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장편영화-1년간의제작노트
아침 7시반에 아차산인근 원룸으로 집합이다보니 집에서 5시쯤 출발했다. 그래도 집에서 잠을 자고 오니 조금은 피로가 풀린 느낌이어서 좋은기분으로 아차산역에 도착을 했다. 도착을 하자마자 근처 김밥과 음료수를 사서 원룸으로 이동했다. 민수의 원룸에서 찍을 분량이 많았다. 그래서 모두가 빠르게 세팅을 시작했고 형(감독)도 빠르게 촬영감독과 동선을 맞춰봤다. 민수의 원룸에서 찍을 분량이 5씬이고 그 근처 골목씬까지 포함하면 오늘 찍을 총 씬이 10씬가까이 되다보니 어제보다 분량이 사실 많았다. 누구보다 다들 바쁘게 움직여야 하는 날이었다.
"내가 연기를 하는건지 잘모르겠다"
"내가 연기를 하는건지 잘모르겠다" 라고 형(감독)이 조명을 들고 있던 내게 말했다. 본인이 감독과 연기까지 해야되다보니 모니터를 꼼꼼이 해야하는데 시간에 쫓기다보니 모니터를 많이 못하고 조연출과 내게 연기를 봐달라하니 불안했던 것 같았다. 온전히 스탭일을 하던 나는 최대한 형(감독)을 도와주려고 했었고 그런와중에 배우로서의 욕심과 제작자로서의 욕심이 부딪쳤다.
"한번만 더가자!"
"형! 시간이 없어요. 그냥 넘어가야해요!"
"아니, 그건 아는데 한번만 더!"
"오케이 알겠어요. 대신 이번것중에서 골라서쓰고 무조건 다음씬 가야해요!"
나도 왜 이렇게 시간이 부족한지를 모르겠었다. 분명히 그동안의 촬영현장에서 다져진 경험과 우리대본을 바탕으로 체계적으로 타임스케줄을 짰는데 '또 시간이 부족해져버렸다' 고. 그 이유가 뭘까? 대체?
장편영화를 만들면서 우리팀은 사실 경험이 부족했다. 스탭들은 정말 열심히 해줬지만 경험이 부족했고 형과 나는 연출과 제작에 대한 경험이 더 부족했다. 결국 이런 큰 영화를 만들 경험이 부족했다. 그러다보니 그때그때 터지는 즉흥적인 상황들이 겹치고 겹치다보니 촬영딜레이로 가고 그 중에 연기까지 하다보니 결국, 이렇게 될 수 밖에 없었던 것 같다.
"화를 내서 미안한데 이런건 니가 확실히 했어야 하는거 아냐?"
민수와 현주의 골목씬을 야외에서 찍고 있을때였다. 결국, 피곤과 변수들이 쌓이고 쌓여 터지고 말았다.
"이게 안되는데요?"
"왜 무슨일인데?"
"소리가 안들려요."
영화촬영장에서 자주 보이는 '붐'이라는 것을 저자분들도 알것이다. '붐대'라고 해서 긴 막대기에 복실복실한 털이 달려서 배우들의 호흡하나까지도 놓치지않는 음향장비이다. 그것을 '타스캠'이라고 하는데 그 장비가 이상이 생겼다는 것이었다.
"뭐가 문제인건데?"
"아니.....소리가 안들려요."
"언제부터그랬는데?"
"지금요!"
갑자기 지금, 장비가 고장났다고 한다. 그것도 꼭 있어야하는 음향장비가......
형(감독)은 대여를 해온 촬영감독과 장비에 대한 회의에 들어갔고 나는 걱정스레 시계와 남은 촬영할 씬들을 살펴보았다.
"화를 내서 미안한데 이런건 니가 확실히 했어야하는거아냐?!!!"
소리를 버럭 지르는 형(감독)과 그 앞의 촬영감독. 결국 터질게 터져버렸다. 쌓였던 피로와 각자의 책임이 있었는데 장비부분은 촬영감독이 전적으로 확인하기로 했었기에 그 태도에 대한 실망감이 터진것이었다. 먹통인 '타스캠'때문에 촬영을 접을 판이었고 당장 내일 촬영까지도 대실을 해논 상태라 제작비에 대한 걱정이 들 수 밖에 없었다.
"우리 잠깐 쉬죠."
제작PD인 내 역할이었다. 그렇게 잠시 다들 쉬기로 했고 해결방안에 대해서 모색하던 중 혼자서 장비를 들고 머리를 싸매던 형이 방법을 찾아냈다. 그래, 급할수록 돌아가라고 했다. 감정이 서로 격해질 때 잠깐의 휴식이 해결방법을 줬다. 그래도 복이 있는 것이지. 사실, 이 씬 촬영전에는 민수가 목걸이를 들고 가는 장면이 있었는데 그때는 또 귀걸이가 없어져서 찾다가 다른 거로 대체하기도 했다. 하루에도 몇번씩 서프라이즈가 터지는 촬영현장이다.
오늘도 결국, 새벽이 되었다. 10시부터 찍을 예정이었던 20,23씬은 저녁12시가 되어서야 시작할 수 있었다. 자정이 가까운 시간 감정이 폭발하는 가장 중요한 마지막장면을 찍기에는 조용한 골목들은 너무나도 눈치가 보이는 상황이었다. 최대한 주택이 없는 곳을 찾아다녔고 어느정도 느낌이 오는 그 곳에서 나는 최대한 소리를 지르지 않으며 감정을 분출해야만 했다. 리딩을 할 때도 이 장면에 가장 고민이 많았고 형(감독)과도 얘기를 많이 했었다. 그리고 상대배우인 민희와도 이 장면에 대해서 충분히 얘기를 했지만 막상 시간에 쫓기고 급하게 찍다보니 놓칠 것 같은 감정들이 있어서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이 장면만은 PD역할은 잊고 온전히 배우로서만 집중하겠다고 다짐을 하고 임했다. 다른건 신경쓰지않고 오로지 감정과 상황에만 집중했다.
"오 좋다. 좋은데?"
사람이 모든 것을 놓았을 때 오히려 감정은 솔직하게 나온다. 아마 이때가 그랬던 것 같다. 내 연기에 만족이란 없지만 그래도 그 상황에 충분히 몰입한 덕분에 연기NG없이 깔끔하게 찍었다. 이 장면에서 NG가 많이 날 것 같다고 생각했던 형(감독)과 나의 예상과는 다행이 반대로 말이다.
2일차촬영은 새벽4시가 되어서야 끝났다. 그런데 3일차촬영이 바로 3시간후부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