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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수아 Jan 22. 2023

내가 LA갈비구이를 만든 이유

난 시댁이 없다. 6년 전 어머님이 돌아가시자마자 각자 알아서 명절과 제사를 지내자는 형님의 선포로, 갑자기 시댁이 사라져 버렸다. 황당하고 섭섭하고, 하늘나라 어머님께 죄송한 마음이 들었지만, 처음으로 우리 부부 둘이서 음식을 준비하면서 명절을  그렇게 편하게 맞이할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내가 결혼하면서부터 시어머님을 모시고 살았으니 형님이 당연히 우리 집으로 명절 음식 준비를 하러 왔었다. 하지만 몇 년 후에 한' 카리스마'하시는 어머님이 명절을 큰며느리에게 맡기면서 어머님과 내가 형님 집으로 가서 함께 음식을 만들어왔다. 모든 전은 내가 다 부쳤고, 만두 300개를 함께 만들고, 형님이 시키시는 것들을 하고 나면,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팠었다. 형님 집이 우리 이웃 동네여서 저녁에 난 우리 집으로 왔다가, 명절 당일에 가족 모두 형님 댁으로 가곤 했다. 몸은 피곤했어도 어머님과 형님과 수다를 떨며 재미있게 음식을 만들었기 때문에, 시댁이 없어진 이후에는 굉장히, 굉장히 낯설었다.


사람은 다 적응하기 마련이니, 우리 부부는 상황을 받아들이고 좋은 마음으로 명절 준비를 한다. 올 설 명절은 갈비찜 대신에 LA갈비구이로 준비했다. 그 이유는 내가 아이를 임신했을 때, 엄마가 예전에 만들어 주셨던 'LA 갈비구이'가 학교 수업 중 눈에 아른거려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먹고 싶다고 말했던 음식이기 때문이다. 시집살이하는 새댁이 시어머님께 말할 수는 없고, 학교 근처에 있는 친정에 가서 맛나게 갈비구이를 먹고 버스를 타고 시어머님이 계신 나의 새집으로 향했던 내 모습이 보인다. 엄마가 치매 환자가 되니 그 음식이 특별히 내게 다가왔다. 그래서 내가 만든 갈비구이와 몇 가지 반찬을 싸가지고 가서 엄마와 엄마를 모시고 있는 큰 오빠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고 싶다.


새해를 맞이했다. 아버지가 대학생이셨을 때 결혼을 해서, 시골에 계신 시어머님과 한 방을 쓰며 아기와 함께 남편을 기다리던 엄마는, 아버지가 안성으로 발령이 나자마자 올라오셨다. 그 첫아들이 엄마 집에 들어와 치매 엄마를 모시고 있고, 아버지가 안성 고삼초에서 만난 첫 제자가, 엄마를 만나러 명절 연휴에 오신다고 했다. 아마 하늘나라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영혼도 그 자리에 함께하실 것이다.


중풍 걸려 누워있던 당신을 4년이나 묵묵히 돌봐 준 아내와 평생 스승님을 찾아왔던 제자! '아버지 죽으면 니가 이 집안의 운전수'이니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라고 학생이던 장남에게 당부하셨던 아버지와 오빠 모습이 떠오른다. 그 세 사람을 보며 아버지는 그러실 것 같다.


"고마운 나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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