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교대에 가서 최선을 다해 공부하지 않았다. 가슴속 뜨거운 열정(불문과)을 숨기고 효녀의 길을 택해 입학한 대학이었기 때문이다. 대학 입시철이 되면 항상 가슴에서 바람이 불었다. 교대 졸업 후 교사가 되면서 그 가슴앓이는 완전히 사라졌다.
순수하고 맑은 아이들과 하루 종일 지내며, 나는 또 사랑에 빠졌다. 집에 와서도 온통 아이들 생각뿐이었다. 그 첫 제자들이 지금 40대 후반, 나와 띠동갑이다. 몸이 많이 아파서 퇴직하기 전까지 나는 아이들과 함께하며 많이 행복했다. 발령을 받고 세 번째로 만난 아이들 중에 철이라는 남자아이가 있었다. 지금까지 내게 효자 노릇을 하는 고마운 제자인데, 철이는 마음이 참 착한 까불이였다. 제자들도 자식과 같아서 특별히 효자 노릇을 하는 아이들이 있다. 자주 연락하고, 자주 찾아오는 아이들! 그런데 아이들을 가르칠 때는 누가 효자가 될지 모른다.
철이는 결혼을 좀 늦게 했다. 맘씨 고운 예쁜 아가씨와 사귀다가 결혼을 했는데, 결혼 이후 5년이 지나도록 아기가 생기지 않았다. 나는 매일 기도했다. 철이 부부에게 아기 선물을 달라고. 그 후 철이 부부에게는 아기 천사가 찾아왔다. 아기의 돌잔치에 초대를 받아 그 가족을 보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곳에서 보고 싶은 제자들도 많이 만났다. 행사가 끝날 때쯤 제자들과 함께 행사장 입구 쪽으로 나오려는데, 나를 처음 본 철이 어머니께서 내게 다가와 손을 꼭 잡고, 눈물을 흘리시며 말씀하셨다.
"선생님, 제가 선생님을 평생 은인으로 생각하고 삽니다. 엄마 속을 썩이던 말썽꾸러기가 선생님 만나고 갑자기 변했어요. 아직까지도 착한 아들입니다. 제가 선생님 은혜 잊으면 안 된다고 늘 말합니다. 그리고 우리 선생님 같은 분은 방송에 나오셔야 하는데... 제가 언젠가는 방송국에 전화를 할 겁니다."
어머님 말씀을 들은 후, 제자들과 행사장을 나왔다. 주차장에서 제자들을 따라온 제자의 아이 두 명에게 만 원짜리 한 장씩을 줄 때는 내가 마치 할머니가 된 기분이었다. 그리고 몇 달 후에 'MBC 라디오'에서 전화가 왔다. 제자들에 관한 에세이를 SNS에 쓴 것을 보고 연락했다고 했다. MBC '이 사람이 사는 세상'이라는 프로그램이었는데, 내가 사는 수원까지 리포터 아가씨가 내려와서 녹음을 해 갔다. 인터뷰 도중, "선생님, 엄마라고 불러도 되나요?"라고 귓속말을 했던, 엄마 얼굴도 모르던 한 남자아이 이야기를 하다 나는 눈물을 쏟고 말았다. 내가 방송에 나간 것이 그냥 내 인생의 신기한 일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철이 어머니께서 마음과 말로 뿌린 씨앗으로 그 일이 발생했다는 것을.
생각과 말과 글은 살아 움직인다고 한다. 하지만 평소에는 느끼지 못하다가 어떤 일이 눈앞에 나타났을 때 비로소 알게 된다. 우리의 생각과 말과 글이 우리의 삶을 만들고, 어딘가에 뿌려져 때로는 좋은 향기로, 때로는 독을 뿜어낼 수도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