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프 온리(IF ONLY)'를 보다가, 스무 살 때의 첫 미팅을 했던 그 남자애가 생각나서 혼자 웃었다. 영화의 남자 주인공은 늘 자기 일이 최우선인 사람이었다. 여자친구 사만다는 우선순위에서 늘 뒤로 밀리는 기분이, 또한 그게 익숙해지는 자신이 비참하다며 남자에게 자기의 서운한 감정을 말한다. 택시를 타서 만난 운전기사는 그런 남자 주인공에게 '계산하지 말고 사랑하라고, 그녀가 있는 자체를 감사하라'고 조언한다. 영화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서울대 신입생과 첫 미팅을 했다. 그 남자애는 소년의 느낌이 나는 동안이었다. 얼굴은 선하고 맑았고, 충청도 억양이 약간 묻어있는 말투였다. 그리고 신기한 건, 지금 내 남편과 이름이 같고 성은 달랐다. 그렇게 흔한 이름도 아닌데 말이다. 고향도 같은 충청도였다.
그 아이는 꿈이 대학교수라고 했다. 기숙사에서 살았고, 과외로 학비를 보태고 있다고 했다. 그 아이의 하루가 바쁘고, 공부할 양도 많아서 우리는 몇 달 사귀는 동안 자주 만나지 못했다. 그래서 기억나는 일도 별로 없다. 서울대에 한 번 놀러 간 것과, 인천 월미도를 같이 걸었던 것, 그 아이 친구들 서너 명을 영등포역 다방에서 한 번 만났던 게 내 기억의 전부다. 너무 심심한 관계여서 내가 그만 만나자고 했고, 그 아이는 굳이 나를 붙잡지 않았다. 희미한 내 기억으로는, 그 아이는 그냥 그렇게 무덤덤하게, 가끔 만나면서도 우리의 만남이 오래 지속될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던 것도 같다. 별로 사귀지도 않은 상태라 이별의 아픔도 전혀 없었는데, 남편을 처음 만난 날, 그 아이와 이름이 같아서 깜짝 놀랐다.
그 아이는 자기의 꿈대로 지금 대학교수가 되어있을 것 같다. 늘 공부가 1순위였던 아이였으니까. 너무나 매력적인 여자를 만나 사랑에 빠져 그녀와 결혼을 했을 수는 있었겠지만, 만일 내가 계속 만남을 지속했다면 나와의 몇 개월로 짐작해 보았을 때, 나의 감성코드와 맞지 않아, 나는 영화의 여주인공처럼 늘 서운한 감정이 있었을 것 같다. 내게 파란만장한 며느리 노릇을 하게 만든 내 남편과의 인연에 대해 원망도 많이 하고 살았지만 그래도 다행인 것이, 오래전 내 배우자 이상향으로 말했었던 '인간미와 지성미와 감성'이 아직까지 이 남자에게 살아있다는 것이다.
"00야! 너 잘 살고 있니? 나 잘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