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딸,
애쓰고 있는 거 엄마도 다 알아.”
회사를 다니면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정말 보통 일이 아니다.
부모 모두가 매달려도
힘에 부치는 상황인데
혼자서 평일을 감당하는 일은
생각보다 더 버겁다.
근처에 살고 있는
친정 엄마가 계셔서
천만다행이지만,
엄마께 웬 불효인가 싶을 만큼
죄송한 마음이 들 때도 많다.
그럼에도
엄마 옆에 서면 나는
여전히 철없는 딸이 된다.
새벽 4시 반,
알람에 맞춰 하루를 시작하던 날들.
출근 전,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나에게
엄마는 항상 잔소리였다.
그렇게 책 보고 글 쓴다고
당장 돈이 되는 것도 아닌데
제발 적당히 좀 하라고.
그 말들이
듣기 싫게만 느껴졌다.
딸이 조금 더
열심히 살아보겠다는 건데,
엄마는 왜 그걸 몰라줄까.
어느덧 다시 겨울이 되었다.
괜시리 쓸쓸했던 어느 밤,
문득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최근에 읽었던 책 이야기를 꺼내며
사실 오늘은 조금 외로운 것 같다고 말했다.
두 시간 남짓 이어진 엄마와의 통화.
마음 한편에 남아 있던 헛헛함의 불씨를
사르르 잠재웠다.
그렇다.
엄마는
이미 그 길을 걸어본 사람이었다.
혼자서 아이 둘을 키우며
그 시간을 지나온 사람.
담담하게 건네는 말들이
오히려 더 깊게 마음에 스며들었다.
“괜찮아.
잘 될 거야.
이미 충분히 잘하고 있어.”
이전에 몰아치던 잔소리는
나를 다그치던 채찍이 아니라,
사실은 나를
진정으로 생각하시는 마음이었다.
긴 마라톤과 같은 여정에
초반부터 너무 전력질주 하지 않았으면
하는 엄마의 사랑.
그리고 마지막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 딸,
애쓰고 있는 거 엄마도 다 알아.
이제는 너 자신을 위해 살아.
너 자신만을 생각해.”
그 말들은
나를 다독이는 위로이면서,
동시에 나를 향한 질문이기도 했다.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 사람인가.
그리고 나는,
그 답을 스스로 선택하기로 했다.
그날 이후로
나는 더 이상
나를 소모시키는 방식으로
살아가지 않기로 했다.
누군가의 기준이 아니라,
나의 기준으로
나를 지켜내기로 했다.
완벽한 하루가 아니라,
흔들리더라도
나를 잃지 않는 하루를
살기로 했다.
기록은
그 선택을 가능하게 해 준
나만의 방식이었다.
흘러가 버릴 수 있는 하루를 붙잡고,
무너질 것 같은 순간에도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워주던 것.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계속
나를 기록하며 살아갈 것이다.
엄마의 말은
나를 다시 살아가게 했고,
그 겨울,
나는 나를 다시 선택했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오늘의 나를 기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