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3개월의 시간
법적인 절차를 밟는 일은
의외로 간단했다.
이렇게까지 죽이 잘 맞을 수 있나 싶을 만큼
협의이혼 과정도 깔끔하게 진행되었다.
이후 이어진
3개월의 숙려기간.
법적으로는 기다림의 시간이었지만,
나에게는
하루를 버텨내는 연습이 필요했던 계절이었다.
아이와 단둘이
새로운 삶이라는 전쟁터로 나가기 전,
혹한기 훈련을 나가는 심정이랄까.
그러나
비장해진 나를 무색하게 만든 건
변함없는 일상이었다.
이혼이라는 결정을 내리면
모든 것이 달라질 줄 알았지만,
내 하루는 여전히
제 속도로 흘러가고 있었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 하루를
잘 버텨내는 일이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나면
나는 도서관으로 향했다.
토익 시험을 준비하고,
온라인 셀러 강의를 등록하며
전쟁터에 나가기 전
총알을 장전하듯
하루를 채웠다.
지금 돌아보면
분명 제정신은 아니었을 것이다.
문제를 풀고,
강의를 듣고,
밤새 연습을 하며
하루를 버텼다.
그 시간만큼은
잠시 숨을 돌릴 수 있었다.
곧이어
영어 과외까지 시작한 나에게
상담 선생님은
진심 어린 걱정과
따끔한 충고를 함께 건넸다.
여러 가지 일을 시작하며
집중해 시간을 보내는 건 좋지만,
그 감정을 직접 마주하지 않는 방식은
어쩌면
도피일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충분히 슬퍼하고,
충분히 마주해야 한다고.
그 말은
나를 잠시 멈춰 서게 했다.
속도를 늦추고,
그동안 애써 외면해 왔던
진짜 감정을
조심스럽게 들여다보게 만들었다.
얼마 전 읽게 된
데일 카네기의 『자기관리론』에서
이런 문장을 다시 만났다.
“절망의 늪에 빠지지 않으려면
행동에 몰두하라.
바쁘게 움직이는 것,
걱정을 없애는 가장 값싼 처방임과 동시에
가장 효험 있는 처방이다.”
그 문장을 읽으며
나는 한참을 멈춰 서 있었다.
비극처럼 느껴졌던 시간들 속에서
하루를 어떻게든 살아보려
발버둥 치던 날들.
절망의 늪으로
완전히 빠져들지 않기 위해
붙잡을 수 있는 모든 것을
붙잡으며 살아낸
용기였을지도 모른다.
그 방식이
완벽하지는 않았을지라도,
적어도 나는
그 시간 안에서
하루를 견디고 있었다.
휘몰아치던 그 겨울 안에서,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버티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