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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쩜사오 Dec 20. 2020

Desire is so sweet

넷플릭스 <스위트홈>리뷰

 인간의 본성에 대한 탐구는 고대부터 시작되었다. 

대표적인 동양의 탐구가 중국의 사상가 공자와 맹자인데, 그들은 인간의 본성에 대해 '성선설','성악설'을 내세웠다. 그 내용은 '인간은 지배가 필요한 존재이기에 국가가 필요하다', 혹은 '인간은 각자 선한 면을 갖고 있기에 국가는 백성을 기반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그러한 사상들로 우리는 지금의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 토론하기도 한다. 


 인간이 선할까, 악할까에 대한 토론 속에 아니다 인간은 본디 백지이다. 환경에 따라 인간의 성향이 달라진다는 '백지설'도 등장했다. 인간의 이러한 본성은 그럼 어디에서 비롯되는 걸까?


 인간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의식주...... 이것이 우리의 삶에 꼭 필요한 것이라고 우리는 교과서를 통해 배워왔다. 옷과 먹을것, 그리고 쉴 곳. 가장 기본적인 인간의 욕구들이다. 이러한 욕구들은 순수한 어린아이부터 100세노인까지도 모두 느끼는 것이다. 어쩌면 가장 평범하면서도 평등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것들 중 하나가 삐끗할때 우리는 성격에 따라 충동적으로 행동하기도 오히려 차분하게 행동하며 대처한다.  모든 인간들의 성격을 결정짓는 것도 인간 모두가 갖고 있는 욕구에 대한 갈망의 크기차이에 따라 정해지는 걸까?




<스위트홈>의 '괴물'들은 자신이 가장 강하게 품고있는 욕구에 따라 모습이 정해진다. 가슴 깊은곳에 쌓였던 분노, 혹은 자신에 대한 비난, 죄책감등등 각자의 모습은 자신이 결국 결정하는 것이다. 주인공인 차현수는 전학생에게 베푼 자신의 선의가 학교폭력으로 돌아왔다. '그저 날씨가 맑다'는 이유로 괴롭힘을 넘어 현수에게 '자살시도'를 하게끔하는 극한의 상황까지 밀어붙였다. 현수는 가족에게 마저 마음두지 못하고 '자살'할 날만을 기다리던 아이였다. 그에게 있어 '욕구'란 죽고싶다가 아닌 오히려 살고싶다로 강하게 표출된다. 다른 괴물들이 폭력,분노등 다른이에게 표출하려했다면 그는 자신에 대한 죄책감이 심하면서 아이러니하게 살고 싶어했다. 어쩌면 그의 '괴물화'가 특별할 수 있었던건 그의 욕망이 '살고싶다'여서 일지도 모르겠다.


최근 MBTI검사가 유행처럼 번졌던 적이 있었다. 너 ENTJ야? 아니면 뭐야? MBTI를 통해 그 사람을 파악해보려 하는 것, 다른 이는 어떤사람일까에 대한 궁금증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실상 MBTI 또한 본인이 생각하는 나의 성격과 맞지 않는 경우 "아 이거 안맞네..."라고 말을 한다. 남이보는 내가 아닌 사람들이 많다. 실제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성격을 100퍼센트 드러내지 않는다. 좀 더 많은 자신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있고 그렇지않고 꽁꽁 숨기는 사람들이 있다. 다 다른이유로 말이다......


<스위트홈>의 사람들도 모두 각자 다른 성격을 띄고 있다. 직설적인 사람, 겉은 멀쩡한데 뒤에서는 딴짓하는 사람, 원초적인 사람, 이성적인 사람, 저돌적인 사람, 감성적인 사람, 순수한 사람 등. 모두가 다른 개성을 갖고 있다. 그들에게 MBTI검사를 하면 정확하게 나올까? 그들의 욕망에 의해 변화된 '괴물'의 모습이 MBTI를 통한 성격과 맞는 결과의 모습일까?


 작품 속 현수가 만난 특수감염형태인 괴물은 이렇게 말한다. 

"괴물과 인간은 공존할 수 없다. 결국 사람들은 괴물을 죽일것이다."


 인간은 보여지는 대로 믿는 경향이 있다. 사물의 특성을 외향적인 이미지로 첫인상을 판단하는 것이 생물 중 가장 강할 것이다. 보편적인 인간의 모습과 다른 괴물의 모습은 두려운 존재일 뿐, 그들이 왜 그렇게 변화되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괴물 이전의 어떤 삶을 살았던 인간인가에 대한 물음보다 지금 나를 위협하는 지가 중요하다. 항상 상대적이기에 어쩌면 괴물들도 인간을 두려워할지도 모른다. 사람들의 두려움과 공포가 드러나자 현수도 그들과 떨어져야겠다는 결심을 한다. 만약, 기생하는게 특기인 괴물이 현수의 사람을 공격하지 않았다면 현수도 그를 자연스럽게 따라나섰을지도 모른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게 인간이라는 말이 있다. 사람이 추악해지면 그 어떤 존재보다도 무섭고 징그럽다. 괴물의 겉모습이 그러하듯 추악한 인간의 속은 괴물이 되어있을 것이다.  우리는 <스위트홈>을 통해 힘들고 괴로운 시간을 버티는 것을 포기하고 욕망을 선택한 자들이 괴물이 되는 것을 확인했다. 인생의 고난을 이겨내는 인간은 차현수같은 하이클래스괴물이 되지만 고통을 참지 못하고 유혹에 넘어간 사람들은 그저그런 괴물이 된다. 괴물도 계급이 나눠진다. 


괴물이 득실거리는 세상에서 계급이 나뉜다면 차현수처럼 하이클래스로 올라가야하지않을까? 그러면 우리는 욕망을 어떤 쪽으로 분출해야 하는가? 남에 대한 분노, 비난, 폭력. 그런 욕망을 품을 수록 그저그런 계급의 엑스트라로 살아간다. 오히려 주인공은 자신에 대한 질책, 죄책감, 그리고 생존에 대한 순수한 욕구가 강하다. 괴물사회의 원천인 욕망은 오히려 순수할수록 강한괴물이 된다. 



지금 우리는 코로나19라는 바이러스와 싸우는 세상에 살고 있다. <스위트홈> 처럼 우리도 또한 제한된 동선에서 각자 우리 스스로를 자제시키며 살고 있다. 나 하고 싶은데로 살던 사람들이 장기간 그렇게 못살다보니까 다양한 방법으로 제한된 현실을 일탈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그 안에서도 묵묵히 버티며 언젠가는 올거라는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각자가 품고 있는 욕망.욕구가 <스위트홈>처럼 어느순간 터질지 모른다. 지금 우리가 품고 있는 그것이 나의 괴물화의 모습을 결정할 것이다. 보다 순수한 욕망을 갖자. 그러면 괴물화에도 하이클래스로 올라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욕구가 우리의 달콤함의 정도를 결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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