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간 그저 잠을 푹 자고 싶었을 뿐인데
이틀 정도는 아무 기억이 없었으니 약간은 성공한건가?
안 죽고 다시 일어났으니 실패한건가?
어쩐지 죽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약을 끊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고, 그 덕에 정말 많이 줄일 수 있었지만
내 상태는 그에 비례하여 급격히 나빠졌다.
이전 병원에서는 환자 스스로 본인의 상태를 파악하여 알아서 약을 먹도록 지시했다.
나는 내 상태를 너무 간과했다.
'간헐적 폭발성 장애'
내 상태를 검색해보니 이런 단어가 나왔다.
아 이제 장애까지 하나 추가되는 건가,
그러나 다니던 병원에서는 내 상황을 설명해줘도 그럴 수도 있죠-로 넘어갔다.
이게 아닌데.
그래서 병원을 바꿔보기로 했다.
다시 내 이야기를 쏟아놓고 각종 검사를 받는 것이 쉬운 결정은 아니었지만
다른 의사는 어떻게 이야기하는지 듣고 싶었다.
진짜 저 병이 내 것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극도의 우울증에서 나타날 수 있는 하나의 현상입니다."
그동안 감정을 굉장히 억압하고 살아왔을 것으로 추정되며,
어느 순간 그 한계선을 넘어 더 이상 누를 수 없게 되자 감정이 '폭발'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다행히 '간헐적 폭발성 장애'는 아니었다.
"입원을 하는 게 좋겠습니다."
이건 또 뭐람.
약물자해는 곧 입원인가- 난 죽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고요.
입원 의사는 전혀 없음을 밝히는 나에게
1. 정량의 약을 정해진 시간에 먹을 것
2. 약을 한번에 다 털어먹지 않을 것
3. 자살과 관련한 어떠한 시도도 하지 않을 것을 의사는 몇 번이나 약속받은 뒤 약을 처방해 주었다.
약을 마음대로 중단했다가 다시 먹는 것이니 약효가 제대로 나올 때까지는 최소 4~6주는 걸린다고 했다.
아, 이 지옥같은 시간을 또 견뎌야 하는구나
좌절과 절망과 원망과 분노와 슬픔과 무기력과 그 모든 못된 것들과 또 지지고 볶고...
아니 선생님, 시키는 대로 약은 제대로 먹을 테니 그거 말고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건 없나요-
(제발 있다고 해주세요)
"없습니다."
네?
"지금 환자분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어요. 나아지려고 시도하는 그 어떤 것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