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위로
그림자의 위로
그림자는 원래부터 그림자였다.
그림자는 어디에나 있었고 또한 어디에도 없었다.
그림자의 이름은 없었다. 그저 그림자였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그림자였지만
그림자는 자신만의 자존감을 갖고 여기저기 여행 다니며 행복하게 살아갔다.
해질녘을 걷는 사람들과 함께 걷기도 했고
책 틈에 숨어서 낮잠을 자기도 했다.
가끔 뜬금없는 곳에서 튀어나와 고양이를 놀래 주기도 했고
바닷속에 들어가 거북이를 타고 헤엄치기도 했다.
모든 세상엔 그림자가 있었고
세상 어느 곳이나 그림자의 것이었다.
그림자는 세상이 어둠을 맞이할 때
가장 크게 어둠과 빛을 지배하며 온 세상 모든 것들을 자신으로 물들였다.
하지만 그림자는 겸손했고
자신으로 물든 세상 모든 이들이 후회나 절망보다는
안락과 위로를 얻길 바라며 그들을 위로했다.
세상 많은 이들은 붉게 물드는 하늘 밑에서
두려움보다는 아름다움을 느끼곤 했다.
그건 그림자가 그들 하나하나를 모두 안아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신이 어둠으로 물들거나 환한 빛에 발가벗겨 졌을 때도
그림자는 당신을 안아줄 것이다.
그림자는 항상 당신과 함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