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걷다가 걸으니 골반뼈에 살짝 통증이 오기도 했다. 내가 걷기를 멈춘 지가 벌써 반년이다. 다시 시작한 이유는 엄마 때문이다. 오랜 세월 저질 체력으로 살면서 몸이 아프면 아픈 대로 살아왔다. 모임에도 자주 빠졌고, 집안일을 못하고 누워있을 때도 종종 있었다. 그러면 남편이나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나를 도와주었다. 아들까지도 아빠를 닮아서 설거지를 매우 쉽게 생각하고 스스로 한다. 가족 모두 엄마의 몸 상태를 이해하고 적극 도와주니 그냥저냥 살아올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젠 목표가 생겼다. 치매에 걸린 엄마를 조금이라도 보살피고 살아야겠다는 목표!
혼자 엄마를 모시고 사는 오빠를 부분적으로 도와주고, 몇 시간 후면 다녀온 사실도 잊으시지만 매일 전화드릴 때면, "우리 큰따님? 전화해 줘서 고마워, 목소리만 들어도 좋네, 밥은 먹었니?"에 이어 "우리 큰따님, 보고 싶네."로 이어지는 엄마를 위해 난 힘을 내기로 결심했다.
아버지가 중풍으로 누워계실 때 엄마는 새벽에 일어나 동네 가까운 호수를 몇 바퀴 돌고 오셨다. 규칙적으로 식사를 하시며 아버지를 꿋꿋하게 지키셨다. 엄마는 그런 분이셨다. 두 오빠가 아버지 목욕시키는 걸 도와주는 것 이외에는 혼자 모든 걸 책임지셨다. 그리고 아버지가 돌아가시자,누워있더라도 아버지가 살아계시면 좋겠다고 하셨다.
내 목표는 엄마와 오빠의 반찬을 조금 싸가지고 가서 매주 주말에 엄마랑 이야기하고 놀다 오는 것이다. 엄마는 했던 말을 계속 반복할 것이고, 난 그때마다 처음 듣는 것처럼 들을 것이다. 엄마가 "이게 사는 재미지 뭐."라고 하시면 "맞아, 맞아."라고 웃을 것이다. 엄마는 어제도 나를 그윽히 바라보시면서 연신 예쁘다고 하셨다. 빨간색을 유독 좋아하시는 엄마를 위해 칠한 빨간 매니큐어 바른 손톱을 만지시며 어쩜 이렇게 예쁘게 칠했냐고 감탄하셨다. 손과 팔을 만지시면서는 너무 부드럽고 곱다고 하셨다. 그리고 늘 그렇듯 당신 손은 너무 늙어 예쁘지 않다고 하셨다. 피부가 워낙 희고 고운 엄마는 아직도 나보다 고우시다. 난 엄마는 88세가 아니고 78세라고 하니 엄마가 까르르 웃으셨다.
지난번에는 나라에서 준 '만다라 그림 색칠 책자'에 관심이 없으셔서 나 혼자 색을 하나 칠하고 왔는데, 이번에는 엄마가 나와 같이 색을 칠하셨다. 얼마나 열심히 하시던지, 늘 열심히 사셨던 엄마 모습이 보였다. 재미를 느끼셨는지 어제는 세 장이나 완성했다. 완성했을 때마다 나는 오빠와 남편에게 손뼉을 치라고 했다. 엄마는 매우 만족한 표정으로 웃으셨다
이름은 엄마가 쓰셨고, 날짜는 내가 썼다. 엄마는 글씨를 늘 정성껏 쓰셨는데 아직도 그랬다.
전날에 산 꼬막이 매우 싱싱하여 꼬막을 무쳐서 가져갔다. 엄마와 오빠가 맛있게 먹으니 기분이 좋았다. 김장김치를 썰어서 담고, 남편이 곱창김도 구워서 반찬통에 담아서 갔다. 엄마는 매운 것을 전혀 안 드시는데, 김치는 오빠를 위한 것이었다. 요양보호사님이 엄마 반찬은 매일 정성껏 만들어주셔서 감사한데, 오빠 반찬이 늘 신경이 쓰인다. 금요일이면 뭘 준비할까 늘 고민을 하는데. 이번 주에 당첨된 음식은 '누룽지 닭백숙'이었다. 아버지 살아계셨던 오래전에 가족 모두 다녀왔던 용인의 유명 닭백숙집이 우리 집 가까운 곳에 체인점을 내어 그곳에 예약을 해놓고 가는 길에 찾으러 갔다. 오빠에게는 아무것도 준비하지 말라고 전화를 했다. 엄마가 제일 좋아하시는 딸기도 사가지고 갔다.
오빠 덕분에 엄마가 건강하다. 할머니들 미스코리아 대회 나가면 우리 엄마가 1등을 할 거라고 내가 말할 정도로 엄마는 너무나 고우시다. 큰아들이 중심이 되어 삼 남매가 조금씩 힘을 보태는 이 모습에 하늘나라에 계신 아버지가 고맙다 하실 것 같다. 스물아홉 대학생과 시골 아가씨가 만나 결혼을 해 사 남매를 낳았다. 그리고 그 사 남매가 아홉 아이들을 낳았다. 엄마는 갈 때마다 스물두 살에 결혼해서 스물세 살에 우리 장남을 낳았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면 나는 형제들의 이름과 나이를 묻는다. 아직 엄마는 그걸 정확히 기억하고 계시고, 며느리와 사위 이름은 힌트를 주어야 기억해 내시는 정도이다. 절친의 치매 어머니는 평생 자기를 모시고 살던 며느리를 보고, 당신 딸에게 "저 아줌마는 착한 아줌마야."라고 하셨단다. 시간이 많이 흐른 어느 날, 엄마가 우리 큰 오빠를 보고,"저 아저씨는 참 착한 아저씨야."라고 할 날을 상상하니 마음이 아파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