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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수아 Dec 01. 2023

헛똑똑이의 삶

자랄 때 엄마가 제게 자주 하신 말씀입니다.


"넌 공부는 잘하는데 헛똑똑이야."


아버지를 닮아서 약지 못하고 어수룩한 딸이 좀 답답했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렇게 자란 아이가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니 엄마가 신기한 듯 또 물었습니다.


"학생들이 그렇게 이쁘니? 자식도 안 낳아본 애가 애들을 그렇게 이뻐하니?"


화성 송산 우리 반 아이들이 수원에 사는 선생님 집에 자주 놀러 오는 걸 보고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동네 선생님이셨던 아버지의 제자들이 우리 집에 수시로 놀러 오던 걸 평생 보신 엄마는, 남편을 국화빵처럼 닮은 큰딸이 신기하기도 했을 겁니다. 책을 끼고 사는 것까지 국화빵이었으니까요.


교장 선생님 딸에, 남들이 부러워하는 초등 교사라는 직업임에도 남자 하나만 보고 하는 결혼, 시어머님을 모시고 살아야 하는 가난한 시집살이도 저희 부모님은 선뜻 어머님 잘 모시고 살라고, 고생 많이 하신 분이신데 그래야 한다고 말씀하셨지요. 그렇게 그렇게 저나 부모님은 '사람의 도리'에 맞는다는 판단을 했고, 그 선택은 오래오래 저를 고통스럽게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주 가끔 부모님을 원망하기도 했습니다. 왜 나를 이런 바보 멍청이로 키우셨을까, 왜 약지 못한 바보로 키우셨을까, 그랬습니다. 우습죠?


저랑 가장 많이 닮은 분, 제가 가장 존경했던 아버지가 먼 곳으로 떠나신 지 10여 년이 지났습니다. 장애인으로 쓸쓸한 삶을 살다 가신 시아버님, 마음의 고통이 사람을 얼마나 절망하게 만드는지 뼈아프게 가르쳐 주셨던 시어머님, 또한 그 고통이 사랑으로 승화되는 기적을 체험하게 하신 시어머님은 6년 전에 제 곁을 떠나셨지요. 진한 사랑으로 남아계신 세 분이 하늘에서 저를 위해 기도하고 계신다는 걸 저는 압니다. 보이지 않지만 느낄 수 있습니다.


바보 멍청이로 살면서 많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친척으로, 친구로, 일로, 사제지간의 인연으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저는 제 방식으로 사랑했고, 줄 수 있는 걸 아낌없이 주면서 행복했습니다. '배신'이라는 두 글자가 생각나는 몇 사람으로 인해 심한 가슴앓이를 하기도 했으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 잠시 길을 잃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회오리가 지나가도 제 곁에는 여전히 순백의 사랑으로 저를 지켜주는 사람들이 남아 있었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는 사람, 같이 울어주는 사람, 기쁜 소식에 뛸 듯이 기뻐하는 사람들!


제게 없는 것 하나가 '질투'입니다. 질투는 본능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사촌이 땅을 사면 당연히 배가 아픈 거라고요. 왜 제 안에 '질투'라는 마음 주머니가 없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저를 보고 부럽다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질투가 심한 자기는 그것 때문에 때때로 너무 힘들다고 하더군요. 그걸 보면 정말 감사해야 할 일입니다. 누가 돈을 많이 벌었다면 좋고, 자식이 잘 되었다고 하면 좋고, 부부금슬이 좋다고 하면 좋고, 아는 문인의 책이 많이 팔렸다고 하면 좋고, 누가 좋은 집으로 이사를 갔다고 하면 좋고. 남편과 별거 중이던 지인이 합쳐 산다는 소식에 좋고, 그냥 좋더라고요. 다 잘되고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되도록 울지 않고 되도록 많이 웃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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