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다중인격자일까?

by 채수아

나를 아는 사람들을 다 모아놓고, 내가 어떤 사람이냐고 묻는다면 굉장히 다양한 답이 나올 것이다. 왜냐하면 내 안에는 다양한 성향의 내가 있고, 상대방에 따라 내 모습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교사 초임 시절의 일이었다. 교대 국어교육과에서 같이 공부했던 한 친구가, 우리 아버지가 교감으로 근무하고 계시는 학교에서 강사로 일하고 있었다. 발령 전 몇 개월의 기간이었다. 한 번은 아버지가 퇴근을 하시더니, 그 친구가 나를 아주 재미있고 웃긴 친구라고 말해서 깜짝 놀랐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그 말씀을 듣고 빙그레 웃기만 했다. 대학 시절 수원에서 전철을 타고 학교를 오고 가며, 또 학교에서의 내 모습을 보고 그 친구는 당연히 나를 그리 판단했을 것이다. 늘 아버지 앞에서 조신하고, 착하고, 예의 바른 딸의 모습을 보였기에 아버지께서 놀라신 것 또한 당연하다. 내가 언제부터 그리 발랄하고 웃긴 아이였는지 기억엔 없지만, 학창 시절의 내 모습은 거의 그랬다. 그 모습이 그대로 교사 생활로 이어져서, 난 웃기고 재미있고 장난기 많은 선생님이었다.


또 하나의 특징은, 매우 여성스럽고 정적이고 꼼꼼한 면이 있으면서도 때로는 굉장히 터프하게 행동한다는 것이다. 지나치게 씩씩하다고 할까? 그래서 대학시절 교외 봉사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여학생들보다는 남학생들과 더 친하게 지낸 편이었다. 초등학생이었을 때는 짓궂게 여자아이들을 괴롭히는 남학생들이 싫어서 멀리했고, 여중과 여고 시절엔 공부하느라 관심 밖이었다가, 대학생이 되어 만난 남학생들을 보며 난 나와 닮은 어떤 동질감을 느꼈던 것 같다. 교사가 되어 월급을 타게 되자, 밥과 술을 사달라고 몇몇이 전화를 하면, 쪼르르 달려 나가 시원한 대화를 나눈 후 계산을 해주곤 했다. 성당 주일학교 교사와 초등 교사를 하느라 바쁜 생활 중에 가끔 있던 일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미소가 지어지는 참 좋은 시절이었다. 그러다가 결혼을 한 이후부터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는 서로 연락이 끊겨서 어디에서 무얼 하고 사는지 전혀 모른다.

어쨌든 나의 터프한 면은 직장 생활에서도 발휘가 되어, 모두 피하고 싶은 어떤 업무가 있을 때, "제가 할게요."라고 손을 번쩍 들어 열심히 일을 추진하다가, 심한 피로가 밀려오면 가끔 내 손이 미워지기도 했다. 내 씩씩함의 절정은 시어머님이었다. 남편이 어머님을 모시고 살고 싶다고, 굳은 얼굴로 집안 이야기, 형수 이야기를 어렵게 꺼냈을 때, 난 듣자마자 씩씩하게 대답했다.


"어머니, 우리가 잘 모시고 살아요. 고생도 많이 하신 분이고, 그렇게 자식과 살고 싶어 하시는데 당연히 그래야죠."


나의 두려움 없는 선택으로 내 삶에는 많은 눈물과 슬픔과 아픔이 있었다. 천사 얼굴로 하늘나라로 떠나신 어머님을 생각하면 그저 감사하고, 좋은 일만 생각나고, 중요한 일을 앞에 두고는 도와달라고 어머님을 먼저 찾게 되니, 결론은 참 잘한 선택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생각할수록 나의 오지랖과 터프함으로 내 인생 전반이 힘겹게 흘러왔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섬세한 나와 투박스러운 나, 꼼꼼한 나와 심한 덜렁이인 나, 큰 소리로 잘 웃기도 하고 눈물도 많은 나, 조신한 느낌의 나와 개구쟁이 같은 나, 내 안의 많은 나가 어우러져 사람을 대하고, 일을 만나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다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내 모습이다. 오늘은 또 어떤 만남을 갖게 될까? 상대방이 느끼는 내 모습이 다 다를지라도, 확실한 건 모두가 나의 진심이라는 것이다. 늘 그렇듯이 오늘 하루도 기대된다. 설렌다.


● 사진 : 네이버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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