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서른여섯에 낳은 우리 막내딸은 수능을 앞둔 고등학생이었을 때도, 밝은 얼굴로 나에게 뽀뽀를 하고 손을 흔들며 등교하던 아이였다. 1학기에는 학교 급식 당번과 일주일에 한 번씩 30분 일찍 등교하여 교통봉사를 하더니, 2학기에도 교통봉사를 이어서 했다. 학기 초부터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과목인 수학을 학교 후배에게 가르치는 멘토링에도 참여하더니 동네 돌봄 센터에 가서 중학생에게 수학지도를 하기도 했다.
외할아버지도 선생님, 엄마도 선생님이었던 아이니 가르치는 즐거움을 유전자로 이어받은 걸까? 아이는 무척 즐겁게 그 일을 했는데, 학생들을 만나고 온 날에는 종알종알 말이 많아지곤 했다. 현재는 식품공학과를 졸업한 후 관련 직장에 다니고 있는데, 딸의 유치원생일 때의 꿈은 '슈즈 디자이너'였다. 그 이유는 그 당시 우리가 즐겨보던 드라마의 여주인공이 슈즈 디자이너였기 때문이다. 계속 바뀌는 딸의 꿈에 엄마는 계속 응원할 거라는 말을 했고, 자기 적성에 맞는 길을 잘 찾아가기를 빌었다. 딸은 요즘 늘 그렇듯 밝은 얼굴로 직장에 다니고 있다.
지난 주말, 남편과 막내와 함께 동네 대형마트에 갔다. 아이가 나를 불러 그곳으로 갔더니, 머릿방울을 사자고 했다. 앞집에 사는 둘째와 셋째 여자 아이에게 잘 어울릴 것 같다고 하며. 역시나 두 아이는 마음에 쏙 들어했다. 내가 우리 부모님께 가장 감사하는 것이 '나누는 기쁨'을 알려주신 것이다. 그 유산으로 나는 지금까지 인생을 좀 더 행복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내가 그러했듯이 우리 삼 남매도 그런 인생을 살아가길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