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디찬 겨울의 시작
그와의 관계가 무너진 것은
신뢰 하나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결혼 초부터 이어진 금전적인 문제들,
말과 행동이 반복해서 어긋나는 순간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하지만 더 힘들었던 건
나를 속였다는 사실 그 자체가 아니라,
그 모든 일들 앞에서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조차
끝내 전해지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차라리 변명이라도 해서
나를 헤아려주었더라면,
누가 보아도 아닌
사탕발린 말로라도
나를 위로하려 했더라면
조금은 달랐을까.
나는 어떻게든
이 관계를 회복하고 싶었다.
세네 시간마다 깨는 아이를 돌보고,
다시 출근까지 해야 했던 시기에도.
아이를 재우고
이야기를 좀 해보자며
식탁에 앉으면,
그는 안방의 아이 캠 화면을 켜둔 채
빨리 말하라고 재촉하곤 했다.
그렇게
나와 그의 가슴 속 깊은 감정이
맞닿는 순간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둘만의 대화는
점점 불가능해졌다.
내가 무엇을 물어보아도
그는 말을 잇지 않았고,
일상의 사소한 이야기조차
쉽지 않았다.
큰 사건이 생겨
문제를 해결해야 할 때조차
그는 입을 닫았다.
돌아오는 건
길어진 한숨뿐이었다.
그래도 나는
손을 놓지 않으려 했다.
부부 상담을 제안했고,
일곱 차례 정도 함께 다녀왔다.
부부의 언어와
대화 방식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 이후의 시간들을
함께 이어가기는 쉽지 않았다.
변화를 이야기하는 쪽은 늘 나였고,
그는 점점 대화의 자리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그렇게
어떻게든 이어가 보려 했던
결혼 생활은
내가 알지 못하는 지점에서
이미 많이 멀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날 밤이 왔다.
대화는 길지 않았다.
설득도,
붙잡음도 없었다.
어쩌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계속 말을 건네고 있었던 건
바로 나였다.
하지만
그의 마지막 한 마디를 듣는 순간,
더 이상
이 관계를 이어갈 수 없다는 걸
알아버렸다.
‘우리’를 이야기하는 나에게
그는 끝내
자기 자신만을 이야기했다.
그런 그의 앞에서
숨이 멎은 듯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오래 붙잡고 있던 것을
마침내 내려놓는 순간처럼.
이혼은
어느 날 갑자기
내려진 결정이 아니었다.
그날 밤은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끝이
조용히 도착한 순간이었다.
가을의 잎이
다 떨어지기도 전에,
거짓말처럼 나린 첫 눈과 함께
차디찬 겨울은
그렇게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