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장편영화-1년간의제작노트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한 외부를 보며 실내에 있던 우리는 고민에 빠졌다. 원래 계획은 철수가 전화를 받고 뛰어나가는 것까지 풀샷(전체적인 배경과 인물을 담는 구성)으로 찍을 계획이었는데 비가 오는 장면은 의도적으로 분위기를 만드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현실적인 이유로 레인코트를 비롯한 비를 막을 장비들이 없어서 전자기기들이 고장날 염려도 있었다. 또 촬영 첫날인데 누구하나라도 감기에 걸릴까봐 걱정도 되었다.
"형 비가 오는데 밖에서 찍을거에요?"
"분위기가 달라지는데..."
"그것도 그렇지만 카메라 망가질수도 있고 지금 시간도 없어요."
한정된 환경에서 촉박하게 찍기때문에 '쥬얼리샵'에 양해를 구한 촬영협조시간과 이어지는 점심시간이 나는 걱정이었다. 3시간안에 찍고 나가기로 했는데 우리가 무작정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었고 아침을 김밥으로 때문 스탭들과 우리 모두를 위해 점심은 제대로 된 밥을 먹일 생각이었다. 영화를 전체적으로 보고 있는 사람은 감독인 은총형이어서 초조하지만 급하게 조르지는 못했다. 그렇게 1시간 같은 20분이 흐르고 형은 결정했다.
"그냥 안에만 찍자. 편집으로 하면 될거 같아."
시원한 결정이었다. 바로 촬영준비에 들어가고 난 이번 씬의 배우기때문에 의상을 입고 준비했다. 전화만 받고 나가면 되는 씬이었다. 단순하지만 사실 감정은 그렇지 않았다. 민희 몰래 프로포즈반지를 준비하러 왔다가 민희에게 헤어짐을 통보받는 장면이어서 한정된 촬영시간안에 잘 집중해야 찍을 수 있었다. 우리가 처음에 찍었던 장소는 우리만 있던 사무실공간이어서 한결 촬영하기가 편했는데 '쥬얼리샵'은 영업을 하면서 촬영을 하다보니 손님이 갑자기 오시면 촬영을 멈춰야했고 NG가 나면 또 손님이 오기도 하는 아무튼 집중하기가 힘든 환경이었다.
내가 처음에 형과 '영화'를 만들기로 한 가장 큰 이유는 '우리가 돋보이는 영화', '배우로서 어필할 수 있는 연기력을 보여줄 수 있는 영화를 우리가 직접 만들자' 였다. 무엇보다도 영화에서 중요한 건 형과 나의 배우로서의 임팩트였다. 그런데 영화를 막상 찍기 시작하니 급하게 넘어가야 하는 부분들이 생겼다. 첫째 날의 마지막 장소인 '병원'씬에서는 우리만 있는 공간이었지만 형은 연기도 하고 연출도 신경쓰고, 나는 연기도 하고 배우들 케어도 해야하고 저녁도 준비해야 하고 협찬받는 장소 시간도 생각해야 하고 내일 촬영 준비도 해야 하다보니 어느순간 연기를 전혀 하고 있지 않았다. '자연스럽다'는 건 참 좋은 것이자만 배우로서 장면에 있어서 욕심을 낼 수도 있는데 그러지를 못했다는 것이다. 지금와서도 형이랑 돌이켜보면 길었던 리딩시간과 직접쓴 시나리오기에 우리가 그 많은 대사들을 익혀놔서 그나마 촬영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지금도 좀 더 배우로서 욕심을 내지 못했던 것들이 아쉬울 뿐이다.
'병원'씬에서는 또다른 걸림돌이 등장했다. 바로, 바람과 소음이었다. 고층빌딩들이 모여있는 '뱅뱅사거리'는 바람이 엄청 강하게 불었다. 거기에 주변 공사장의 소음은 큰 복병이었다. 봄의 따사로움보다 봄의 차가움을 견뎌내면 우리는 건물 외부씬을 찍어야 했다. 현주와 현주의 남사친 역인 준영이가 현장을 도착하고 빠르게 동선을 정하고 우리는 촬영에 임했다 .
배우들은 자신이 맡은 역할을 충실히 해줬고 강한바람과 소음들을 빼고는 씬은 잘 마무리가 되었다. 그렇게 외부에서 실내로 들어와 오늘의 마지막인 의사와 민수의 만남을 준비했다. 감독과 촬영감독이 세팅을 할 때 나는 도착한 의사역할의 정한형에게 햄버거를 건냈다.
"와줘서 고마워요 형."
"아유~ 촬영 불러주면 고맙지."
"저희가 정신이 좀 없어서 잘 못챙겨드릴거 같아요. 혹시 뭐 필요하면 그때그때 얘기해주세요."
"으응 알겠어. 어떻게 촬영은 다 했어?"
"일단 오늘 일촬표대로 찍기는 했는데 비가 오고 그래서 바꾼 장면도 있고 모니터는 상세히 잘 못했어요."
"어유 고생이 많네."
"좀 쉬고 계세요. 촬영준비되면 말씀드릴께요."
배우들이 이렇게 오면 나는 일일히 부족한 것들을 말하고 필요한 것들을 얘기하라며 챙겼다. 그 역할이 나고 또한 거의 내 지인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내가 배우로 나간 현장에서는 내가 그런 보살핌을 받았지만 나는 그 때 느꼈던 부족한 것들을 알고 있기에 내가 챙기는 위치가 되자 더 마음이 갔다.
실내촬영은 외부보다는 소음이나 불청객등이 적다는게 장점이지만 자연광이 없기에 조명과 카메라각등 더 신경쓰이는 것들이 있었다. 우리촬영이 딱 그랬다. 의사와 민수의 상담장면이다 보니 좁은 공간안에서 여러명의 스탭들이 카메라를 피해 숨기 바뻤고 감독이 직접 연기를 하는 장면이다보니 형은 형대로 굉장히 바뻤다.
옆에서 지켜보기 보다는 나는 나대로 내일 촬영을 준비해야 해서 일촬표와 장소 점거을 했다.
"내일 야외가 있는데 비는?"
"날씨는 괜찮은 것 같아요."
"집합이 몇시였지?"
"7시30분에 아차산역에서..."
"아니야. 그러면 늦으니까 원룸으로 오라고하고 내가 가면서 김밥을 사갈께. 미리 주문해놔야겠다."
"네, 그러면 그렇게 전달할께요."
조연출을 맡은 윤전이와 내일에 대한 스케줄을 정리하다보니 어느새 10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생각보다 촬영시간이 오래걸리네... 내일 일찍부터 모여야해야 얼른 찍고 가서 쉬게 해야하는데..."
환경을 이해하면서도 별탈없이 스케줄대로 마무리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막연하게 기다리기만 했다.
"오케이~!!! 수고하셨습니다."
"끝났어요?"
밤 11시가 가까워진 순간 종료된 첫날 촬영. 정신없었지만 일정대로 진행이 되었다. 정한형에게 고맙다고 하며 3만원이 든 봉투를 건냈다.
"많이 드려야 하는데 유류비정도에요. 죄송해요."
그렇게 모두의 도움으로 1일차 촬영이 종료되었다. 이제 이틀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