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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수아 Nov 22. 2023

친구의 남편

모임에 나와 남편 흉을 조금씩 보던 친구가 어느 한 날은 기막힌 남편의 과거사를 말해주었다. 놀라움 그 자체였다.


내가 친구의 시어머님을 처음 본 건 친구의 약혼식이었다. 내 친구보다도 더 아름다우셨던 그 시어머님의 우아한 자태는 지금도 내 머릿속에 생생하게 각인되어 있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으시고 은은한 미소와 조용조용한 말투, 난 그분의 모습에 반해버렸다. 하지만 겉보기와 달리 그분 인생도 만만치 않았다.


종갓집 맏며느리로 살아온 그 인생은 조선시대의 며느리와 별로 다를 것이 없었다. 시부모님 봉양하느라 자식들 운동회와 소풍, 졸업식에도 참석을 못 하실 정도로 이해불가의 삶을 사셨던 것이다. 특히나 돌아가시기 전까지 시부모님의 대소변을 혼자 다 책임지고 사셨다. 그 힘듦을 다 속으로 삭이며 그런 하루하루를 사셨던 분이셨다. 며느리를 얻었어도 싫은 소리 한마디를 하지 않으셨고, 늘 남편에게 순종하며 묵묵히 소처럼 일만 하시던 그 시어머님에 대해, 내 친구는 불만의 소리를 할 수가 없었다.


친구의 남편은 자라면서 늘 엄마를 가슴 아프게 바라보았고, 시아버님 대소변을 받아내는 엄마를 대신해서, 고등학생이었던 그 당시 시간이 되는대로 그 일을 도맡아 한 것이다. 보통의 용기로는 하기 힘든 일을 했던 사람이라 그랬을까? 친구의 남편은 항상 자신감에 차있었고, 사업도 승승장구했다.


친구의 시어머님은 안타깝게도 치매를 10년 정도 앓으시다가 몇 년 전에 돌아가셨다. 매일 퇴근하며 들렀던 큰아들을 오랜만에 알아보시고 '우리 큰아들'이라고 부르신 분! 그건 먼 길 떠나시기 전의 마지막 선물이었다.


집집마다 다 아픔이 있다. 상처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이 있기에 극복하고 일어선다. 그 고통과 상처가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인생 항해에 디딤돌이 되기도 할 것이다. 친구는 자기의 남편을 존경한다고 했다. 나는 남편을 존경하는 친구, 그리고 시부모님이 다 돌아가신 지금도 종갓집 맏며느리 역할을 너무나 잘하고 있는 내 친구를 마음 깊이 존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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