미테 역에 도착했다. 기차에 몸을 싣고 쾰른역으로 컴백했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가방도 풀지 않고 곧장 달려간 곳은 맥줏집이었다. 그렇다. 필자는 경기 중에도 소시지와 맥주만 생각했다!
추천을 받아 들어간 곳은 '가펠 암 돔(Goffel am DoM)'. 독일 여행객들에겐 이미 잘 알려진 곳으로 근처 쾰쉬 전문점과 비교할 때 맥주가 월등히 맛있다고 해서 찾았다. 고민하지 않고 쾰쉬와 소시지를 주문했다. 옥토버 페스트 하면 연상되는 종아리 만한 엄청난 크기의 맥주잔이 아닌, 기다랗고 예쁜 잔에 고대하던 쾰쉬가 담겨왔다.
첫인상은 너 참 귀엽다- 였다. 홀짝. 어랏. 얘 뭐지. 한 번 더 홀짝. 그 다음은 벌컥벌컥이었다. 바이엔슈테판이나 파울라너로 대표하는 밀맥주를 선호하는 필자에겐 쾰쉬처럼 부드러우면서 청량한 맥주는 낯설었다. 세상에서 가장 예쁜 여자는 처음 보는 여자라고 하던데, 이 낯선 녀석은 처음이라 그런지 과할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비테(역: 플리즈. 주세요 쯤의 뜻), 비테, 비테!
소시지는 거들 뿐이었다. 가족으로 추정되는 옆 테이블 독일인들이 신기한듯 쳐다봤다. "맛있쪄?" 라고 묻는 것 같길래 "구트, 구트"를 외쳤다.
다음 날. 그 맛을 잊을 수 없어 대낮부터 다시 쾰쉬 사냥에 나섰다. 숙소인 'H'호텔 앞 스테이크 집에서 쾰쉬 한 잔, 커피숍에서도 쾰쉬 한 잔을 들이켰다. 낮에 먹는 쾰쉬는 또 다른 매력이 있구나. 중독성있는 음료 같달까. '가펠 암 돔'을 또 찾고 싶었다. 그러나 오후에 다른 도시로 넘어가는 일정 때문에 혹여나 기차를 놓칠까 포기해야 했다.
독일 출장이 끝나고 한국 집으로 돌아왔다. 아는 게 힘이라더니, 집 앞 대형마트에서 그 전까지 보이지 않던 가펠 쾰쉬를 발견! 무려 한 짝을 사 들고 와 어설프게 다른 브랜드의 맥주잔에 따라 한 모금 마셨다.
이거 뭐지?! 밋밋해. 그 때 그 맛이 나지 않았다. A사의 휴대폰을 흉내 낸 중국 휴대폰 같달까. 수입 과정에서 맛이 변했거나, 쾰쉬의 아담하고 어여쁜 잔에 따라마시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최종적으로 내린 결론은 '쾰른에서 먹지 않아서'였다. 비테를 연호하는 그곳에서 사실 그닥 맛있지도 않은 소시지와 함께 흡입해야 다시 그 때 그 맛을, 아니 감정을 느낄 것 같았다.
집 앞 마트에서 산 가펠 쾰쉬 맥주캔은 아직도 냉장고 한켠에 숨어있다. 너희들은 철저하게 손님용이다.
레버쿠젠-함부르크전이 열린 4월로부터 4달 뒤, 손흥민은 런던으로 떠났다. 레버쿠젠을 찾는 축구팬(특히 한국 축구팬)의 발걸음이 뚝 끊길 것 같다. 언젠가, 정확히 레버쿠젠이 아니더라도 쾰른 여행을 계획 중이라면 + 맥주를 좋아한다면 '가펠 암 돔'에 들러보시라.
쾰른 대성당 찍고, 쾰쉬 한잔 콜?
+ 경기장(바이 아레나)과의 거리 - 기차 약 15분 + 도보 5분
+ 서비스 - 신속정확 맥주 배달. 미소는 기대하지 말자
+ 가격 - 국내 맥주 전문점보단 싸고 더 맛있다
+ 특이사항 - 이른 저녁에 석식을 겸할 것. 늦은 밤 쾰른은 위험하다
글·사진 - 윤진만 (MK스포츠 축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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