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가 만든 영화_14

독립장편영화 - 1년간의제작노트

by 구쩜사오
3일차의 촬영은 사실 가장 힘들었던 날로 난 기억하고 있다.

2회차를 마치고 우리는 신촌에 위치한 모텔로 새벽에 들어갔다. 아마도 새벽4시를 넘었을 때였고 우리는 모두 녹초가 된 상태였다. 3일차의 첫 촬영이 모텔씬이었기에 어차피 촬영을 할 거, 그냥 그 장소에서 대충자자고... 그렇게 모두 세개의 방에 나눠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여배우는 충분히 휴식을 취하게끔 자정전에 숙소로 보냈고 남은 두 개의 큰방에 남녀가 따로 들어가서 잤다. 물론 남자가 7~8명 정도였기에 각자 바닥,침대,쇼파 등 다양한 공간을 활용하며 휴식을 취했다.

3회차 촬영시작이 오전7시였고 그때가 5시쯤이었을 거다. 자면 못일어날 것 같아서 나는 욕조에 들어가 반신욕을 시도했고 다른사람들은 대부분 골아떨어졌다. 오픈형 화장실이었지만 그딴건 하나도 중요치않았다. 어떻게하든 컨디션을 올려야했고 내가 간절한 마음으로 물에 들어간것이기에 말이다. 물 속에 잠겨서 새벽5시에 잠도 못자고 이게 제대로 촬영이 진행되고 있는가 의구심이 들었다. 내 원래 촬영론은 '잠과 먹는거는 제대로 자고 먹자'이다. 최대한의 보장을 해줘야 결과물도 잘나온다는 생각인데, 내가 제작하는 영화가 지금 이렇게 시간에 쫓기는 것을 눈앞에서 보니 스스로 한숨과 짜증이 나왔다. 좋아서 만드는 거지만 내가 원래 생각했던 신념을 스스로 깨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스스로에 대한 짜증과 반성을 하다보니 나도 모르게 욕조안에서 잠이 들었다. 얼마나잤을까 황급히 놀라서 밖으로 나오고 정리를 하고 보니 6시30분이 되어 이었다. 나는 옷을 입고 밖으로 나가 배우와 스탭이 먹을 아침거리를 편의점에서 구매했다. 그리고 다시 들어와보니 여전히 모두 골아떨어져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짠했지만 할건 해야 해서 모두 기상시키기시작했고 3일차촬영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철수와 민희의 모텔씬]


"왜그래 너? NG를 왜 이렇게 내?"


"강배우! 왜그래? 너답지않게?"


감독인 은총형은 내게 짜증과 안타까움이 담긴 말을 했다. 침대에 올라가 이불을 덮는 간단한 장면인데 앵글(카메라의 고정된 틀)안에서 자꾸 내가 벗어났다. 다들 피곤한 상태에서 간단한 장면이 NG가 반복되자 형이 내게 짜증을 냈다. 직접 내게 시범을 보이며 "그래 피곤해서 그런거알아! 이렇게 해봐" 하는데 사실 당시에 나도 짜증이 많이 올라온 상태였다. 스스로에 대한 자책과 체력적인 짜증이.

결국, 그 단순한 장면은 체감상 30번의 NG가 나고서 대충 넘어갔다. 완벽주의적인 성격인 나로서는 너무나 화가났지만 (뒤에 장난으로 놀림을 당할 때 이때의 일이 많이 올라왔다) 어쩔수 없었다. 시간은 촉박하고 별거아닌 장면에서 NG가 반복적으로 나다보니 대실시간도 있고 이동도 해야해서 말이다. 그리고 또 한번 '잠의 소중함'을 느겼다. 잠을 못자니 정신이 멍한 상태였다. 멍한 상태로 하려니 간단한 동작을 맞추는 것도 분명히 잘한것 같은데 종이한장의 느낌으로 감독의 마음에는 들지 않았던 것 같았다. 감정은 쌓였지만 당장 해야하는 촬영들이 있다보니 그 감정은 한구석으로 밀어놓고 다음 촬영을 위한 이동을 했다.


3회차 스케줄표


다음은 ' 친구들과 만난 민희' 를 찍기 위해 대관을 해논 합정카페로 이동했다. 모텔씬을 찍었던 신촌과는 거리가 멀지 않았기에 승합차와 택시를 나눠타고 이동했고 카페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우정출연을 해준 배우들의 도착여부확인과 점심시간을 위한 김밥과 음료수를 사러 편의점을 다녀왔다. 다행히 배우들은 제 시간에 맞춰와줬고 의상등을 점검한 다음 세 명의 여배우가 나오는 장면을 촬영하게 되었다.


촬영을 도와준 우정출연배우들
촬영을 도와준 우정출연배우들


좁은 카페안에서 세명의 배우들의 합을 보고 있자니 굉장히 뿌듯함을 느꼈다. 그들이 진지하게 임하는 그 모습이 '아 내가 영화를 만들고있구나.' 라는 그 자부심으로 다가왔기때문이다. 그들이 불편하지않게 최대한 신경을 써가며 촬영현장을 제작PD로서 챙겼고 형(감독)과 배우들을 큰고비없이 주어진 시간안에 촬영을 끝낼 수 있었다.



3일차 타임테이블


힘든 촬영와중에 결국 체력의 한계가 오기시작했다. 3일강행군을 달리다보니 몸에 무리가 오기시작했고 '젊은'이라는 강력한 보호막도 무너지면서 모두에게 체력의 한계가 왔고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현주와 민수의 촬영을 야외에서 진행했는데 새벽1시가 넘은 시간이었고 촬영은 점점 딜레이가 되면서 나 또한 제작PD이자 모니터를 해줘야하는 연출로서의 역할에 충실히 임할 수가 없었다. 우리는 결국, 추가촬영에 대해서 의논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못찍을 것 같아......"

"제 생각도 그래요. 이거 뭘 찍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어떡하지? 돈이 되나?"

"일단 배우스케줄이랑 스탭들 일정을 확인해보고 가까운시간으로 잡아서 추가촬영을 하죠."

"하......그래야겠지?"

"내가 죽겠어요. 형도 그렇고."


형과 나는 체력의 한계를 느겼고 나는 촬영하는 와중에 졸음을 이길 수 가 없었다. 어느순간 기절 비슷한걸 했는데 희미하게 "필선아 차에 들어가서 좀 자..."라는 말이 들렸던 것 같다. 내 성격이라면 절대 잠을 자지 않았겠지만 나도 모르게 잠을 잤다. 놀라서 눈을 뜬 나는 새벽6시가 다가오는 시간과 현장을 확인했고 다들 쓰러질 것 같은 상황에 감독과 상의 후 급하게 종료하게 되었다.


'추가촬영'


전혀 달갑지 않은 말이다. 일단, 배우 입장에서도 날짜를 새로 조율을 해야한다는 말이고 전에 찍은 영상안에 있는 의상을 비롯한 준비를 똑같이 해야 한다. 스탭들 입장에서도 기존에 없던 촬영이 생기다보니 정신적,육체적으로 부담스럽고 피곤한일이다. 그렇다면, 제작PD의 입장은? 당연히 달갑지 않다. '추가적인예산'이 필요하다는 것이기에...... 우리 영화는 애초애 몇백의 예산으로 3일차에 떄려박은 촬영스케줄이다. 일정대로 진행이 되더라도 사실 예산초과인 상황이었다. 그런데 하루추가촬영이라니. 물론, 이틀이든 3일이든 더 늘리고 싶기도 했지만 '돈'이 문제다. 모든 영화가 그렇듯이 예산에서 자유로울수는 없었다. 일단, 카드를 긁기로 했고 일주일 후에 촬영을 계획했다. 너무 미뤄지면 주변의 모습도 달라지고 배우들의 머리길이도 자라고 우리의 마음도 헤이해질수 있다는 판단하에 돈은 신경안쓰고 촬영날짜를 잡았다. 어차피 촬영일정을 새로잡으니 마음에 안드는 것들도 새로 찍기로 했다. 배우들의 협조를 얻고서 우리는 5씬 정도를 추가촬영하는 날에 찍기로 했다.


"형은 기억이 없어......"

촬영이 모두 끝난 후에 들은 얘기인데...... 3일차촬영에 내가 기절한 그날, 형은 여배우를 집에 데려다주러 그 피곤한 몸을 이끌고 운전을 했는데 배우를 데려다주고 집에 온 기억이 끊겼다고 한다. 듣기만해도 위험천만한 상황이었다.

"저도 집에 들어가는 기억이 없는데 집이더라고요."

물론, 나 또한 비슷했다. 정말 위험천말한 날이었지만 감사하다. 그 누구도 다친사람은 없었기때문이다. 그거 하나만이라도 너무나 정말 감사한 일이었다. 예전에 뭐 단편영화를 찍을 때 였다. 새벽까지 미뤄진 촬영으로 다들 피곤했었는데 그 장소가 언덕이 가파른길이었다. 나는 배우라서 끝나고 먼저 내려왔는데 나중에 그 단편영화의 감독과 통화를 했더니 감독이 끌고오던 차로 내려가던 스탭을 박았다는 얘기였다. 그 스탭은 병원에 갔고 한동안 치료를 해야해서 감독이 치료비를 보상하고 하여간 난리가 났었다는 그 얘기를 듣고 이 열정이라는 뭉친 현장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새삼 느꼈었다. 내가 그런 위험천만한 상황을 만들 수도 있었겠구나 하는 반성을 하며 만약, 또 한번의 영화제작을 한다면 절대 빡빡한 스케줄은 짜지않겠다, 그럴바에는 돈을 더 모아놓고 시작하겠다고 결심을 다시 한번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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