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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수아 Jan 24. 2023

역시 가족!

친정에 다녀와 집에서 쉬고 있다. 모두 잘 끝났다. 내가 입덧할 때 먹고 싶어 엄마가 만들어준 LA갈비구이를 이제는 내가 만들어 치매 걸린 엄마께 구워드렸다. 전은 엄마를 위해 안 매운 버섯 전을 따로 만들었다. 맛있게 드시라고 잡채는 바로 만들어 들고 갔다. 엄마도 맛있게 잘 드시고, 큰 오빠도 잘 먹으니 기분이 좋았다. 아버지 첫 제자와 엄마의 만남은 감사하게도 엄마가 오빠를 기억함으로써 이야기보따리가 펼쳐졌다.


"선생님께서 저를 일부러 집에 다녀오라고 심부름을 시키시면 사모님이 밥상을 차려 저를 먹이셨지요."


엄마가 오빠를 알아볼 때 울컥했는데, 엄마가 오빠의 옛이야기에 맞아 맞아,라고 맞장구를 치면 내 눈에 눈물이 고였다. 아버지의 첫 제자여서 우리 큰오빠 아기 때도 보았고, 우리 사 남매가 자라는 모습을 다 지켜본 오라버니 시다. 어제 들으니 큰오빠 군대 면회를 가려고 하다 못 가신 이야기까지 들려주셨다. 큰 오빠는 제자 오빠가 월남전에서 돌아오며 받은 흑백 TV를 우리 집에 주셔서, 우리가 그 옛날에  TV가 있는 집이 되었다는 말을 이어갔다. 아버지와 엄마의 큰아들 역할을 해왔던 오빠이니, 우리 가족 모두에게는 매우 각별한 분이시다.


지금 76세인 오빠가, 결혼할 아가씨를 데리고 우리 집에 왔던 걸 난 떠올리며 말하고, 내 남편은 장모님을 모시고 나와 함께 오빠의 딸 결혼식에 갔던 이야기를 꺼냈다. 그리고 어제 처음 들은 건, 시인이며 목사님인 오빠가 안산에 사랑교회를 개척하고 계실 때, 완공도 안 된 어느 날 갑자기 아버지가 그곳에 나타나셨다고 했다. 지금은 상록 문학회를 이끄시고, 대천 근처에 문학관도 운영하시며 활발히 활동하시고 계시지만, 오빠는 우리 아버지 장례식 참석 이후 위암 판정을 받아 대천 근처에서 요양생활을 오랫동안 하셨다. 그러니 오빠가 우리 엄마를 못 뵌 지가 10여 년이 지났으니, 당연히 오빠를 기억 못 하실 줄 알았던 것이다.


이름을 말하며 물어도 기억을 못 하셨던 엄마가, 오빠를 보자마자 알아보셨다. 마치 아버지의 영혼이 우리와 함께하시며 도와주시는 것 같았다. 엄마의 사랑송은 오빠에게도 이어졌다. 오빠 손을 꼭 잡고 활짝 웃으시며 부르는 엄마의 사랑송!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엄마의 선창에 우리 모두는 손뼉을 치며 사랑송을 불렀다. 오빠와 헤어질 때도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하셨고,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 까르르 웃으신 다음에는 오빠를 보고 "이런 게 사는 재미지 뭐!"라고 하셔서, 우리 모두 손뼉을 쳤다.


​엄마 머릿속에는 천사가 살고 있나 보다. 엄마의 삶을 꼭 닮은 천사가 예쁘고 고운 말만 하시도록 도와주고 있나 보다. 어제도 내 얼굴을 쓰다듬으시며 너무 예쁘다고 하시다, 거기 모인 사람들에게 너무 예쁘지 않냐고 확답까지 받으셨다. 엄마 사랑을 넘치게 받아 내가 점점 더 예뻐질 것 같다고 내가 너스레를 떨었다


집에 돌아오며 우리 가족 모두 너무나 고마웠다. 우리 엄마를 진심으로 사랑해 주어 가슴 깊이 고마웠다. 큰딸은 할머니 꽃 양말을 편지와 함께 드리고, 발에 신겨드리니 엄마가 연신 너무나 예쁘다고 좋아하셨다. 모두에게 고맙다고 했다. 특히 음식 만드는 걸 도와준 남편에게 고맙다고 상장을 만들어줘야겠다고 말했다. 올 설 명절은 특별히 감사했고, 가족의 소중함을 더욱 깊이 깨달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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