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독립영화 -1년간의 제작노트

"재밌는데?"
시나리오초고를 완성하고 은총형에게 들은 첫 마디였다.
남자와 여자의 연애에 다른 심리를 남자입장에서 풀어가는 이야기. 그리고 남자주인공이 2명.
형과 내가 연기까지 할 수 있는 좋은 구성이었다.
"정말 괜찮아요?"
"사실 그렇게까지 기대는 안했었는데 진짜 재밌어 필선아!"
칭찬인가? 뭐지? 하는 생각을 1초정도하고 다시 형을 봤다.
형 성격상 싫은걸 하고 싶어하지는 않는다. 내가 봐온 형의 성격이다.
만약 싫으면 얼굴에 드러난다.
우리는 영화 '포화속으로'를 통해 만났었다.
(영화 '포화속으로' 촬영 당시)
극심한 한파 속에 얇은 개량한복을 입고 고무신을 신고 뛰며 촬영했던 정말 힘들었던 영화.
힘들었기에 더 사람이 오래 남았던 것 같다.
8년을 봐온 형이기에 표정만 봐도 대충 기분을 알 수 있었다.
"그러면 제 걸로 하는걸로?"
그렇게 우리는 영화를 만들기로 했다.
그리고 다시 고민에 휩싸였다. 연출공부도 따로 하지 않은 우리가 영화를 만든다는게 맞는걸까?
결국, 감독을 찾기로 했다.
그 길로 나는 전에 인연이 닿은 감독들에게 이메일로 전화로 대본을 보내고 알려줬고
형 또한 형의 인맥안에서 감독을 수소문했다.
우리가 만들 영화의 감독이 되어달라고.
쉽게 생각했다.
아니 우리가 재밌으니 당연히 감독들도 어느정도는 긍정적으로 바라봐줄 것 이라 여겼던것 같다.
대다수의 감독들의 답은 같았다.
"힘들것같아."
이유는 개개인마다 다르지만 대본이 마음에 안들어서, 개인신상의 이유로, 다른작업이 있어서 등등 말이다.
한 감독은 '플롯'이 없다고 혹평했다.
'플롯'
나는 집 주변 도서관과 서점에 처박혀 그 '플롯'에 대해 한참 공부했다.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
결국, 연출자가 영화로 만들만한 제대로 된 구성이 없다는 얘기였다.
상황 속에 인물들이 사건을 겪고 이야기를 풀어가야하는데
인물과 사건이 따로따로 라는 것이다.
명확한 반전도 없고.
시나리오를 엎어야 하나?
다른 사람도 아니고 연출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의 의견이니 그냥 넘어갈 수 가 없었다.
사실, 시간이 지나서 하는 얘기지만 당시에는 배우의 눈에는 어떻게 그려질지 보이는 데 연출자는 보는 눈이 다르구나 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써서 모르나보다. 그렇게 억지로 뭉개고 앞으로 나아갔다.
영화가 나오고 우리가 편집이 된 영화를 본 후에 그들이 말했던 그 '문제점'들에 대해서 알 수 있었다.
만약,
지금 아는 그 객관적인 시선을 당시에 알았다면 우리가 영화를 만들 수 있었을까?
생각이 많은 것도 답이 없다.
형의 지인 중에 진경형이 있었다. 다큐를 준비중이라 들었지만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종로의 한 커피숍에서 만났다. 시나리오를 보고 나온 형은 우리에게 '알았다'고 했다.
잠시 정적이 있었다.
나는 어정쩡한 건 싫어한다. 확실한 게 좋다.
확인이 필요했다.
"형, 저희랑 하겠다는 거에요?"
"응, 같이 하자."
답답하고 막연했던 현실에서 빛이 보였다.
연출자다. 연출할 사람을 구했다.
은총형과 나는 기뻐서 날뛰고 싶었다. 단, 조건이 있었다.
"내가 4월달에 상업영화에 조연출로 들어갈 수 도 있는데 그거 결과가 1월말에 나오거든. 그래서 나는 정말 너네 영화 하고 싶은데 조금만 기다려주면 안될까?"
제작비의 일부까지 투자하겠다는 진경형의 얘기를 들으며
우리는 괜찮다고 했다.
까짓것 기다리지뭐. 어차피 2주정도 뒤에 나오는 결과였다.
일말의 불안감은 지울 수 없었지만 일단 믿기로했다.
의지를 보인 감독은 처음이었으니까.
그렇게 2주가 지나고.......
세상에 쉬운 일은 없지
형과 나는 다시 둘이 커피숍에 앉아있었다.
결국 이렇구나. 쉽지 않네. 와 쉽지 않아.
결정이 필요했다.
하던가.
안하던가.
"내가 연출할께 그럼!"
은총형이 정적을 깨고 내게 말했다. 형이 그 얘기를 했을 때 사실 나도 연출을 하겠다고 할까 생각했다.
내가 썼으니까. 가장 이 이야기를 잘 얘기할 수 있으니까.
그치만 우리는 많이 지쳐있었고 결정은 빠르게 하는게 우리에게 좋았다.
서로 좀 더 잘하는 걸 하기로 했다.
형은 벌리고 난 메꾸고.
그렇게 형은 연출, 나는 제작PD로 서로의 역할을 정했다.
시나리오는 연출을 할 형 손에서 수정을 좀 하기로 하고 나도 고집을 꺾고 형을 믿기로 했다.
역할이 정해졌다.
배우는 각자 잘하는 연기, 그리고 보여지는 캐릭터가 다 다르다.
그 다름에서 서로의 개성을 볼 수 있고 다르기때문에 서로 다른 역할을 맡아서 한 편의 영화를 만들 수 있다.
그렇게 다른 우리 둘이
그렇게 다른 두 배우가
영화를 만들기로 한 그 날이
2017년 1월 말 이었다.
종로의 한 커피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