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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의 축구 Mar 11. 2017

고등리그, 집 앞에서 경기합니다

집 근처 학교 운동장, 그리고 축구장

처음 '오늘의 축구'로부터 기고 제안을 받은 직후,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브런치에 올라와 있는 다른 분들의 글들을 정독하는 것이었다.


놀라웠다. 유려하게 흐르는 글솜씨를 바탕으로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해외 리그와 정말 가보고 싶었던 해외 유명 팀들의 경기장을 직접 방문하고 쓴 글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모두 <죽기 전에 꼭 한번 가봐야 할 직관>이라는 주제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글이었고, 축구팬인 나도 글을 보면서 '와... 정말 가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이 글을 쓰기 위해 해외는 커녕 K리그 직관을 가기도 금전적으로 어려운 취준생인지라,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 글을 써보기로 했다. 바로 언제나 우리 주변에서 경기가 열리고, 어린 선수들의 순수한 열정과 패기로 가득한 '고등리그'에 대해서다.


이게 정말 <죽기 전에 꼭 한번 가봐야 할 직관>인가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적어도 한번쯤 자리 잡고 앉아서 어린 친구들이 제대로 90분 동안 그라운드를 누비는 모습을 본다면 분명 내 생각에 동의 하리라 본다.




말은 쉬워도 진짜 본 사람은 드물다


축구팬들은 많지만 고등리그를 직관한 사람은 많지 않다. 평소 내 주변 축구팬들에게 물어봐도 "가족 중에 축구선수가 있다면 찾아가겠지만 굳이 뭐 하러 가서 보냐"라는 대답이 돌아오기 일쑤다. 언제나 유소년리그에 관심을 가져야 한국 축구가 발전한다고 술만 먹으면 이야기 하는 사람들의 모순적인 대답이었지만 크게 비판하진 않았다. 뭐 나도 2014년까진 그랬으니까.


나는 2014년 대학을 졸업하고 7년 동안 배운 생명공학을 뒤로 한 채 어려서부터 꼭 해보고 싶던 축구 기자에 도전했다. 그 여정의 첫 페이지를 장식할 주제로 고등리그를 잡았는데, 말은 그럴듯 해도 실상 무일푼으로 상경한 터라 K리그 티켓과 제육덮밥 사이에서 항상 고민하던 처지에 꾸준히 무료로 볼 수 있는 리그는 이 고등리그 뿐이었다. 날이 따뜻해졌어도 아직은 한기가 머물러 있던 무렵의 효창구장에서 그들은 나에게 순수한 열정과 패기를 일깨워줬다.


그렇게 꾸준히 고등리그 경기장을 찾고 부족하나마 글을 이어온 덕분에 나는 서울유나이티드라는 K3팀의 기자로 활동 영역을 넓힐 수 있었다. 유스팀을 보유한 서울유나이티드는 내게 경기를 보는 것 뿐 아니라 실제로 그 리그에 뛰는 선수들과 인터뷰 할 수 있는 기회까지 제공해주었다. 물론 기자 활동은 성인팀을 메인으로 했지만, 나는 시간이 나는 대로 계속 고등리그를 찾아다니며 그들과 함께 호흡했고 그 기억들은 지금도 생생하다. 경기가 잘 풀리지 않아 지는 날에는 응원하러온 친구들을 붙잡고 눈물 흘리던 모습, 극적인 역전골을 넣어 승리하면 그라운드가 떠나갈 듯 소리 지르며 얼싸안고 기쁨을 나누던 모습. 하나같이 세계 어느 프로리그에 견주어도 손색 없는 감동적인 장면들이다.




성장을 거듭하는 즐거운 고등리그


2009년 무렵부터 고등리그는 꾸준히 발전해왔다. 일단 지역별 또는 굵직굵직한 큰 대회에서 단기 토너먼트 형식으로만 치러졌던 예전과 달리, 이제 주말리그 형식을 도입해 여타 다른 프로리그들과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경기를 주말에 긴 호흡으로 치른지 오래다. (물론 토너먼트 형식의 큰 대회도 여전히 존재한다)


경기 시간대는 이른 시간대부터 오후 시간대까지 다양하고, 내 집 앞에 있는 학교운동장부터 제대로 시설이 갖춰진 축구장까지 전국적으로 많은 곳에서 경기가 치러진다. 경기장만 잘 찾아간다면 앉은 자리에서 연속경기도 볼 수 있다. 야구의 더블헤더에서 느끼는 묘미와 비슷하달까? 물론 팀은 바뀌지만.


또 현장에서 부모님들의 응원전을 보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이다. K리그에도 강력한 서포터즈들이 있지만 이 분들의 폭발적인 응원은 감히 뛰어넘지 못한다. 때론 그 열기가 과해 서로 간에 약간 고성이 오갈 때도 있으나 다 내 자식 다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라 생각하면 웃으며 넘길 수 있는 정도다. 


한편 이 모든 매력들을 통틀어 고등리그의 백미는 선수들의 순수한 열정과 패기라고 할 수 있다. 처음엔 생소하고 서먹해도, 어느 순간 그들과 같이 호흡하며 그들의 축구에서 희로애락을 느끼고 있는 당신을 발견할 것이다. 




작은 돌도 큰 파장을 일으킨다


언젠가 서울유나이티드 유스팀의 경기를 보러가서 한 선수를 인터뷰 한 적이 있다. 경기는 강팀을 만나 선전했으나 결국 패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인터뷰에 임하는 그 친구의 말투에는 '상대적으로 강팀을 만나 선전했다'는 뻔한 감정보다 '이길 수 있었는데 분하다'는 솔직한 심정이 묻어 나왔다. '졌지만 좋은 경기를 했다'는 생각을 깔고 질문했던 내가 창피해질 정도였다. 그만큼 이 친구들의 축구와 승리를 향한 열정과 패기는 순수했다. 


특히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이 압권이었다. 장차 꿈이 뭐냐는 질문에 그 친구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국가대표'라는 답을 내어놓았다. 물론 웃으며 뒤에 "대학부터 가야죠"라고 이야기는 했지만 놀라웠다. 실제로 그 친구가 국가대표가 되지 못할 것도 없는데, 무의식 중에 현실적인 대답을 기대했던 내가 한방 얻어맞은 것이다. 이런 친구들 22명이 그라운드 안에서 서로의 팀에 승리를 안기기 위해 몸 사리지 않고 너도나도 치열한 경기를 치른다. 어찌 그 90분이 매력적이지 않을 수 있는가?


2017년 전반기 고등리그는 이미 시작했다. 주말에 동네 학교 혹은 경기장을 지나다 휘슬소리, 함성소리와 함께 자신의 학교나 클럽이름이 적힌 유니폼을 입은 학생들이 운동장을 뛰어다닌다면 '학생들이 그냥 공놀이 하나보다'라고 생각하지 말고 꼭 한번 교문 또는 운동장 입구에 들어서서 그들의 경기를 관전해보시길. 쳇바퀴 굴리듯 지루한 삶속에 뭔가 파장을 일으키는 축구를 볼 수 있을 것이다.



글 - 홍정기 (축구 기자를 꿈꾸는 생명공학도)

사진 - 서울유나이티드, 김효선

교정 - 오늘의 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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