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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수아 Dec 05. 2023

자기가 죽으면 재혼하라고 했다는 친구의 말

우리 엄마와 가장 친한 친구가 있었다. 그분은 교사였던 우리 아버지와 같은 학교 선생님의 아내였다. 오랫동안 서로의 집안 대소사를 챙겨주었고, 우리 엄마와 한복 짓는 부업을 같이 하신 분이셨다. 우리 집처럼 그 집에 놀러 가면 재봉틀과 한복 지을 옷감이 그득 쌓여있었다.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그 사모님과 함께한 좋은 기억이 아주 많다.


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였다. 아버지가 갑자기 병문안을 가야 한다고 하시며, 수원에 있던 수원의료원이라는 병원에 가족을 데리고 가셨다. 그 사모님이라고는 하는데, 너무 마른 분이 누워계셔서 나는 믿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우리가 가기 전에 피를 토하셨는지 입가에 묻어있던 핏자국까지 있어, 나는 극도의 공포를 느꼈다. 무서운 드라마도 못 보는 내게, 그 장면은 오래도록 나를 괴롭혔다.


사모님은 말기 암으로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리고 몇 년이 되지 않아 그분의 남편은 재혼을 하셨고, 부부동반 모임에 새 아내를 데리고 나타나셨다고 했다. 새 아내를 만나고 집에 돌아온 날, 엄마는 굉장히 섭섭하다고 속상하다는 말을 하셨다. 지금도 친정 앨범에는 사람 좋게 생기신 그 사모님 사진이 몇 장 남아있다.


나이가 들어, 내가 그 사모님보다도 열 살은 더 먹은 중년이 되었다. 감사하게도 친구들 중에 아직까지 이혼한 친구가 한 명도 없고, 부부갈등이 심한 친구도 없고, 세상을 먼저 떠난 친구도 없다. 얼마 전이었다. 친한 내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나 죽으면 남편에게 재혼하라고 했어. 아이들에게도 미리 말해 놓았어. 아빠는 외로움과 두려움이 큰 사람이니까 너희들이 아빠를 잘 챙겨주어야 한다고. 나는 남편 사랑을 충분히 받았고, 정말 고맙게 생각하고 살아왔어."


뜬금없는 친구의 말에 나는 왜 그런 말을 하느냐고, 오래오래 함께하고 싶은 사람이 그런 말 하는 거 싫다고 했다. 저녁에 남편에게 그 말을 전하니, 무슨 큰 병이 있는 거 아니냐고 걱정스럽게 반응을 했다. 나는 친구의 말을 듣고 며칠 동안 생각에 잠겼다.


'순수하고 착한 남편을 지극히 사랑하는 그 친구가 왜 그런 말을 했을까?'


​나는 결론을 내렸다. 친구가 남편을 진심으로 사랑해서 한 말이었다고. 가난과 상처가 깊었던 친정과 달리, 남편과 시댁 어르신들은 여유롭고 사랑이 넘치는 분들이었다. 그래서 감사해서 눈물이 날 정도라고 했고, 친구의 시어머님이 돌아가셨을 때는 그분의 따스한 사랑이 떠올라 내가 많이 울었을 정도로 친구를 많이 아껴주셨다.


"친구야! 잘 살아왔어. 사람과 일에 대해 정성을 다하고 산 네가 난 너무 존경스러워. 내 맘 알지? 너의 말이 뭘 의미하는지는 잘 알겠어. 그런데 말이야, 난 백발노인이 되어도 너와 수다를 떨며 까르르 웃고 싶어. 오래오래 내 옆에 있어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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